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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서재
장석주 지음 / 한빛비즈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마흔을 불혹, 이라고 부른다.

어떤 시인은, 그걸 '불혹, 또는 부록' 이러면서 농담을 건다.

이 혹하지 않는다, 또는 미혹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공자가 2,500년 전 사람이었음을 생각하면,

마흔이면 평균 수명을 다한 나이였을 것이어서,

더이상의 어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생각해볼 수도 있고,

육체적 연령을 생각하면 성적 기능이 다한 나이여서 여자를 봐도 혹하지 않을 나이~였을 수도 있다.

 

근데, 암튼... 영양 과다로 인하여 평균 수명은 대책없이 늘어났고,

평균 수명에 비하여 마흔은 반도 안 온 나이다.

그렇지만, 또 육체적 노화는 그대로여서 아무리 동안을 외쳐대도,

중력의 작용에 의한 주름살은 보톡스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시답잖은 구석도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얻을 것도 많다.

 

마흔,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가장 좋은 것은 조금 늦게 온다.

마흔은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늦은 나이지만 꿈을 가진 사람에겐 늦지 않았다.(23)

 

뭐, 좀 막연한 응원이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믿고 싶다면, 그럴 수도 있다.

 

딸아이는 미국에 있고, 아들아이는 캐나다에 있다.

내게 남은 것은 3만 여권에 다다른 장서, 열 몇 권의 시집, 정수리께의 허연 머리털,

늙어가는 벗들, 클래식 CD들, 포도주의 깊은 맛을 즐기는 혀... 따위이다.(34)

 

내가 마뜩잖아하는 면이 이런 것이다.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에 와서 문필 노동자로 살면서 소박하게 산다고 강조에 강조를 하지만...

도시에서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살기 쉬운 '마흔들'에게 들려줄 이야기치곤, 좀 관념적이다.

그리고 포도주의 깊은 맛... 운운은 책의 진행 방향과 거꾸로 가는... 오버란 생각도 든다.

 

발터 벤야민은 심심함을 '경험의 알을 품고 있는 새'라고 부른바 있다.

잠이 육체적 이완의 정점이라면 깊은 심심함은 정신적 이완의 정점이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벤야민은 꿈의 새가 깃드는 이완과 시간의 둥지가 현대에 와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이제 더 이상 그 누구도 그런 것을 '짜지도 잣지도' 않는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한병철, 피로사회 중, 44)

 

이 책에선, '느림, 심심함' 이런 것들의 가치를 역설한다.

노자와 장자도 반복되어 인용되지만, 글에 힘이 가득차 있지 못해 읽는 이의 눈이 자꾸 처진다.

 

순진한 건지... 부족한 건지...

이렇게 책을 낼 거라면, 따뜻한 말로 도배한다고 될 것이 아니거늘...

좀더 조사했어야 할 것들이 빠지고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은 부족을 증명한다.

 

최부자 가문은 해방 뒤에 전 재산을 영남대학 재단에 희사하였다.

빌 게이츠는 죽기 전까지 재산의 95%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하였다. 

나눔의 궁극적은 목표는 상생이다.(285)

 

최부자 가문이 다카키 마사오라 불리는 전직 대통령에게 전 재산을 빨대로 빨린 사정은 역사 전문가 한홍구의 글로 대신한다.

 

<교주 박정희는 1원이라도 내셨는가?> 뇌물바구니 영남대 - 한홍구의 유신과 오늘...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67444.html

 

류짜이푸의 <면벽침사록> 같은 책은 중국의 현대사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좋은 책인듯 싶다.

 

평소에는 좋은 학생이자 영리한 어린아이라도,

문화대혁명에 접어들자마자 곧바로 정신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니

모두 뒤따라 흉악한 말을 하고, 허튼 소리를 하고, 큰 소리로 떵떵거렸다.

이빨도 아주 날카롭게 갈아... 참으로 이리나 호랑이 같았지, 사람같지는 않았다.

