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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모리 에토 지음, 권남희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제목이 참 이쁘다~
일본 여자작가들의 책 제목이 참 이쁜 편이라 생각하는데,
아마도... 출판사의 공이 클 거다.
이츠카 파라소루노 시타데...
해변의 파라솔... 그 아래서 맥주라도 한 잔 하면서 낮잠을 자면...
그럼, 오빤 강남 스타일~~ 뮤비가 떠오른다. ㅋ~
아주 엄격했던, 그것도 심하게 엄했던 아버지의 죽음 뒤로,
한 여인이 찾아와서, 아버지의 죽음의 원인은 자신이라고 밝힌다.
아들과 두 딸은, 그 아버지의 진심을 찾으러 나가게 되고,
아버지의 고향에 이르러 거의 미미한 흔적을 더듬으면서,
아버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
이 책은, 각각의 삶이 참으로 신산하지만,
누구나 신산함 속에 살아간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해하려 든다면,
자신의 삶에서 '살아있다는 행복'을 찾아볼 수도 있을 거란 위안을 주려는 이야기다.
옅은 구름이 길게 깔리기 시작한 탓인지 비취처럼 연한 녹색 빛이 도는 오늘의 바다는 반투명하게 흐릿하다.
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칠 때마다
그 새하얀 빛은 일제히 올라갔다가 다시 가라앉는 물마루와 서로 얽혀서 그물눈 같은 무늬를 바다 가득 만들며 반짝거린다.
이따금 밀려온 큰 파도가 그 무늬를 흔들고, 땅울림 같은 신음을 울리며 물가로 유인한다.
파도는 내 발밑에 닿을 듯 닿지 않는 곳에서 갑자기 속도를 늦추어 아주 잠깐 정지했다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도가 해변의 모래를 사르르 끌고 갈 때,
소리도 없이 지면이 미끄러지는 듯한, 지구가 약간 기운 듯한 그런 기분이 들어서
나는 언제나 가슴이 설렌다.(94)
소설을 읽는 맛은, 이런 문장을 만나는 일이다.
나도 바닷가에 서는 일을 참 좋아한다.
뽀얀 백사장에 서있기 가장 좋은 시간은 해가 지고 설핏 어둠이 끼쳐올 때,
또는 한밤중 한잔 걸치고 서있는 바닷가도 좋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가 주는 위안은,
그걸 즐기는 사람에게만 들린다.
눈앞에 있는 작은 먹구름보다 멀리 빛나는 파란 하늘을 생각하는 편이 낫다.(121)
이런 이야기로 이야기가 해피엔드로 진행될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곳곳에서 '어두운 피' 이야기 사이로 '반짝반짝 빛나는' 한 줄기 광선이 이 소설을 관통한다.
누구나 소설을 읽을 땐, 제 삶에서가 아니라도 좋으니, 행복이 거기 있기를 바라니까...
늘 그러던 것처럼 아버지 때문에 내 인생이 잘못됐네 어쩌네 투덜거렸더니,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자기 인생을 부모 탓으로 하지 마!
20대 초반이 지났으면 자기 엉덩이 정도는 자기가 닦아!(219)
요즘 고미숙의 '누드 글쓰기'와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를 같이 읽고 있다.
사주 명리학 이야기인데,
민증 까고 매일 술 마시며 이름밖에 모르는 직장 동료보다,
사주를 까고 인생을 '누드'로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책이라 감명깊다.
삶을 바라보는 하나의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내 운명을 탓하고, 투덜거리는 어른이 되지 말고,
자신의 운명을 조용히 '관'하고, 자신을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들을 탓하고, 시대를 탓하고, 태어난 이 나라를 탓할 시간에,
조용히 '언젠가 파라솔 아래에서' 행복하게 지낼 시간을 꿈꾸며 이런 소설을 읽는 일도 재미있다.
그러게. 살아 있다는 사실을 즐겨야 한다고.
요즘에야 겨우 깨닫게 됐다고나 할까?
엄마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남은 인생동안 추억을 잔뜩 만들어서 저세상에 있는 아빠한테 보란듯이 뽐내야지.(254)
이 소설에서 주제문을 한 문단 찾자면, 이런 걸까?
프로이트나 융처럼, 어린 시절의 무의식, 집단의 무의식이 짓누르고 있는 자아는
늘 투덜이 스머프처럼 불만에 가득차 있을지 모른다.
고미숙이랑 데이트하면서,
홀랑 벗고, '누드'로 자신을 돌아보며, '용신 用神'을 위해 글쓰기에 매달리는 자신을 더 살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