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삶이 만나는 글, 누드 글쓰기
고미숙 외 지음 / 북드라망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 시절~

친한 선배가 나를 크레믈린이라고 불렀다.

그 선배는 유독 나를 잘 챙겨 주었는데,

친하다는 것 이상으로 나를 알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는 나를 감추는 크레믈린이 아니었는데... 다만, 어떻게 내보여야할지 모르는 것들이 많았고,

또 내보이기 싫은 것들로 가득한 내 삶에 대하여 떠벌이지 않았을 뿐인데 말이다.

 

<당신>이 누구인지 소개해 보시오~

이런 물음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내 이름, 내 학력, 내 나이, 내 사는 곳, 내 가족 관계, 내 직업, 내가 읽고 있는 책...

어떤 것도 '나'에 가까이 다가서지 못한다.

 

그런데, 나만 크레믈린이었던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 살던 시대엔, 누구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는, 억압의 시대에 짓눌려 있었을 것이다.

가난한 가족, 가부장적 문화, 거기서 대화의 광장이 펼쳐지긴 힘들었을 게다.

친구 문화 역시 삐뚤어진 방향으로 나가기 쉬웠을 게고,

어른이 되어서도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분노의 게이지가 높아갈수록 2차, 3차, 차수만 높아갔을 게다.

그렇게 건강을 잃고, 가족을 잃고... 낙오된 삶에 눈물지었을 게다.

 

이 책은 첫부분에서 '사주 명리학 기초'가 논의되고 있다.

그래서 사주 명리학의 기본 개념을 통하여...

자신의 속성에 가까운 것들이 어떻게 자신에게 발현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렇게 자신의 속성을 알게 되면, 자기를 드러내기 쉬워진다.

가족의 가난도, 가족의 불화도,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불협화음으로 일삼는 자신의 일상도,

답답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정신 세계도... 모두 '내 탓'이 아니라, '사주'의 영향임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주명리학'은 우리가 무의식중에 뒤집어쓰고 있던 원죄를 사하여 준다.

무의식 속에서 '내 잘못, 내 탓'이라고 가슴을 치던 것들이, '네 잘못이 아니야~' 하는 한마디로 위안을 받게 된다.

그 다음엔, 누드 글쓰기가 가능해 지는 것이다.

그래. 나는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살아 왔어.

근데, 이제껏 그걸 부끄러워해서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제보니 그게 나였더라~

근데 중요한 건, 그런 '명'보다 그걸 어떻게 살아가는지 하는 '운'이란 걸 이제 아니깐,

난 앞으로 잘 살거야~

그런 걸 '용신 用神'이라고 한다.

결국 '운 運'은 '움직이다, move'의 뜻이니 그 주체는 '나'가 되겠다.

 

용신이란 팔자를 잘 순환시키기 위한 매개항에 해당한다.

만약 금과 수로 가득차서 목기가 결핍된 사주가 있다면, 목이 곧 용신이다.(20)

 

운때가 찾아올 때까지 입벌리고 가만히 기다리자는 말이 아니다.

미리부터 나는 미래에서 나를 찾아오고 있는 뜨거운 불덩이를 쥐기 위한 훈련에 돌입해야 한다.

사주명리학에서는 이를 용신이라 한다.

용신은 치우친 사주의 균형을 잡아주는 무게추와 같은 것이다.(77)

 

내 사주에는 금과 토가 결핍이다.

그걸 채우기 위해서... 금의 기운, 토의 기운을 애써 가져야 한다.

몸을 쓰고, 재물과 재능을 베풀고, 마음을 비우는 게 용신의 기본이라고 했다.

몸이 움직이도록 노력하고, 재물이 없다면 재능이라도 열심히 쓰고, 욕심내지 말고,

그렇게 금과 토를 찾아야 하는 거...

 

이런 글쓰기가 이 책의 소명이다.

뒷부분에 오행의 각각에 배치된 팔자 중에 집중된 항목, 강화된 항목이 두드러진 이들의 글쓰기를 보여준다.

 

늑대는 아무리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도 늘 잠시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이를 통해 자기를 쫓고 있는 적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된다.

눈앞의 위험을 직시하고 거기서 의미를 발견해 내려 노력할 때 위험은 오히려 그의 미래를 힘껏 열어 젖히는 힘으로 찾아올지 모른다.(72)

 

개는 낯선 물체가 달려오면 무조건 도망가고 본다.

고양이(늑대)는 그걸 주시한다. 그러다 '로드 킬' 당한단다.

사주 공부 역시 그런 거란다.

