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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NOT? -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의 세상 읽기
유시민 지음 / 개마고원 / 200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왜 안 된다는 거지? 안 될 거 없잖아. 이런 투의 영어겠다. Why not?
책의 표지엔 불온한 자유주의자 유시민이라고 소개되어 있는 유시민. 그가 당당히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라운드 티를 입고 국회의사당에 등장했을 때, 저건 오버다라고 많이들 말했다. 왜 안되는데? 국회의원은 신성해서? 그 짜식들이 신성하면, 세상에 신성하지 않을 놈이 누가 있나. 무노동무임금을 적용받지 않는 유일한 직업, 국회의원 놈들에게 신성이란 통할 법이나 한 소리던가. 이제 민노당 의원들이 티코타고, 잠바입고 국회엘 가도 아무도 찍소리 못하는 것들이... 유시민의 Why not?은 통쾌하다.
그는 역사 선생님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그의 베스트 셀러는 거꾸로 읽는 세계사일 것이다.), 선생님 출신인 누이들의 영향으로 교육에도 관심이 많고, 무엇보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경제에 밝다. 그러나 그는 역사학자도, 교육학자도, 경제학자도 내세우지 않고, 리버럴리스트- 자유주의자를 내세운다.
우리 나라에서 리버럴리스트란 무엇인가. 부정적 의미의 전통에 대한 강한 부정을 뜻한다고 본다. 그 부정적 의미의 전통은 전통 문화라든지, 역사적 전통을 의미하기 보다는 파시즘적 전통, 현대적 민주주의를 외치던 새마을 운동 시대 독재자의 전통에서 말이다. 그 파시즘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몸부림이 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파시즘적 전통은 극우다. 물론 그 와중에서 극좌가 인정받던(주사파처럼) 시대도 있었다. 자유주의자는 극우와 극좌를 모두 증오한다. 치우쳐서 자기 주장밖에 못 하는 집단이니깐.
복거일이라는 리버럴을 주창한 인간이 있었다. 그의 헛소리(영어공용어화)가 한참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는 언어학자도 아니고, 그저 소설가 나부랭이었는데 왜 그리들 난리였을까? 우리는 너무 순수 혈통을 소중히 여긴다. 순수한 우리말을 지키는 것, 다 좋다. 그건 일제 시대에 강박적으로 우리 말을 못 쓰도록 만든 데 대한 저항의식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영어를 섞어 쓰는 노래 가사들을 주절거리는 아이들을 모두 감옥에 보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복거일의 주장은 논리적이지 못하지만, 적어도 그의 주장이 힘을 얻을 근거는 자유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난 학교에 청바지를 잘 입고 출근한다. 처음엔 아이들도 신기한 듯이 바라보지만, 이젠 아예 무시한다. 그 먼지구덩이 교실에서(어떤 석사논문에서 교실의 먼지 밀도가 일반 사무실의 35배란 실험결과를 읽은 적이 잇다.) 넥타이 매고 양복 입는 것은 나에게 고문이다. 청바지는 왜 안되는가. 청바지 문제로 관리자들과 여러 번 논쟁을 벌였지만, 그들의 주장은 단 하나다. 교사는 단정해야 한다. 우리가 예전에 만났던 그 폭력적인 교사들이 진정 단정했던가? 수치스러움을 모르던 그 깡패같던 교사들이...
난 교사가 철밥통 신세를 벗어나야 발전이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렇지만 학교에서 이런 말 하긴 정말 어렵다. 나는 국가공무원이다. 그래서 받는 제약도 많았지만, 요즘은 다들 부러워한다. 교사는 국가직에서 지방직으로, 멀리는 계약직으로 바뀌어야 한다. 지금 우리 나라 현실에서 교사가 계약직이 되면 고용이 가장 불안해지는 과목은 예체능일 것이다. 예체능 교사는 특기적성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난 솔직히 1교시부터 체육을 하고 오전 내내 자는 일반계 고교는 세상에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처럼 국어선생이라도 나이가 들고 아이들과 결별의 순간이 온다면 이별하는 게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학교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교사라면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에 따라 짤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국가의 미래를 짊어진 아이들을 기르는 신성한 교사라는 자리가 철밥통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지?
이 책은 2000년에 쓰여졌기 때문에 많은 부분이 환란, 외환위기의 문제와 진행에 대한 비판으로 적혀있다. 그의 관심사가 경제일 것이니 내겐 재미 없더라도 용서해 준다.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의 이름으로 핍박받고 있는 많은 이들... 불법체류노동자(그들의 올바른 이름은 이주노동자이다.) 소외 문제, 여성문제, 빈곤문제, 동성애자들, 서갑숙처럼 성의 자유를 책으로 폈다가 망한 사람들...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시선을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 나도 이제 리버럴리스트, 이 단어를 즐겨쓰고 싶다. 왜 안되냐고 강하게 호소하고, 따지고, 싸워야겠다. 이제 내 나이 서른의 세월은 점점 가고(12월이 벌써 1/5 지났다) 마흔이 되고 있다. 나이 먹은 자들의 전매품인 고지식함, 융통성 없음을 익히고 싶진 않다. 더 리버럴한 40대가 되도록 마음을 굳게 먹어야 겠다. 아이들의 작은 일탈에 잔소리를 퍼붓지 않도록 말이다. 자유스럽지 못한 내 한 마디가 아이의 날개에 작은 균열을 준다는 것을 잊지 말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