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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ㅣ 창비시선 313
이정록 지음 / 창비 / 2010년 3월
평점 :
이 시집의 제목은 '정말'이다.
내 시집 읽기의 특성상, 표제시를 우선 찾아 본다.
그런데, 정작 '정말'은 없다.
뭐여? 이러고 있는 사이...
시를 읽는 내내... 머릿속에 '정말'이 지배하는 공간이 부유한다.
'증말' 뭐여? 하는 동안,
그의 시집은 입을 스윽 닦으며 내 시선을 빠져나간다.
금강산 기행, 어머니와의 대화, 체험의 기록 들인데, 시선이 날카롭고 재미진 말들로 그득하다.
한 편, 또는 한 권을 읽었을 때의 감상과,
그이의 책을 쪼르륵 읽었을 때의 감상이 다르다.
아쉽게도 앞쪽의 감상이 낫다.
쪼르륵 읽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너무 울궈먹는구나 싶은...
꽃에는 정작 방년(꽃다운 나이)이란 말이 없다네
그래, 천년만년 꽃다운 얼굴 보여주겠다고
누군가 칼과 붓으로 나를 피워놓았네만
그 붓끝 떨림이며 칼자국, 바람에 다 삭혀내야
꽃잎에 나이테 서려 무는 방년 아니겠다?
꽃이란 게, 향과 꿀을 퍼내는 출문이자 열매로 가는 입문이라...
그렇다네, 이 문짝에 염화 없다면
어찌 어둔 법당에 미소 있겠는가?(꽃살문, 부분)
이런 시선은 예리하면서도 풍요롭다.
조각칼로 도려내는가 하면, 그 도려낸 부분이 어울려 꽃살문 이루는 이치를 모아낸다.
그의 시는 그런 원리로 짜맞춰지는 구조물과 같다.
그이의 어머니 목소리 화법은 제법 구성지다.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뜨건 커피를 단숨에 털어넣더라니까(음... 강남 스타일이었구만. ㅋ~)
오토바이에 시동부터 걸더라고
어서 타라는 거여
망설이고 있으니까 번쩍 안아서 태우더라고
정말 빠르더라고
비명 한번에 끝장이 났다니까
꽃무늬 치마를 입은 게 다행이었지
하늘이 밀밭처럼 노랗더라니까
내 매무새가 꼭 누룩에 빠지 흰 쌀밥 같았지
얼마나 빨랐던지 그때까지도 오토바이 뒷바퀴가 하늘을 향해 뜨그르르 돌아가고 있더라니까
죽을 때까지 그 버릇 못 고치고 갔어
덕분에 그 양반 바람 한 번 안 피웠어
가정용도 안 되는 걸 어디 가서 상업용으로 써먹겠어
정말 날랜 양반이었지(참 빨랐지 그 양반, 부분)
충남 사투리에는 전북 사투리와 어금버금 섞인 말들이 많다.
충청도도 대전, 청주쪽이 '그리유~~'류의 느즈막한 말투인가 하면,
홍성, 청양쪽은 오히려 '하지야~~'하는 전북 말투가 섞여들기도 한다.
지역 사투리가 구성진 시들은 문학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다.
그의 시들이 좀더 지역의 말투를 제대로 담아낼 수 있다면 좋겠다.
참고로, 최근판의 '어머니 학교'에서는 '삐딱구두'를 모셔온 택시 이야기도 나오던데,
하기야, 뭐, 시란 것이 '전기'는 아닌셈이니...
느낌표가 전부여 한 세상 접을 땐, 느낌표만 남는 거여(느낌표)
이런 느낌표 역시 시의 재미다.
눈사람
눈사람은 살 빠지면 죽는다
햇살 다이어트가 가장 위험하다
이렇게 써붙인 쪽지를 병따개가 가리고 나니
눈 사람
눈 사람은 살 빠지면 죽는다
햇 살 다이어트가 가장 위험하다
다이어트가 '다이'를 품고 있다. ㅋ~
그의 시가 움직여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재미있다.
충청도의 느릿하면서 능글맞은 사투리가 담은 세상 속에,
단도직입하는 맛도 느낄 수 있어,
지방색을 담은 시의 대표자로 그가 우뚝 서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