세상을 직시하고, 원망하지 말고, 자기를 인정하고,

그 자리에서 의미를 도출하려 한다면, 개운 開運 의 때가 도래한단 것...

 

왜 나만? 왜 나에게 이런 불행이?

이렇게 되묻기만 한다면 어떤 고통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건 없다.

오히려 세상과 사람을 향한 증오심만 키우거나 극단적인 자기 비하에 빠진다.

사실 인간은 고통 속에서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매 순간 다가오는 고통과 갈등을 내 공부로 삼는다면, 그는 진정 너그러운 사람이다.(101)

 

오행은 상생과 상극의 꼬리물기로 이뤄져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이익과 손해로 볼 수만은 없다.

 

생과 극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기운이다.

고정된 명사가 아니라 변화하는 동사인 것이다.

불규칙한 동사의 용법을 체득하기 위해선 많이 입으로 내뱉어 보아야 하듯이,

생각의 원리 또한 몸과 마음으로 직접 익혀야 한다.

정녕 극이 극에 달하면 생이 된다. 그렇다면 극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극 많은 내 사주를 하늘의 선물로 여길 수 있으리라.(104)

 

그렇지만, 사주 공부를 한다고 해서 '정답'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삶은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때로 선택하고, 때로 포기하는 것이 삶이기 때문.

 

사주를 공부하다 보면 애매한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부 내 얘기같고, 그럴듯하게 끼워 맞출 수도 있을 법하다.

사주 팔자고 이 바쁜 세상에 '한 큐'에 정답을 찾고 싶을지 모르나,

변수가 많고 애매모호한 것이야말로 사주명리학의 미덕이라 주장하고 싶다.

애매하기때문에 보다 찬찬히 자신의 삶을 뜯어봐야 하고,

그 과정을 거쳐야 복잡하게 얽힌 인과의 고리를 비로소 엮을 수 있기 때문이다.(108)

 

내 사주는 '물'이다. 그것도 큰 바닷물이 아니라 '골짜기 물' 계수다.

그래서 스케일이 작고 좁다. 좁쌀도 이런 좁쌀이 없다.

그렇지만, 그래서 섬세할 수 있다. 차근차근 하는 일을 답답해하지 않고 차근차근 할 수 있다.

쉽게 열받지 않고 천천히 갈 수 있다.

아이디어나 창의성이 그럭저럭 사주에서 받쳐주고 있으며,

물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물이 극하는 '불'이 내 사주엔 가득하다. 넘친다.

그런데다, 내 이름에도 불 화가 네 번이나 들어간다. 아주 죽이는 팔자다. ㅋ~

그래서 내 삶에서 '일복'은 차고도 넘친다.

내가 가는 학교는 어디나 무슨 '연구학교'를 해야 한다.

아주 배타적이었던 학교라도, 내가 가면 반드시 뭔가가 큰 덤터기로 몰려든다.

 

지금 읽고 있는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차근차근 더 읽어보고 누드 글쓰기를 해야할 노릇이지만,

뭐, 어떤 점괘로도 내 운명은 확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겠다.

 

내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운세도 바뀌어 갈 것임을...

지금, 여기서 내가 잘 사는 데 따라 미래도 복된 것으로 돌아올 것임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과 '나의 운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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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 2012-10-31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글 읽고 바로 주문해서 오늘 책 받았습니다.
그런데 땡스투를 깜빡! +.=;;;


글샘 2012-10-31 17:17   좋아요 0 | URL
이런, 중요한 땡스투를~~~ 제 통장으로 100원 입금해 주세요~ ㅋ~

Mephistopheles 2012-10-31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크레믈린이라고 불렸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부모님에게요.

글샘 2012-11-02 18:57   좋아요 0 | URL
한국 사회의 중년들은 어린 시절, 크레믈린 많았을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다만... 자수하기 전까진 표나지 않죠. ㅋ

깐따삐야 2012-11-02 1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있어요, 글샘님. 꼭 그런 선생님이 있죠. 어딜 가나 일복이 차고 넘치는. 글샘님이셨군요. 저는 그 반대인 경우랍니다. 팔자도 그렇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제 능력이 모자라서.^^ 저는 주로 능력있는 선생님들이 인내심을 갖고 곁에서 도와줘야 하는 타입의 선생. 갑자기 글샘님께 죄송스러워지네요.

글샘 2012-11-02 18:59   좋아요 0 | URL
팔자를 풀어 보면... 도와주는 '인성'이 가득 차 있을 거예요. ㅋ~
저는 일복이라는 '재성'이 무려 5글자나 되더라는... ㅠㅠ
능력있는 게 아니라, 일을 많이 하니깐... 능력있다고 옆에서 꾀면 넘어가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