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성적, 초등 4학년에 결정된다 평생성적 프로젝트 1
김강일.김명옥 지음 / 예담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런 책들의 한계는 뻔하다. 내가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말들의 한계도 뻔하고... 공부 잘 해서 무엇을 할 건데... 그런 철학적인 고민들을 나누지 못하는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에게 주마가편하는 것은 참으로 못할 짓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 아이에게도 공부를 시키란다. 부모된 도리로써 당연히 최선을 다하여 아이에게 헌신을 해야 한다고... 그럼 학교는 뭔데... 왜 비싼 교육비 들여서 공교육을 운영하는가...

이 책의 논지는 이렇다. 평생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초등학교 4학년때 기틀을 잘 잡아 주면, 누구나 공부를 잘 할 수 있단다. 중요한 것은 부모들의 의지와 방법이다. 부모가 내팽개쳐 두거나 학원에 맡기기만 한다면 학생의 감춰진 자질을 찾아낼 수 없다... 뭐, 이런 것.

물론 그들의 이야기에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노동 현장에 붙들린 부모들 대신 학생들에게 교육을 담보해 주는 곳이 공교육기관 아닌가. 물론 어느 시대나 밥상머리 교육은 필요했고, 형제간의 어깨 너머 공부가 주효하기도 했던 것은 사실이다. 어느 부몬들 자식을 올바로 가르치고 싶지 않겠는가. 노동의 현장에서 죽도록 수탈당하고 돌아온 가정에서 부모가 자식에게 투자할 수 있는 것들은 참 작지 않겠는가. 그래서 공교육도 결국은 빈익빈 부익부의 재생산 구조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 파울로 프레이리 같은 교육학자들의 이론이 아니었던가.

물론, 학생이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들일 수 있다면 두말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그러나, 공부 잘 하는 사람만 세상에 넘친다면, 얼마나 세상이 피폐해 질 것인가... 세상에는 공부 잘 하는 사람도 있고, 운동 잘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한다. 춤 잘 추는 사람은 그래서 먹고 살고, 그림 잘 그리는 사람은 또 살 길이 있다. 다만, 능력은 있으나 공부를 잘 하지 못하는 아이를 만드는 것은 안타까울 수도 있고, 사회적 손실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것들은, 내새끼는 잘 되어야 한다는 이기주의와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학구열(면학성 편집증이라고나 해야 할)을 부추기는 별난 엄마 만들기에 적극 동조하는 책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내가 이 책을 이렇게 폄하하는 이유는 딱 하나이다. 이 책에는 철학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사람도 애 두서너명 기르다 보면 교육철학자가 되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주장에 참 한숨과 웃음만 날 뿐이다. 그렇게 공부 잘 해서 뭐 하려고... 의사 만들려고? 자기밖에 모르는 의사. 돈 없으면 병원에서 내 쫒는 의사? 아... 훌륭한 의사. 돈 많이 벌어서 불쌍한 사람 (조금) 도와주는 의사? 가끔 한 번씩 무료진료팀에 끼는 의사? 아, 법관. 검은 돈, 브로커와 붙어먹는 고위층?

제발, 요즘 나오는 '누구나... 하면 서울대 갈 수 있다.', '... 때 ... 하면 돈 벌 수 있다.'는 책들을 부모들이 읽고 실천할 틈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모들에게, 우선 네가 인간이 되어라, 하는 책을 권해주고 싶다.

아이들에게 어려서부터 이렇게 하면 일기를 잘 쓰게 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책을 많이 읽게 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영어를 잘 하게 할 수 있고, 이렇게 하면 수학을 잘 하고, 사회를 잘 하고, 과학을 잘 하게 할 수 있다고 부모가 다 알아야 아이를 훌륭하게 기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내 아이가 일기를 잘 쓰게 하려면... 우선 부모가 글을 잘 써야 한다. 부모만한 모법답안은 없는 것이다.

내 아이가 책을 잘 읽게 하려면... 부모가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

내 아이가 영어를 잘 하게 하려면... 외국에 몇 년만 살다 올 기회를 가지면 된다. 그게 유일한 길이다. (간혹 천재적인 아이는 윤선생 영어교실로도 성공한다. 반드시 천재라야 한다. 천명, 만명 중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천재.)

