담임 통신 2004 - 졸업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물 위를 걷는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


안녕, 숙녀들. 선생님이다.

벌써 졸업이다. 너희를 만난 첫 날, 첫 담임 통신의 마지막에서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할는지 모르겠다. 정말 좋은 학급을 맡아서 고마웠다고 졸업식장에서 인사하고 싶다고 했던 말.


우선, 졸업을 축하한다.

지난 7월부터 합격이 확정된 친구들부터, 아직도 미정인 친구들까지, 고등학교 12년간의 모든 교육과정을 졸업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우선 진학이 확정된 친구들에게 마지막 잔소리 몇 마디.

1. 즐거운 대학 생활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 너희가 꿈꾸는 꽃미남 선배도, 낭만적 사건들도 가만히 앉아서 너희를 기다리진 않는다.

2. 대학생의 특권인 학교 도서관을 제발 한 번이라도 더 많이 이용하기 바란다. 내가 대학 졸업한 지 16년이 지난 지금 가장 후회하는 것이 그거다. 대학 도서관에서 숙제밖에 안한 거.

3. 늘 진로를 생각하며 생활해라. 청년 실업 백만 시대에 아무 생각없이 살다 보면,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대열에 합세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아직 진학이 확정되지 않은 친구들에게 잔소리 몇 마디.

1. 불합격의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기 바란다. 주변 사람들 보기 부끄럽다거나, 진작에 좀 더 열심히 할 걸, 내지는 좀 더 낮은 대학에 지원할 걸… 하는 일체의 <죄책감>을 버리고,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해야 한다. 모든 학생이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 얻기를….

2. 19일부터 추가모집 하는 대학들도 있으니 진학사 홈페이지 등을 참고하기 바란다. 다시 도전할 친구들은 수시에도 한 번 지원해 보고, 선생님이 필요할 때는 언제든지 연락하기 바란다.


자. 이제 일 년동안 을근들근 싸웠던 선생님과도 작별이다. 마지막 잔소리 몇 마디를 하자.


마지막 편지의 제목을 뭐로 할까… 궁리를 하다가, ‘물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게 기적이다.’로 정했다. 땅 위는 아무나 걷는 건데 말이야. 사람은 쉽게 남의 멋진 모습을 탐내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살지. 욕심만 부리면서 말이다. 그러다 보니, 과거에 대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기 쉬운 것이다.

너희가 달나라로 여행을 떠났다고 치자. 그런데 비행선이 고장나서 귀환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산소는 이틀분밖에 남지 않았고…. 그러면 그 때, 가장 소중한 것이 뭘까. 빌게이츠 같은 세계적인 기업의 사장? 유수한 기업의 두뇌로 불리는 명예? 그 때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땅과 우리가 마음껏 숨쉬는 공기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우리가 어리석게 과거나 미래에 집착한다면, 현재의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가는 우를 범하기 쉽단다.


그리고, 할 말은 많지만, 인생은 이렇게 살아라… 하는 것을 주절주절 말해 볼게.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친구와 시간을 더 보낼 것. 즐겁고, 보람차게, 의미있고도 평화롭게, 최선을 다해서, 치열하게, 긍정적으로, 낭만적이고 적극적으로, 늘 젊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좋은 사람들로 둘러싸여 살고, 맛있는 걸 즐기고, 건강하고, 남을 도와주는 여유를 갖고, 질적으로 높게 살고, 자존감(self-esteem)을 갖고, 활력이 넘치고, 스스로를 사랑하고, 늘 겸손할 필요는 없고, 어차피 정답은 없는 것이고, 내가 좋아야 하고, 늘 만남을 소중히 생각하고, 이별에 상처받지도 말고… 늘… 마음 공부를 할 것. 매 순간 최선을 다할 것. 밥을 먹을 때는 온몸이 밥이 되어 밥을 먹어라!!! 지금(now), 여기(here)에서 행복을 즐기지 않으면, 어디에서도(no-where) 행복은 찾을 수 없다.


오늘은 졸업식 날이다. 오늘은 졸업의 날을 마음껏 즐기기 바란다.


해주고 싶은 말은 넘치도록 많지만, 한마디로 지난 1년 너희와 함께여서 진정 행복했다. 그리고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기도 하고, 우연히 만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만날 때,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벌써 겨울눈이 새싹으로 변해가는 이월에…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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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2-1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숙녀들~~멋진 졸업식 말씀입니다.글샘님의 숙녀들이 부러워지는군요...

글샘 2005-02-18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숙녀들이 졸업을 했습니다. 까닥하면 울 뻔 했습니다. 종례를 다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크게 하고, "자, 이제 돌아가세요. 가서 엄마랑 맛있는 자장면 사 먹도록..."하면 아이들이 우르르 나가고, 몇몇은 "선생님, 사진 찍어요."하면서 교탁으로 몰리게 마련인데, 희한하게 아이들이 미동도 않고 있었습니다. 너무 아쉬워하는 눈빛들이고, 이렇게 끝내는 것이 뭔지 실감나지 않는 눈빛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노래라도 같이 하나 하고 마칠까 생각했는데, 그러면서 애들 자꾸 쳐다보면 내가 먼저 눈물이 날 것 같았고, 그러면 또 우리반에 잘 우는 혜림이랑 근영이랑 세령이랑 눈물 바다를 이룰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내가 먼저 나가려고 하면서, 나중에 놀러 오라고 했더니, 언 놈은 울고, 몇명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사진 찍고 마무리를 했습니다. 참 정이 많은 녀석들이었는데, 몇 명이나 놀러 올는지는 두고 봐야 알 일이죠. 졸업하는 날은 항상 허전한 담임입니다. 고요히 나를 돌아보면서 하루를 보내야겠습니다.

2005-02-25 22: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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