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달리다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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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재밌다~

사랑이 달리다!!!

사랑은 제 맘과 다르게 달려간다.

환경과 조건을 따지지 않고 어느날 불현듯 일어난 사랑은 막 달린다.

 

표지에 그려진 그림엔 네 사람이 등장하는데,

운전대를 잡고있는 손의 선으로 보나, 넥타이와 머리 길이로 보나 그는 정욱연이다.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차마 고개는 돌리지 못하고 눈길과 온 마음만 던지고 있는

세 명의 여인은 모두 정욱연에게 관심을 가닥 가지고 있다.

스카프를 두른 생머리 여자,

노출에 대담한 긴 머리의 부드러운 웨이브의 여자,

단정한 단발에 진주목걸이, 링귀고리를 하고 손잡이를 잡고 있는 전문직풍의 여자,

모두들 그의 마음을 잡아보고픈 욕망으로 이 공간은 무지 밀도가 높아지고 있으나,

정작 남자는 정면을 주시할 의무를 다하고 있을 뿐.

 

심윤경의 소설은 재밌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그래서 성석제와 천명관 같은 말발을 내가 좋아한다.

 

무엇보다, 한국의 소설들은 남성들의 눈으로 바라본 것들이 많아서,

여성들의 속내를 드러낸 것들이 드물다.

남성들이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는 '사랑'에 목을 매는 스탈이고,

남자의 사랑 외에는 '자기애'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여성이 그리는 여성은 다르다.

'칙릿' 소설이라고 얕잡아 부르기도 하는데,

여자 마음 여자가 아는 게 당연지사다.


심윤경의 이번 소설에선 '가족'의 허위를 잘 까발리고 있다.

여자들은 모여서 '자신'의 자존심을 깎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남편과의 서먹한 관계도 늘 매끄럽게 포장하고,

자식과의 냉랭한 관계도 늘 화려하게 포장한다.

자존과 관계없는 문제라면 '시- 패밀리'에 대한 험담 정도랄까?

 

물질에 오염된 큰오빠, 또라이 작은오빠, 공주 주인공 혜나, 공주 원본 엄마,

노년에 정력맨이된 아빠... 가히 콩가루 집안의 표본이라 볼 수 있다.

 

주인공인 공주과 혜나가 결혼한 남자는 서울대 나온 회사원이다.

회사에서 오창이란 시골로 전출을 당하여 주말부부가 되고...

혜나의 마음엔 '부유함'에 대한 욕망이 끓어넘치기 시작하고,

결국 아빠의 카드, 엄마의 남자의 카드, 자신의 카드(엄마의 남자가 준 직장)로 도배한 사람으로,

거기다 정욱연이란 매력남과 사랑에(근데 과연 그게 사랑일까? 난 의심인데~) 골인한다는,

여성들의 로망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한다.

 

누구에게도 특별한 대우를 하지 않았지만,

누구나 자신이 가장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116)

 

이런 남자라면 매력에 빠져들 법도 하겠다. ㅋ~

 

무한대의 카드 석 장과 병원장 매력남과의 결합...

그 <속도감>에 부러움을 던지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이지만,

과연 이 글을 읽는 여성들의 '사랑'은 부유한 환경일 뿐인지... 궁금했다.

 

그가 남편 같아 보이지 않고 약간 모자란 남동생 같아 보이는 것이 우리 관계의 가장 큰 문제였다.

나는 성민에게 다소 귀찮은듯한 애틋함을 느꼈다.(172)

 

이런 맘이 들 수도 있지만,

과연 오창으로 가버린 성민을 그렇게 찬밥 취급해버려도 좋은 것일까?

그리고 병원장과 육체적 관계로 맺어져버린 얄팍한 '관계'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그리고 유명 사립대를 나왔다고 해서 작은오빠는 그렇게 수십 억의 사기를 계속 저지를 만큼 이 사회가 말랑한가?

감옥에 가버렸다고 이혼을 결심할 만큼, 과연 가정이란 것의 무제가 증발해버린 것일까?

뒷맛이 씁쓸한 소설이었다.

 

새아버지가 될 박진석의 매력도 잘 쓰고 있다.

 

그는 신기하게도 처와 딸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남자였다.

나는 그에게 꽃을 뿌리고 싶었다. 선루프를 열고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237)

 

여성들이 남성에게 매혹되는 점은 젊음, 외모와는 다른 '성격 - 캐릭터'란 것을 알겠다.

 

이 소설에서 '속도'는 중요한 소재다.

김학원 - 작은 오빠의 스포츠카가 감당하는 '속도'는 가히 '마하'에 가깝다고 뻥을 칠 정도다.

 

"속도 줄여, 이 미친놈아! 날아갈 뻔 했잖아!"

 

다들 그렇게들 달려가고 있다.

혜나 역시 정 원장에게 달려만 가고 있다.

조용히 좀 돌아보게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거 같은데...

혜나와 정 원장이 친해지는 것도 좋은데, 그렇게 불나방이 되어버린다고 행복할까, 과연?

이런 '속도'에 대한 우려는 나는 자꾸 하고 있는 것이었다.

자동차의 속도만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인간과 인간의 근접 속도 역시 적정 속도를 유지하는 일이 중요할 거다.

특히 나이 들어 만나는 '인연'의 사이에는...