내 아이가 수학을 잘 하길 바라려면, 내 고등학교 수학 성적을 본 후 생각해라.

내 아이가 사회를 잘 하게 하려면, 이 글처럼 여행을 많이 다니면 안 된다. 여행 다니면, 사회 잘 한다는 것은 이 사람들이 고등학교 사회 교과서를 못 봐서 그렇다. 고등학교 사회는 언어 영역이다.

과학을 잘 하게 하려면, 과학관 아무리 뛰어 다녀 봐도 해결책 없다. 과학 잘 하게 하는 방법은, 아이를 공대나 자연대로 보내 버리면, 그 다음엔 과학만 배울 것이다.

훌륭한 부모가 훌륭한 자식을 기를 수 있다고 하지만, 모든 부모가 훌륭한 전과목 교사(teacher)가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된다. 바로 나 같은 선생들의 밥줄을 위험하게 하는 일이므로.

부모님이 되어야 할 것은 교사(가르치는 이, teach -er)가 아닌, 선생(先生, 먼저 난 사람)으로서의 모범을 보여 줄 일이다.

직장에서 돌아와 웃는 낯으로 아이들을 사랑으로 돌보아 줄 수 있다면 물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종일 직장에서 파김치가 된 엄마에게 모성애를 되찾아 줄 노동조합 운동에 참여하는 것도 선생으로서의 부모의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여섯 시가 넘어도 회식이란 명목의 술자리에 끼어서 연장근무에 들어가고, 여차하면 정말 야간 근무를 일삼는 아빠의 직장이 땡하면 퇴근하는 직장으로, 사회 분위기로 만드는 것이, 술 안 권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 아빠들의 선생으로서의 역할이리라.

이 책의 저자들이 부모로서, 과외선생으로서 겪어온 노하우들은 상당히 긍정적인 것이 많음에도 내가 이 책을 깔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시대의 부모에게 더 이상을 요구하지 말라. 공교육의 몫은 공교육으로 돌려 주자. 물론 공교육의 부실이 눈에 보이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다면, 교사의 질을 높이도록 학부모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어중이 떠중이 학부모들이 모두 다 교사가 되겠다고 나서는 일은, 사이비 학원들의 술수에 속아 학생들의 뼈를 녹이는 데 일조할 따름이라 생각한다.

파리한 형광들 불빛 아래서 지금 이 시각에도 아무 경쟁력없는 수능 준비에 여념이 없을 이 땅의 7,80만명의 고1,2 학생들, 중학생들과, 아직은 헤매고 있지만 곧 재수의 대열에 들어갈 고3 예비군들의 흐릿한 눈빛에 광합성을 할 시간을 주자. 학생들에게 일조권을 주자. 아이들을 죽이지 말고, 살 수 있는 힘을 길러 주자.

우리 아이가 어제 독서 골든벨에서 장려상을 받아 왔다. 200명 정도 학생 중에서 10등 정도 했다니 책을 열심히 읽는 것 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아빠가 책 읽는 걸 보고 배웠다고 요즘 아내에게 힘을 좀 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나도 우리 아이가 영어도 잘 했으면 좋겠고, 공부도 다 잘했으면 좋겠다. 늘 100점만 받아 왔으면 좋겠다. 오늘은 반에서 6명은 100점인 국어를 하나 틀렸단다. 아내는 속상해 한다. 나도 물론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그렇지만, 나도 초등학교때, 친구들이 100점 맞을 때, 같이 100점 맞고 싶었다. 제일 기분 나쁜 것 아들이 아닐까? 수학은 두 개 틀렸다는데... 나부터도 내 아이가 공부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다를 리 없다.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 아이가 무엇 하나라도 재미를 붙여서 정말 잘 해보고 싶은 게 생기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그것이 공부가 될 수도 있을 거고, 글쓰기가 될 수도 있겠다. 운동에는 별로 취미가 없지만, 아프진 않으니 그것도 다행이고, 그림도 크게 잘 그리진 않지만 그리기는 좋아하고, 음악은 별로 취미가 없어 보인다.

