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노먼 베쑨 역사 인물 찾기 1
테드 알렌 지음, 천희상 옮김 / 실천문학사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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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노먼 베쑨(Dr. Norman Bethune). 1991년에 실천문학사에서 처음으로 그 분의 전기가 발간되었다. 새파란 나이의 나는 이 책을 밤새워 읽고 울렁이는 가슴을 잠재울 수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년부터 부산시에서 독서인증인지 뭔지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책을 읽히라고 난리법석이다. 학생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기 전에 책읽을 시간을 주는 게 순서인데... 아무튼 그 계기로 우리 반 학급문고에 새로나온 예쁜 책을 꽂아두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의 독서발표대회 심사때도 이 책의 독후감을 숱하고 읽었다. 우연히 책꽂이에 얹혀 있던 이 책을 어제 집어 들고, 다시 밤 늦게 그분을 읽었다.


여전히 나에게 반성과 분발을 촉구하는 전기였다.


의사였던 그는 폐병을 앓게 되면서 흉부외과 의사로 성공하는 전화위복의 기회를 맞는다. 그러다 성공한 의사의 부와 극빈자들의 가난 사이에서 세계의 진실한 모습을 읽게 된다. 진실이란 종종 명백히 상충된 현실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의 말처럼, 세계의 모습은 모순덩어리였던 것이다. 그는 스페인 전선으로 건너가 공화파의 편에서 파시스트와 맞서 싸운다. 세계의 모든 모순들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제국주의 일본과 기회주의 장개석과 맞서 싸우고 있는 중국 인민들에게로 날아가 국제주의자로서의 친구가 된다. 백구은 선생이 되어...(중국인들의 명명은 간혹 감탄할 만 하다. 코카콜라를 可口可樂, 입이 즐거울 만한 음료로 부르는 것들. 베쑨을 白求恩, 우리를 구하는 은혜를 베푸는 백인 의사 선생)


그는 진정 의사로서의 길을 걸었던 위인이다. 병을 고치는 작은 의사, 환자를 고치는 중간 의사가 아닌, 사회를 고치는 진정 큰 의사 말이다. 그러나 그는 정지해 있는 의사가 아니었다. 늘 질병과 의술 도구를 연구하는 연구자요, 화가요, 과학자요, 몽상가이며 확고한 신념으로 가득한 사상가였던 그는 죽음의 현장에서 비로소 삶을 이끌어내는 신의 분신이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서 그는 지도자의 요건으로 조직력, 지도록, 감독력을 꼽았다. 전체와 세부를 계획하고, 그 계획을 다른 이들에게 납득시키고 지도하며, 계획의 진행을 끊임없이 검토, 시정, 실천에 의한 이론의 수정이 그 내용이며, 지도자는 오로지 일, 일, 일에 투철해야 한다고 한다. 물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일의 노예가 되어 산다는 것은 지도자 이전의 비인간적인 행위로 지탄받을 만 하지만, 전시의 그의 삶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투철함이라 하겠다.


그는 유서에서 유감스럽게도 더 많은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쓰고 있다. 그분처럼 세계의 움직임을 정확히 간파했던 이가 마흔 아홉의 나이에 세상을 뜬 것은 아쉬운 일이다. 제국주의자들의 명분은 '국가의 영예를 위한 전쟁'이지만, 속내는 원료와 시장, 이윤이란 것을 명확히 하였다. 지금도 가진자들은 테러와의 전쟁, 폭력과의 전쟁이란 미명으로 침략전쟁, 식민지정복전쟁, 대규모 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장 유망한 프랜차이즈는 전쟁인 것이다. 그들은 교환보다는 절도가 더 값싸며, 구입보다는 학살이 더 수월함을 알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친절하고 사려깊어 보이는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이윤이 축소되기만 하면 무자비해지고, 야수적이 되며 망나니처럼 무정한 사람으로 변해 버린다. 그들이 살아있는 한, 이 세상에는 영구적인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 그들이 바로 부상을 입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야기는 지금의 악의 축, 미국을 본다면 적확한 표현이 아니었을까.


그는 단순한 의사의 차원을 넘어선 성인의 도를 실천했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소유하지 않고 집착하지 않으면 도를 이룰 수 있고, 개신교의 가르침처럼 너를 버리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정신, 그것을 실천할 수 있었던 밑바탕이 그의 다음 말로 집약될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은 커다란 능력을 가질 수도 있고, 또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無私(무사)정신의 소유자라면, 누구나 모두 민중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내던지는 중요한 인간, 완전한 인간, 덕있는 인간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진정 큰 의사였고, 큰 스승이었다. 그의 삶을 늘 반추하며 삶의 전류가 끊어진 채 살지 않으려는 각오로 몇 자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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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4-12-01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친구에게서 생일선물로 받아 단숨에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글샘님의 리뷰를 보니 그 때의 감동이 떠올라지네요..잘 읽고 갑니다^^

글샘 2004-12-01 0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이 책은 정말 두꺼운데도 단숨에 읽히는 책이에요. 그만큼 감동적이기 때문일겁니다. 근데, 이 시각에도 안주무시네요^^

책읽어주는보아스 2018-11-13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금번에 읽겠습니다. 좋은 글로 읽고 생각하도록 자극받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