 

인생을 건 진짜 사랑은, 그 자체로 훈장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

어차피 사람은 죽으면 헤어지기 마련이니까.(312)

 

사랑은 비명보다도, 운명보다도 빨리 달린다.

 

그래서 말이다.

두 번째 사랑이라면, 사랑이 비명을 지르며 '죽이게 좋은' 상황이라도,

그 사랑이 운명보다 빨리 달려서 다가오는 만큼 빨리 달려서 사라질지도 모른단 생각을 해야하지 않을까?

'진짜 사랑', '인생을 걸 정도로, 훈장 같은 사랑'인지 아닌지...

시간이 필요한 것 아닐까?

진짜 사랑을 만난다면, '속도'가 문제가 아닌 것 아닐까?

정말 훈장 같은 사랑이라면, '달리기'의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결혼에 '골 인'하는 일이 소중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나'를 발견하는 것이 소중한 거 아닐까?

 

'한 번만 척 보면 아는' 직관을 가졌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사랑이 달리는 속도에 압도되어 버렸던 일들을 돌아보지 못하고,

다시 사랑이 달리는 데 압도되어버린다면, 해피엔딩으로 열렬한 사랑의 결말을 짓지 못할 수도 있을 텐데...

 

이 소설의 가치는 '작가의 말'에서 드러난 여기 있다.

 

혜나와 함께 일하면서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 놓아야 했다.

그런 속도로 달리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몸에 지닐 수가 없었다.

살면서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대단치도 않았다.

그것들을 내려놓고서도 나는 끄떡없이 달렸다.

반면 내가 대단치 않게 여겼던 것들이 실제로는 중요했다.

예를 들자면, 나 자신.

혜나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가족의 일상을 발라낸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혜나를 따라서 달리다가, 서른아홉의 나를 다시 만났다.

서른아홉, 내 아이를 보듯이 나 자신을 보는 법을 배웠다.

매일매일 나 자신을 만나는 게 고역스럽지 않았던 건 처음이었다.

혜나와 작별한 뒤에도,

나를 보는 이 시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작가의 말' 중)

 

여성들이 결혼과 함께 '나 자신을 보는 법'을 잃어버리기 쉽다.

그래서 '신사의 품격'을 보면서,

네 남자가 뿜어내는 각각 다른 아우라에 감동과 감탄과 탄식과 열광을 하다가 돌아본 곳,

거기서 졸고 있는 남편을 마주하면 '정말 치졸한 자신'이 되어버린 것처럼,

자신의 가치를 '남편'과 '아이', '부의 척도'를 통해 증명하려 하기 쉽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사의 품격' 말고, 그 신사를 바라보는 '아줌마의 품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한국의 위대한 아줌마들의 사랑의 새 지평을 열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심윤경이 마흔아홉, 쉰아홉이 되어 갈수록,

한국의 여성의 '품격'은 높아가고 깊어갈 듯 싶다.

 

'아줌마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시 한 편 붙인다.

내가 신사의 품격에 마주하여 '숙녀의 품격'을 이야기하지 않고, '아줌마의 품격'을 들먹이는 건,

사랑에 들뜬 여성의 마음에 대한 가치도 인정해야 하지만,

여성의 힘이 담뿍 담긴 '흙'과 '물'의 에너지를 뿜어내는 건 '아줌마의 힘'에서 나오는 것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흙 한 줌 이슬 한 방울

                                 김 현 승

 

온 세계는

황금으로 굳고 무쇠로 녹슨 땅,

봄비가 내려도 스며들지 않고

새소리도 날아 왔다

씨앗을 뿌릴 곳 없어

날아가 버린다.

 

온 세계는

엉겅퀴로 마른 땅,

땀을 뿌려도 받지 않고

꽃봉오리도

머리를 들다

머리를 들다

타는 혀끝으로 잠기고 만다!

 

우리의 흙 한 줌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가슴에서 파낼까?

 

우리의 이슬 한 방울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눈빛

누구의 혀끝에서 구할까?

 

우리들의 꽃 한 송이

어디 가서 구할까

누구의 얼굴

누구의 입가에서 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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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03 1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2-08-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벌써 읽으셨다니... 리뷰까지 벌써 쓰셨다니... 빠르기도 하셔라.
글샘 님의 속도에 제가 기절하겠어요. 저는 이 책을 이제 주문하려고 하고 있는데(ㅁ님의 페이퍼를 읽고서)...
한편으론 글샘 님 같이 빠른? 분을 알고 지내서 좋습니다.

"나를 보는 이 시선만은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고..."
"아줌마의 품격..." .....................저를 돌아보게 해요.

오늘 저, 너무 더워서 더위 잊으려고 책을 몇 시간이나 봤어요. 어떤 책을 봤는지는 비밀...
당연히 한 박자 늦게, 남들 다 읽은 책을 읽고 있어서요. 이걸 이미 검증된 책이라고나 할까...요...ㅋ

글샘 2012-08-03 18:22   좋아요 0 | URL
속도가 문제가 아니라니깐요~ ^^
사람의 '품격'을 생각해야 하는데, 맨날 폭력적인 국가의 품격만 따지는 세상에 살고 있죠.

어떤 책을 읽으시면서 더위를 잊으셨을까요? ^^
한 박자 늦는 독서는 없지 않나요? 자기에게 도착한 책을 읽으면 되는 거죠.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