눈이야말로 치명적인 반성이 기관이다.(235)

 

눈을 뜨고 있다고 세상을 다 올바로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눈을 뜨고 있음으로써 세상을 더 왜곡시켜 바라볼 수도 있는 일이다.

 

어떻게 하면 길을 잘 잃을까 하는 것이 문제다.

길을 한 번도 잃어보지 않은 사람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며,

길 잃기를 제어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에 빠진다.

알지 못하는 곳 그 어딘가에는 발견으로 가득한 삶이 놓여 있다.(레베카 솔닛, 걷기의 역사, 157)

 

이 책에서 느림, 여유의 미학을 이야기하노라니 당연히 걷기 예찬이 빠질 수 없다.

이 책의 장점은,

느긋하게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관조적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역설하는 책들을 가득 소개하고 있음에 있다.

그런 것들을 나름의 독서에 반영할 수 있다면 이 책에서도 큰 도움을 얻을 수 있겠다.

 

그러나, 작가가 안타까워하듯, 한국의 삶은 지나치게 먹고 살기 어렵다.

밥그릇이 문제다.

닥치고 정치, 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또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렇지 못한 것이다.

 

대부분의 갈매기들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것이 아니라 먹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갈매기에게 중요한 것은 먹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이었다.

어떤 것보다 조나단 리빙스턴은 나는 것을 사랑했다.(리처드 바크, 갈매기의 꿈, 135)

 

대부분의 갈매기의 삶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은, 현실이 그렇게 팍팍하기 때문이다.

물론, 조나단 같은 갈매기도 필요하다. 그 사회의 수준에 맞는 갈매기라면 말이다.

 

도대체 마흔, 이라면 왜 책을 읽어야 한다고 난리일까?

정말 책 속에 인류의 지혜가 들어 있고, 지적 보물창고가 존재하기나 한 건가?

 

보르헤스에게 현실의 정수는 책 속에 있었다.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그 알맹이였다.

그는 수천 년 전에 시작해서 한 번도 끝난 적이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인식했다.

(알베르토 망구엘,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129)

 

어떤 갈매기에게나 나는 것이 중요하진 않듯,

누구에게나 책 속에 길이 있진 않다.

먹는 것이 문제라고 굳게 믿는 이에겐, 책 따윈 길에 깔려있어도 가치로워보이진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수천 년 전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진행되는 대화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본능적으로 책에 관심을 갖게 된다.

어쩌면, 이 '마흔의 서재'는 인간 본능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읽고 싶긴 한데, 어떻게 읽어야 할까?

 

50대가 될 때까지 3천권 정도 집요하게 읽다 보면,

정보가 서로 링크되면서 정보들 사이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양이 질로 바뀌는 거죠.

그리고 좋은 정보와 좋은 책을 구별할 수 있을 때부터 학습에 가속이 붙습니다.(박문호, 뇌 생각의 출현, 104)

 

10년이 넘게 꾸준히 읽어야 하고,

그러면 저절로 '메타 인지'가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책이 저절로 눈에 들어오고, 읽어야 할 부분을 찾아 읽을 수 있다는 것.

필요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벌써 시작했을 것이므로, 과한 요구는 아닐 수도 있다.

 

요즘 출판계의 트렌드가 '마흔' 과 '위로'인 모양이다.

얼마나 살기 힘들면 그럴까...

그런 사람들에게 책이란 위로가 막혀 들까?

글쎄. 원래 무엇이든 필요한 사람들은 이미 그것을 하고 있고, 가지고 있다.

필요하면서도 도무지 시간을, 여유를 내기 힘든 사람들은 앞으로도 그 필요한 것을 위해 투자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암튼, 마흔, 작가는 3만 권의 서재를 자랑하지만,

나처럼, 이사다니기 귀찮아서 책은 다 남들 줘버리고, 인터넷 서재라도 하나 가지고 살면 팍팍한 나날에 좀 덜 힘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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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면 좋을 곳 두어 개...

 

65. 어머니는 'ㅇ, ㅁ, ㄴ'과 같은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소리 'ㅇ'는 빈자리 표시지, 자음이 아니다.

 

252. 여절여여차... 여절여차...로 고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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