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접시의 시 - 나희덕의 현대시 강의
나희덕 지음 / 창비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시,

시는 화자의 '독백'이다.

철저하게 자기의 내면에서 울리는 두레박 출렁이는 소리를 그대로 옮긴 것이어서,

인물, 사건, 배경이 보이질 않는다.

 

그래서 시가 어렵다고도 한다.

누구든 자기 맘 속의 고인 물을,

철버덩 두레박 드리워서 떠올리면,

그게 시가 된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라고' 쓴 글을,

또 훔쳐 읽는 재미가 쏠쏠나다.

그래서 그걸 다들 훔쳐 읽고,

흥얼흥얼 외우고 다니는 것인데,

어떤 이들은 또 그걸 분석하고 설명한다.

 

그래서 '시론'이란 게 나왔는데, 이게 영 생뚱맞다.

이 책도 그렇다.

나희덕의 시론은 '한 접시의 시'라고 해서,

뭐 무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처럼 달콤한 옷을 입혀 두긴 했다.

근데, 먹어 보면...

재료는 신선하고 좋은데,

요리 방식은 뭐, 구태의연하다.

 

이 책에서 그가 시론을 펼치기 위해 고른 시들을 읽는 것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그 외의 시에 대한 설명은... 뭐, 나도 모른다.

 

내 버킷리스트에는 '멋진 시 선생님 되기' 같은 게 있다.

나도 멋진 '시 해설사' 같은 사람이 되고 싶긴 하다.

그치만, 거기 시론이 얽혀드는 건 별로다.

 

사랑이 여명이라면, 연민은 일몰...

 

이런 구절들을 만날 수 있어서 이 책은 좋았다.

자기가 가르치면서 만났던 느낌들...

근데, 내 생각은 다르다.

사랑이 희망으로 가득한 새벽의 여명이고, 연민은 이제 갈앉는 해를 바라보는 일몰같은 거라고 보기엔

연민이 너무 가벼워 보인다.

내 맘 속의 연민은 여명에 가깝고, 사랑은 한낮의 태양에 가깝다.

 

발레리는 시와 산문의 차이를 춤과 보행에 비유했다.

산문이 어떤 대상이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고 언어의 유용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보행에 가깝다면,

시는 대상의 심미적 특성이나 행위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에서 춤에 가깝다.(87)

 

이런 문장을 만날 수 있어 좋다.

 

좋은 비유는 만물에 대한 열린 마음과 감각이 깊이 체화될 때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대상들을 원관념과 보조 관념으로 연결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을 넘나드는 상상력이 없이는 불가능하니까요.

비유와 묘사가 단순히 수사적 새로움을 위해서만 필요한게 아니다...(153)

 

5장은 '비유와 상징', '은유와 상징'으로 혼동하며 쓰고 있다.

'비유'와 '은유'는 조금 다른데... 155, 157에서 뒤섞인다. 수정이 필요한 부분~

 

문학에 대한 사랑은 불가능한 사랑이면서 동시에 불가능에 대한 사랑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디 문학에 대한 사랑만이 불가능한 사랑이며,

또한 단지 사랑만이 불가능일까요.

모든 존재, 모든 사태는 불가능이며 그것들을 드러내는 언어 곁에는 필히 불가능이 따라붙습니다.

어쩌면 언어는 불가능을 숨기기 위해서만 존재와 사태를 보여 주는지도 모르겠습니다.(170)

 

이성복의 수상 소감에 나온다는 이 말이 참 반갑다.

사랑은 불가능하다.

몸을 섞는 일이 불가능한 판국에,

마음을 섞는 사랑이 어찌 가능하랴.

다만, 그 불가능 곁에서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간절히 드러낸 것이 '시'라는 뜻이렷다.

 

심보선에게 시를 쓰는 일은,

 

타인과 맺는 비밀의 나눔

 

이라고 본다.

 

나는 시 쓰기가 사랑의 행위와 유사하다고, 아니 동일하다고 본다.(222)

 

이런 것이 내가 시를 좋아하는 이유고,

시를 읽는 이유다.

 

시의 존재 의미를 밝히는 시론 역시,

이런 비유적 언술로만 가능하다.

은유니 환유니 하는 어휘의 호명은 시의 본질에 다가가는 독자의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일지니...


댓글(8)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무개 2013-01-23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를 읽어본적이 있는지 조차 기억이 나질 않네요.
아마도 고등학교때 원X연인가 하는 사람의 시집이라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였나 싶은데...
시는 제겐 참...진짜로....정말... 너무 어렵습니다. 시도해볼 엄두가 안나요.

글샘 2013-01-23 20:42   좋아요 0 | URL
시가 어렵다구요?
사는 게 더 어렵지 않나 싶은데요. ㅎㅎ
시는 좋아서 읽으면 되는 거라 생각합니다. 그저 좋아서...

2013-01-23 17: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3 2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14: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1-24 2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