세상에 그 많은 일 중에 아이가 흥미를 붙인 일에 종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우리 학생들이 고등학생 시절에 가졌던 꿈과, 대학 진학과, 취업에 숱한 난관과 부조리를 겪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고등학생 시절 문학 소년이, 가정 형편상 법대 진학을 꿈꾸다가, 점수에 따라 상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돈장사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 고등학교 시절 하고 싶었던 공부를 대학에서 하고, 그 일을 하는 나는 이런 점에서 행복한 사람이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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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1-26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아이는 어른의거울>이라는 말, 예전에는 공감하지 못했는데 요즘 내 아이들을 보면서 날마다 날마다 정말 실감하는 말입니다. 어른들이 붕 떠서 사니까 아이들도 붕 떠서 사는데, 어른들은 자기 모습은 못보고 아이에게만 무엇이가를 강요하곤 하지요. 내가 바로 서는 것, 그것이 교욱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공부 잘하면 좋지요. 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위한 공부인지, 스스로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없다면 이번 수능 시험 부정 사태같은 것은 자꾸 일어날겁니다. 그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통탄을 금 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키운 교사의 한사람으로서 많이 반성한 사건이었습니다. 공교육 허물기는 앞으로도계속 될 추세같아 보이지만, 아이들이 자기 삶을 행복하게 꾸려갈 수 있는 대안 교육이 있다면 우리가 감내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싶네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글샘 2004-11-29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아이들이 마음공부 없이 글공부만 디립다 하는 것이 과연 무슨 경쟁력이 될지... 회의적이랍니다. 토익 만점이 입사 시험에 낙방한다는 시험공화국에서 아이티 강국의 면모를 보여준 이번 부정행위는 철학없는 교육이 얼마나 사상누각인지를 보여주는 결정판이었지요. 최종판이라면 좋겠네요. 우리가 이제 공교육 세우기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하늘 2004-11-30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해에 4학년에 올라가는 아들때문에 이 책에 눈이 쏠리더군요.

워낙 낙천적이라 3학년 1학기까지 시험칠때 평소 실력으로 치라고 했는데 서서히 점수에 내마음이 흔들리더군요. 그런데 글샘리뷰를 읽고 너무 통괘함을 느꼈어요.



저는 아이가 커가면서 저 자신도 같이 커가는것 같아요.

3학년 아들의 갈등처럼 저도 3학년 학부모로서 갈등도 같이 하니까요.

글샘글보고 내아들보다 내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그래도 너무 낙천적인 아들을 보면 속상하기도 하지만 그 미소가 너무 예쁘게 느껴집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항상 좋은 생각만큼 건강하세요.


글샘 2004-11-30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모 마음은 다 같은 것 아닐까요? 아이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아이가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마음... 이런 책처럼 초등학생 아이를 고시생처럼 만든다고 해도, 사실은 공부가 체질에 맞는 아이는 따로 있거든요. 부모가 너무 무관심하면 아이가 기회를 놓칠 수도 있겠지만, 학원에만 맡겨 두고 아이가 참된 사람이 되어 가는지, 따스함 마음을 가진 아이로 자라고 있는지 무관심하지만 않다면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의 인생을 꾸며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그 미소를 부모 아님 누가 지켜주겠습니까?^^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침묵의군주 2005-02-23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먼저한번읽고 추천버튼 눌러놓고 다시한번 읽고 또다시 공감하고 다시한번 또읽습니다.. 글샘님 글에 상당히 공감합니다... 아이가 가장많이 보고 배우는게 부모아니겠습니까.. ^^;

글샘 2005-02-23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이 2권까지 발간되었다네요. 정말 걱정되는 학부모들입니다. 사실 걱정하면서도 사교육에 아이들을 내모는 학부모들이 너무 많을겁니다. 사교육 담당자(학원 선생이나 학습지 교사들)들 이야기 들어 보면, 스스로 공부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는 이야기들인데요... 생산력 없는 사교육에 들일 국가적 힘을 사회 기반 시설 확대에 들여야 할텐데요... 그러려면 시간을 기다려 줘야 되는데... 당장 어떻게 할 수 없지만... 인간 만드는 데 힘을 기울여야지요... 인간이 되고 나면 어떻게든 살아나갈 수 있는 게 세상 아닌가요? 공감하시는 분들이 많아 다행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