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평점 :
절판
아우슈비츠라는 절망의 상황에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아니스트 알리스 할머니는 그 절망의 구덩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음악회를 열었던 사람들을... 과연 문화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을 독가스실로 보내던 중,
한 사람을 살려주며 하는 말.
아니, 이 사람은 아니야. 첼리스트거든.(235)
알리스 할머니는 2차 대전 후, 이스라엘로 간다.
그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그들의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자부심을 비웃을 수만은 없지만..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몰아내고 건국한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바로 쳐다보기 어렵다.
그들은 조국을 탄생시키기 위해 정치와 전쟁에서 평등하게 일했다.
알리스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장이든 아니든 예술가들을 존경했고, 지성과 음악 위에 그들의 나라를 세웠다. 알리스는 고마웠다.
그래서 음악가와 교사로 축적한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장차의 세대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일을 돕겠다고 맹세했다.(198)
음악을 향한 알리스의 열정은 뜨겁고 한결같다.
그의 목소리는 지혜롭다.
지혜는 교묘한 대답들을 아는 게 아니라,
두려움없이 질문에 맞서는 것이다.(203)
해가 갈수록... 이런 것을 크게 느낀다.
교묘하게 순간을 재치있게 넘기는 일보다,
진심으로 근원적인 질문에 맞서는 두려움없는 자세의 든든함.
가르치는 것은 사랑이고, 교사는 가르치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220)
그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늘 되뇌는 구절이다.
어느 분야의 교사에게나 다 통용되는 점.
일을 사랑하는 것, 연습을 사랑하는 것, 또는 부엌이 번쩍번쩍하도록 청소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이런 걸 심어주는 것.
배움의 과정을 사랑하는 것.
이루고 싶은 승리 때문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좋아서 일을 즐기는 것.(224)
새 학교에 오니, 아이들에게 주당 2시간씩 예술 교육 시간이 있다.
내가 관리해야 할 아이들은 플루트반 아이들인데,
그 시간에 나도 같이 플루트를 배우려고 생각중이다.
용기를 조금 내야할 필요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잘 부는 애들이 많다.)
알리스 할머니의 말이 도움이 되었다.
너무 늙어서 호기심을 갖고 배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래요. 여전히 가르칠 수도 있죠.
호기심, 타인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이게 삶이죠.(169)
아우슈비츠 시절.
그들에게 음악은 예술이나 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모두였다.
우리에게 음악은 음식이었어요.
영혼을 울리는 것을 갖고 있으면 음식은 필요치 않아요.
음악은 생명이었어요.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하려 하지도 않았어요.(145)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둘 만 하다.
존경심은 사랑으로 이어져요.
결혼 생활에서 로맨틱한 사랑보다 훨씬 중요한 게 존경심이지요.(111)
로맨틱한 사랑. 로망스.. 일본어 로망의 음차인 낭만(浪漫)은
날마다 애틋한 감정을 이어갈 수는 없는 것임을 들려준다.
존경심... 뭔가 자기가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보고 배울만한 점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는 말과도 통하리라.
로망~으로만 가득찬 사랑이,
결혼 이후엔 지옥으로 변하는 이유는... 이런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결혼을 목적으로 하여 달려드는 지혜없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플루트를 가르치는 강사를 보고 있으니,
한 시간은 애들 수준에 맞게 개인 레슨을 한다고 하고, 한 시간은 전체 조율을 한다고 한다.
일률적인 수업을 하는 나와는 달라서, 낯설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어 보인다.
난 사람들을 한 무리로 보고 판단하지 않아요.
모든 남녀에게는 사연이 있어요.
내 관심은 개개인의 최고 장점을 알아 가는 것이죠.(41)
낱낱의 사람의 최고 장점을 찾는 교사.
훌륭한 제자가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늘 폭력과 전쟁 등으로 화염에 휩싸여 있다.
거기 대한 알리스의 대응은 그의 지혜를 대변한다.
이것이 폭력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에요.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더 아름답게 더 절박하게, 더 열정적으로 음악을 만들 거예요.(21)
음악은 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꽃으로도 때려선 안될 정도로 소중하다.
음악으로 아우슈비츠를 건너온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검은 터널같은 암흑도 끝에는 빛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짧지만 귀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참 밝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