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내 꿈 하나 살아있는 교육 3
윤구병 지음 / 보리 / 199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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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은 어쩌다보니 십년 전 책을 자주 읽게 되었다. 그러면서 마음은 자꾸만 우울해진다. 교실의 모습은 10년 전과 별반 바뀐 것이 없으므로...


윤구병은 상당히 개방적이고 급진적인 철학자다. 특히 교육 운동에 관심이 많다. 그는 남녀평등에도 관심이 많아서, ‘여자는 남자답게, 남자는 여자답게’를 외친다. 하긴 우리 사회에서 인간 해방의 질곡은 얼마나 깊은 골이던가. 그래서 그는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운동에 관심이 많다. 정직한 글쓰기, 가치있는 글쓰기를 외치시던 꼿꼿한 선생님.

그리고 소외받는 삶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가장 상처받은 영혼에 가장 큰 사랑이 깃들 수 있습니다.’는 말로 나타나듯.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를 이야기하듯, 사회가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을 사는 동안 준 것 보다 받은 것이 늘 더 많다는 것 - 이 소박하면서도 근본적인 깨우침이 바로 가난의 선물이라는 걸 이야기하는 그는 천상, 운동가다. 그의 운동은 위에서 이뤄주는 ‘개혁’의 탈을 쓴 개량이 아닌, 아래로부터의 건강한 ‘변화’다. 이집트의 건축가 하싼 파티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건축’에 드러난 메타포처럼.


문화는 뿌리에서 샘솟아

초록빛 피와 같이 세포에서 세포로

온갖 새순에, 잎과 꽃과 눈에 스며,

비가 내리면

젖은 꽃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내음으로

우러나 대기를 채운다.

그러나 위에서부터 사람들 머리에

쏟아 부은 문화는

곧장 눅눅한 설탕처럼 엉겨 붙어,

사람들을 설탕 인형으로 바꾸고

생기를 주는 소나기가 몸을 적시면

끈적거리는 찌꺼기로 녹아 없어지게 한다.


모순이 있는 곳에 운동이 있다.

오늘은 야간 자율학습 감독(?, 자율과 감독의 자가당착)하는 날. 한 바퀴 돌아보고, 에프엠 라디오를 틀어 놓고 책을 읽는데, 교무실 밖, 자판기 커피 뽑는 소리, 칠십 년대 여공들이 타이밍을 먹던 그 심정이 아닐까. 우리 아이들이 그 여공들의 헛된 몸짓들과 다를 것이 무엔가. 천성산 도롱뇽보다 못한 아이들, 도롱뇽들에게는 지들 죽는다고 삼보일배 하시고, 청와대 앞에서 단식하시던 엄마같은 스님이 계셨는데, 나는, 청와대 앞에 천막이라도 치고 싶다. 청와대 앞에 수천, 수만의 교사들이, 학부모들이 천막을 치고 삼십일, 오십일 굶어서 지쳐 쓰러져서, 이 고리를 끊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이 도롱뇽보다 못한 아이들이 하늘 한 번 쳐다볼 시간이라도 있을까? 건물에도 일조권이 적용된다는데... 한국의 고등학생은 건물보다 못해서 일조권도 없이, 희부연 형광불빛 아래서 시력만 떨어진다.


어느 여고 2년생의 글은 이십 년이 지났어도 유효하다. 공순이보다 못한 수인(囚人)의 삶.


노동이다, 노동/ 아니, 징역 3년의 선고를 받은 죄수에게 던져진 가혹한 형벌이다.//

새벽녘 어제의 달이 미처 지지도 않은/ 무거운 하늘을 이고/ 돌 캐러 간다./ 죄수 번호 21060 소속 00 여자 수용소/ 손이 부르트도록 머리가 깨지도록/ 돌을 캔다./ 선생님들은 다이아몬드가 있다고/ 열심히 쉬지 말고 파 보라고 하시지만/ 내 앞에 쌓이는 건, 내 손에 쥐어지는 건/ 쓰잘데 없는 자갈뿐이다.//

어쩌다가 가짜 금강석이라도 캐는 날이면/ 모두들 고함치며 함성을 지른다./ 무엇을 위한 기쁨인지/ 누구를 위한 기쁨인지/ 나 같은 바보는 모른다.//

‘사랑’이란 단어, 잊어버린 지 오래고/ ‘꿈’이란 풍선, 터져버린 지 오래다./ ‘보물찾기-대학’/ 지각이 아무리 변화해도 돌이 대학이 되진 않는데.../ 나 같은 바보는 모를 세상이다.//

돌 캐러 간다./ 오늘도 돌 캐러 간다./ 얼마나 많이 캐내야/ 얼마나 많이 복종해야/ 얼마나 많이 참고 울어야/ ‘대학’을 캐낼 수 있을까/ 아니, 이 수용소를 탈출할 수 있을까...//

‘땅 땅 땅...’/ 소름끼치는 소리, 저 끝없는 돌 캐는 소리/ 무의미한, 쓰잘데 없는/ 21060 가슴에 달린/ 죄수 번호의 명예(?)를 위해/ 허공을 위해/ 돌을 캔다./ 땅 땅 땅... / 오늘도 내일도 쉼 없이...


헤라클레이토스가, ‘멍청한 사람은 모든 로고스에 파닥거린다.’고 했다. 로고스는 말, 풍문, 보도 같은 남들의 이야기들이다. 우리는 정말 중요한 것에는 눈을 감고, 정말 로고스에 파닥거리지 않았나, 레드컴플렉스, 노무현이 멍청하다, 박정희 신드롬, 억울하면 출세하라. 대학가면 살 수 있다는 로고스에 파닥거리다 새장 안에서 피투성이인 채 스러지는 존재일 뿐인 것들이...


도롱뇽보다 못한 우리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눈꺼풀을 밀어올리려 커피에 중독되는데, 누가 위에서부터, 아래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힘을 기울이고 있는가...


한때, 전교조가 교육희망이던 때가 있었다. 전교조가 합법화되면, 뭔가 될 줄 알았다. 전교조 합법화는 ‘로고스’에 불과했다. 교실에 아이들이 30명 수준이면, 수업이 될 줄 알았다. 그것도 마찬가지 로고스였고, 핵심에서 머나먼 것이었다. 교육은 우리의 미래다. 미래를 위해 이제 목숨을 걸고 투자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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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11-05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샘님으로서 고독과 아픔과 사랑이 잘 묻어난 글입니다. 아래로부터의 건강한 변화를 부디 샘님은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분이시라고도 믿고요...

글샘 2004-11-29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롱뇽보다도 못한 아이들에게 제가 도와 줄 건강한 변화란... ㅠ.ㅠ 비관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