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 따뜻한 신념으로 일군 작은 기적, 천종호 판사의 소년재판 이야기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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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지법 부장판사 천종호.

그는 소년범죄 전문 판사로 유명하단다.

 

학교 내의 학생들이 일으키는 문제는 세 단계로 처리해야 한다고 이론적으로 가르친다.

사소한 분야는 상담으로 개선되게 만들고,

더 심각한 분야는 치료의 수준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문제가 되는 분야는 법적으로 처리해야 한다.

 

문제는, 문제아들의 경우,

대부분 가정이 심각하게 결핍되어 자양분이 하나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문제아들의 뒤에는 문제 가정과 문제 부모가 있는 셈이다.

 

2003년엔가, 영화 '집으로'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그때 시골 할머니 집에 맡겨진 유승호,

할머니와 전혀 소통이 되지 않은 꼬마가 만약 깡촌이 아니라 어느 정도 사람이 모여사는 곳이었다면,

꼬마들에게서 삥을 뜯고, 절도를 일삼는 비행 청소년으로 자라지 말란 보장은 없다.

그 영화에서는 마지막에 엄마가 아이를 찾아 가지만,

사실 사회에서는 조손가정이란 형태의 가정 파괴가 심각하게 일어나고 있다.

 

중2가 문제다... 는 말이 있다.

중학교에서는 퇴학처분이 없기 때문에,

아이들이 심각한 문제를 저질러도, 학교에서 어떻게 처벌을 할 수가 없다.

사랑으로 감싸안아서 될 수준이 아니라, 정말 문제아 하나를 위해서 지구가 필요할 지경이다.

 

장면 1.

(수업 시간에도 무단조퇴를 일삼던 고1 학생, 담임이 심하게 잔소리를 하자, 교무실 문을 쾅, 닫고 나간다.)

나(학생부장) : (급히 따라나가며) 야, 너 이리와봐.

학생 : 왜요?

나 : 야, 인마, 여긴 교무실이잖아. 너, 집에서 엄마 아빠 앞에서도 이렇게 문 꽝, 닫냐?

학생 : 네.

나 : (어이가 없어) 그래? 알았다. 일단, 교실에 가서 가만히 앉아 있어. 나중에 부를 테니

학생 : 지금 집에 갈 건데요?

 

나중에 상담해 본 결과,

그 학생의 어머니는 이미 집 나간지 오래고, 아버지는 알콜리즘 환자고,

거동을 거의 못하시는 할머니가 겨우 밥이나 해먹이는 지경이라,

자퇴를 할 때에도, 고모가 와서 도장을 찍고 갔다.

 

장면 2.

(수업뿐 아니라 시험 기간에도 무단 조퇴를 한 학생)

나 : 야, 인마, 여긴 인문계 고등학교야.  시험 치다가 그냥 피시방 가는 정신 나간 넘은 필요 없어. 당장 전학가~!

     요 옆에 전교 꼴찌들 모이는 $$ 정보고등학교 있으니깐, 그냥 전학가.

학생 : 못 가는데요.

나 : 왜 못가 인마~

학생 : 거기 떨어져서 여기 온 건데요.

 

이 학생은 결국 중학교 내신 99%인데 전문계고(실업계) 떨어지고 일반계고(인문계)로 배정된 학생으로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자퇴했다.

 

학교 안에서 도저히 떠맡지 못할 아이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가정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한다는 방증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문제아들의 경우, 부모의 휴대전화로 연락하려 해 봐도, 전화를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심한 경우, 공무원 자녀인데, (공무원은 중고생의 경우 수업료가 국고에서 지원된다.)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도 있다.

부모에게 전화를 걸면, 돈이 없어 못 내겠단다. 이건 뭐... 부모도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 상처입는 아이들은 갈수록 흉포한 범죄와 학교 폭력을 저지를 소지가 커진다.

피해학생들 가정 역시 다사로운 정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예전엔 빈집에 가서 같이 놀고, 담배 피우는 정도의 비행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았으나,

요즘엔 왕따, 지속적 괴롭힘 등이 갈수록 심각하다.

매점에서 빵을 사오는 빵셔틀 같은 데서부터, 급식 셔틀, 숙제 셔틀, 폰 셔틀, 가방 셔틀, 이런 말들을 만들 정도로, 아이들이 범죄 지능만 높아진다.

 

이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사로운 정이 있는 가정인데,

결국 문제의 주범은 가정 해체인 셈이다.

 

아이들을 집으로... 돌려보낼 길은 요원하고,

결국 아이들은 소년범이 되어 법원에서 1호~10호 판결을 받고 보호 관찰 내지 소년원 입소 같은 처분을 받게 된다.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모은 책이다.

문제 부모들에게 읽히고 싶은 책이다.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에게도 읽히면 좋은 책이다.

우선, 문제아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교사들도 이런 책을 접해야 한다.

아이들의 문제를 '아이의 자유 의지로 벌인 문제'로 파악하고 아이를 미워하는 어른 역시 문제 어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아이들의 범죄는 아이들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상황에 의한 우발적 범행에 동참하게 되고, 그것이 습관적으로 익숙해져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범죄는 이렇게 발생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에 대처하는 교사들의 자세도 문제다.

일단 일어난 일을 조용히 덮고 넘어가려고 하기 전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를 유심히 관찰하고, 다른 아이들이 어떤 피해를 입는지 꾸준히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일어나면, 지속적으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처리에 신중해야 한다.

학교 폭력의 문제는 <지속적 관계 유지>가 가장 큰 어려움이기 때문이다.

 

마음 아프게 읽은 책이다.

부분부분 눈물이 주르르 흐르게 만드는 대목도 많다.

사회가 아프면, 모두 아파야 하는데...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이성복, 그날)

 

이런 무관심이 결국 아이들을 범죄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어버리고 만다.

사회의 양극화를 갈수록 심화시키는 당을 국민이 선택했으니,

결국 아이들의 눈물은 더 깊어질 것 같아 마음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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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3-04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소극적인 생각 같지만 가정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돈을 잘 버는 것 보다, 나의 다른 경력을 쌓아나가는 것 보다, 그 어떤 것 보다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확인합니다.
청소년 범죄는 우리 사회의 일종의 지표이겠지요. 무관심은 아닌데, 관심만 가져서 될까 싶고...사회가 아플때 그 병을 고스란히 떠맡아 앓고 있는 층이 바로 청소년층 같아요.

글샘 2013-03-05 02:43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로 가정을 잘 지키는 문제와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IMF 구제금융기 이후, 사회는 급속도로 가정해체라는 문제에 직면했거든요.
지금 문제가 되는 이 아이들이, 그 시기에 태어난 아이들이라는 거죠.
아픔이 느껴질 땐, 이미 늦었는데, 누구도 해결책엔 관심이 없으니...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