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엔 노인과 바다 이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노인이 바다와의 시련에서 이겨낸 이야기, 어떤 시련에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힘있는 이야기 말이다.

그런데 1부를 읽어 나가도 동물학자의 인간에 대한 고찰이 전개될 뿐, 노인과 바다는 나오지 않았다. 동물과 동물원... 그리고 인간의 속성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도 흥미로웠지만, 소설 형식이 아니었으므로 당황스러웠고, 종교에 대한 이야기까지 등장하는 데는 황당함까지 맛보고 있었는데...

2부를 들어가서 동물원을 매각하고 동물들과 함께 배를 타고 겪게 되는 오랜 기간의 죽음의 극복은 내가 바라던 이야기였으므로 주르륵 미끄러지듯이 읽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구조되고 나서 또 당황스런 구도를 보여 준다. 이 믿을 수 없는이야기가 조사원들의 마음에 들지 않자, 파이는 다른 이야기를 꾸며 주는데, 어느 것이 현실인지, 어떤 것이 사실인지... 세상에 사실과 현실이 있기는 한 것인지를 모호하게 하는, 누가 제 정신이고 누가 환상 속에서 헤매고 사는 것인지를 알기 어려운 세상을 보여 주는 소설이라 하겠다.

끝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도 있는 3.141592.... 의 파이 이야기는 우리 삶의 단면들은 누구에게도 설득력 없는 나만의 이야기임을 깨닫게 해 준다.


64쪽의 "사회적으로 열등한 동물이 주인과 사귀기 위해 가장 끈질기게 노력한다. 그들은 주인에게 가장 충직하고 가장 필요한 동반자임을 보인다. 주인에게 도전하거나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관찰은 작가의 시선이 동물의 그것에게 머물러 있지만, 인간 세계에도 대입해 보면 그대로 적용되는 것임을 금세 느낄 수 있다. 작가의 뛰어난 통찰력과 이야기 구성 능력, 그리고 환상과 엽기와 스릴의 세계를 재미나게 엮어내면서도 삶의 진실성을 발견하려는 의도가 잘 살아있는 장편 소설의 수작이라 할 수 있다.

작가의 말대로 어차피 세상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예상대로 풀리지 않는 세상 일을우리가 어쩔 수 있을까? 다가오는 삶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살 수 밖에 없는 것을...(1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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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5-01-31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이었습니다. 읽는 내내 뭔가 마음 속에 울리는 것이 있었지요..^^

글샘 2005-01-31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 맞습니다. 그 두꺼운 책이 살랑살랑 넘어가는 것이 안타까웠던 걸 보면요... 그런 책이 있지요. 요즘 산 책들이 그런 편이에요. 에릭 호퍼 자서전 같은... 좋은 책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알라딘이 좋은지도 모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