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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 상 - 비밀 노트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원제 : Le grand Cahier (굉장한 노트)
전쟁과 인간에 대한 적나라한 풍자 우화
아고타 크리스토프란 작가는 헝가리 출신인데 밀란 쿤데라처럼 불어로 소설을 쓰는 디아스포라다.
헝가리 역시 전쟁통에 온갖 나라들의 길목 역할을 했던 나라였고, 그 체험이 이 소설의 밑바탕이 되었을 게다.
이 소설은 에둘러 묘사하고 설명하는 바가 없다.
어쩌면 표지에 드러난 그림처럼,
두 쌍둥이 아이들 외에는 모두 흐릿하게 처리된 배경으로 존재한다.
두 쌍둥이 아이들은 엽기적인 사고방식으로 세상에 대처한다.
그러나, 엽기적인 것은 그 아이들보다 더한 세상이 아닐까?
미쳐돌아가는 전쟁터와, 인정머리라곤 없는 인간들,
그 와중에서도 벌어지는 온갖 추잡한 인간 군상의 어리석은 노릇들을,
작가는 쌍둥이들의 눈을 통해서 보여준다.
쌍둥이들은 영리하다.
그 아이들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점을 확보하였고, 그것을 '대단한 노트'에 기록할 수 있었다.
그 첫번째 책에서는 쌍둥이들이 어떻게 단련되었는지를 잘 다루고 있다.
그들의 '대단한 노트'가 생기기 전까지 '우리의 공부'가 필요했다.
그 공부법은, 서로 작문을 봐주고 고쳐주는 것이다.
우리가 '잘 했음'이나 '잘 못했음'을 결정하는 데에는 아주 간단한 기준이 있다.
그 작문이 진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것들, 우리가 본 것들, 우리가 들은 것들, 우리가 한 일들만을 적어야 한다.
감정을 나타내는 말들은 매우 모호하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으 사용은 될 수 있는대로 피하고,
사물, 인간, 자기 자신에 대한 묘사, 즉 사실에 충실한 묘사로 만족해야 한다.
이것은 작가가 사실성을 획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그러한 서술방식을 차용하겠다는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그렇게 하고 있다.
그렇게 어린 아이들의 눈을 통해 바라본 전쟁은 참혹한 것이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린다.
동성애가 만연하고, 고독한 인간은 짐승과 흘레붙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세상이 온통 혼돈과 살인으로 가득한데, 새디즘과 마조히즘 따위야 귀여운 행위로 치부된다.
전쟁터이니 포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 마땅한데,
그 포로를 희롱하던 하녀, 그 음탕한 여자는 어찌되었건 폭발물의 세례를 받아 정화된다.
이런 것에서 이 쌍둥이들의 행보가 자못 궁금해진다.
여느 소설에서 할애하는 배경과 인물을 파악하기 위한 도입부의 지루함을 이 소설에서는 맛볼 수 없다.
전쟁터에서는 도입부와 전개부와 재현부와 절정 및 대단원을 코스별로 맛볼 수 없기 때문일 게다.
전쟁터에선 디저트가 먼저 나오든, 애피타이저가 생략되든, 먹을 건 닥치는대로 먹는 게 수다.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 쌍둥이의 등장과 함께 온갖 부조리로 가득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삶을 비평할 겨를도 없이, 바로 그들의 삶의 악취 속으로 독자는 빨려 들어간다.
그래서 쌍둥이와 함께 할머니의 방을 훔쳐보고, 장교의 방을 염탐하며,
하녀의 사타구니를 비비적거리는 장면이나 이웃집 여자애가 개에게 가랑이를 벌리는 장면에 바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전쟁터의 비극적 하루는 쇼킹한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지는 삶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 상처를 벌려서 보여주는 이는 무표정한 작가다.
그렇지만, 아무리 단련하는 장면을 되풀이하여 강조한대도,
비밀 노트의 이면에 드러나는 상처에서 흐르는 핏줄기에서 느껴지는 통증마저 제거할 수는 없다.
아니, 오히려 작가는 불감을 통해서 감각의 극대화를 기하는 역설법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이 책의 첫 번째 책을 펼쳐든 사람은,
철조망 저편으로 건너간 사건의 후속편을 궁금해하며 두번째 책을 펼칠 수밖에 없다.
더럽고 잔인하고 폭력적이지만,
유쾌하고 경쾌한 스피드로 작가는 전쟁의 아이러니의 도가니로 독자를 유인한다.
쌍둥이의 엽기 행각과 귀여움에 매료된 독자라면,
작가의 미로 속을 기꺼이 통과할 마음을 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