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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깊은 집 ㅣ 문학과지성 소설 명작선 15
김원일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당 깊은 집이라면 아파트에나 사는 요즘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는 공간 배치일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어린 시절 열 가구가 너머 사는 집에 살았던 적이 있다. 마당의 가운데는 화단이 있고, 주인집에는 대가족이 오골거리며 살고, 우리는 컴컴한 화장실을 두려워했다. 아직 다섯 살이던 나는 그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지 않았고... 가끔 귀신 소동이나 날 때라야 화장실에 친구들이랑 몰려 갔다가는 와---하면서 도망가곤 했다.
전쟁통의 상처를 이렇게 상세히 형상화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세살림하는 네 가구의 모습과 주인댁네의 살림살이는 우리 역사의 한 단면을 상세히 그려내고 있다. 그것은 염상섭의 <두 파산>에서처럼 만큼이나 정신적, 물질적 파산을 선명하게 형상화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삶의 좁은 여유 하나 누릴 수 없고, 이데올로기에 찌들리기만 했던 사람들의 물질적 파산의 형상과, 부유하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을 발가락의 때만큼도 여기지 않던 사람들의 정신적 파산의 형상이 더도덜도 할 것 없이 그 만큼만 그려지고 있다.
여기서 그쳤다면 이 작품은 그 흔한 눈물바다였던 전후 문학의 한 마디였겠지만, 이 작품에서 단연 빛나는 존재는 ‘한주’의 존재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던 사람들의 시대였던 전후 시대에서도 페시미즘의 절망적인 나락으로 빠지지 않고 늘 웃음을 잃지 않던 한주들이 이 세상에는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두 파산>의 하나였던 어머니의 좌절과, 주인집의 오만방자함도, 한주와의 따스하고 넉넉한 추억에 묻혀 지긋지긋한 전후 문학에서 이 작품을 건져주고 있는 것이다. 한주를 만들어낸 김원일은 역시 뛰어난 전후 소설 작가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