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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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때, 빨리 어른이 되어서 안정을 찾기를 바랐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 예정대로 직업을 갖고, 결혼을 했고, 그렇게 살고 있지만,

어른이라고 해서 삶이 고정된 것은 아님을 이제 알겠다.

어른은 무엇이든 안다는 고정관념이 잘못된 것임을 알겠다는 소리다.

 

이금이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래서 중편 소설을 하나 썼는데, 영 미진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소설을 풀어헤쳐서, 열다섯 딸과 마흔다섯 엄마의 이야기를 나란히 세웠다.

그리고 나니, 자기 가슴에 뭉쳐져있던 것들이 다 튀어나와 버렸다.

결국, 작가의 말에 쓸 말이 하나도 없음을 실토하게 할 정도로...

이 소설은, 어른의 성장 소설이다.

 

성장 소설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는 과정을 쓰는 소설을 일컫는다.

그래서 당연히 아이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선 어른의 시점에서,

어른 역시 변화의 도중에서 갈등하는 존재에 불과한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처음으로 자기 고백에 도전한 셈일 것이다.

여느 소설들이 도식에 맞게 착착 진행되었던 데 비하면, 이 소설을 쓰면서 참 오래 걸렸을 것이고,

머리털을 쥐어뜯던 밤들이 참 많았을 것임이 책에서 읽힌다.

이금이 선생님의 소설에 새로운 시기가 열릴 수도 있을 것 같아 반갑게 읽었다.

 

어른들조차 잊고 살기 쉬운 한 가지 진리.

아니 어른들이 애써 회피하고 외면하는 진리, 메멘토 모리.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은 '신기루'와 다를 바 없다.

그렇지만, 욕심에 매여 그 신기루를 좇으며 하루하루 사막을 헤매는 것이 인생이다.

 

요즘 씁쓸한 농담 중에, 북한이 남침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게 있다.

바로 한국의 중2 때문이란다.

중2는 원래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그런데, 왜 중2가 문제인가?

중2는 1998년 생이다.

1998년하면 떠오르는 사건은? 바로 IMF 구제금융 사건이다.

그 고초간난의 시기를 겪으면서, 가족 해체, 해고와 비정규직 양산을 온몸으로 겪어온 세대인 셈.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오로지 경쟁과 승리만을 추구하도록 '노란 승합차'에 태워 학원 뺑뺑이를 시작한 시기...

사회의 독소를 그대로 받아안을 수밖에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들이민 건, 자신도 믿을 수 없는 '신기루'였다.

 

엄마 친구들 중, 튀는 캐릭터가 있다. 춘희다.

벌써 이름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 직업은 작가다.

문학 소녀들이었던 중년 여성들의 여행에서도 춘희는 자유를 찾아 벗어난다.

 

나는 춘희와의 이별을 듣는 순간 휩싸였던 기분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그 애가 품고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시샘이었다.

그건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한 회한이기도 했다. (167)

 

이렇게 작가의 속내를 빤히 드러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거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어른들을 위한 성장 소설과, 치유의 문학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별이 몽땅 들어앉은 듯 가슴 속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72)

 

딸의 시점에서 바라본 미남 가이드에 대한 사랑이 이렇다.

누구에게나 사랑은 문득 찾아온다.

그때, 가슴 속은 무척이나 넓어지는데,

그 속이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을 갖는다.

그 경험을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며 살아야 하는데,

인간은 더 욕심내고 그릇을 엎어치기 일쑤인 어리석은 존재다.

 

한국에 왔다가 산재를 당하고도 추방당한 가이드 니르구이는 그래도 한국을 긍정한다.

좋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나쁜 사람도 금방 불쌍해지는 이유는... 사람은 모두 죽기 때문이라고...

 

지나치게 긍정적이거나 낙천적인 사람은 그만큼 자신을 위로하거나 속이고 싶은 일이 많은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137)

 

내는 내 운명을 사랑하기로 했다.

느그들 내가 지독한 니힐리스트였던 거 모르제.

겉으론 열심히 사는 체 했지만 실제로는 컴컴한 동굴 속에 들어앉아 있었던기라.(145)

 

이 구절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자기 가슴 속 우물을 참으로 오래 들여다 보았을 거다.

그리고 용기를 내서 두레박질을 했을 것이다.

더 가득 자신의 우물물을 길어내기 위해, 두레박을 첨벙~! 빠트리고는 마구 흔들어 댔을 것이다.

그리고 길어올려진 두레박 속의 시원한 우물물을

정말 가슴속까지 시원해 하면서 들이켰을 것이다.

허나, 갈증은 여전할 거다.

삶의 갈증이란, 한 바가지의 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닐 것이므로.

(이금이 선생님의 마음이 이렇게 빤히 보이는 것은, 저 이야기가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삶의 가운데쯤에서... 1년으로 치면 8월이나 9월 정도의 시기에서...

9월의 이틀, 쯤되는 반짝이는 시기를 만들어 보는 것, 참 좋지 않을까?

어차피 삶은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기관차처럼 멈출 수 없는 것이지만,

저 멀리 비추이는 '신기루'를 따라서 희망을 갖기도 한다면 신기루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을 거다.

하지만, 그 신기루가 오로지 '욕망'과 '소유'를 위한 집착을 불러온다면, 결과는 슬프다.

 

Do your best. 란 말은 흔히 쓴다.

하면 된다. 최선을 다 하자. 급훈으로 많이 걸려있는 말이다.

그러나, 그 최선이... 욕망과 소유를 위한 뻔한 클리셰(식상한 관용적 표현)에 불과하다면,

과연 왜 최선을 다해야 하는지, 왜 그렇게 기관차처럼 달려가야 하는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필요도 있다.

 

Be your best.

최선을 다해 살아라. 베스트 인생을 살아라. 그런 존재가 되어라.

이 때의 최선은 '욕망과 소유'보다는 '발견'이다.

똑같은 인생에서도 발견하는 안목에 따라,

삶은 가치있는 것도, 무가치한 것도 될 수 있다.

 

이왕이면, 가치로운 삶으로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무언가를' 이루기 보다는,

최선의 '인간 존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소설을 권해 준다.

 

이 소설은, 나이 마흔이 넘었는데,

부귀영화나 명예가 항상 부족해 헐떡거리는 사람에게,

또는 그걸 얻었다고 해도 항상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에게,

특히, 자식 기른다고 십여 년을 쎄빠지게 고생했는데,

남은 거라곤, 쾅 소리 나며 걸어 닫힌 자식의 공부방 문 손잡이 뿐인 아줌마들이 읽어보길 권한다.

나이 마흔이면, 불혹이라고도 했고, 부록이라고도 했는데,

남은 게 껍데기뿐인 월급봉투거나, 닫힌 자식의 문 손잡이 뿐이라면,

참 쓸쓸하지 아니한가?

 

쓸쓸한 그대가 고비 사막으로 날아가지 못한다면, 이금이를 만나 보라고 권해 주고 싶다.

 

-------- 생각해볼 표현.

 

15. 내 악어 눈물에 넘어간 아빠는... 악어의 눈물은 '가식적으로 눈물을 흘림'의 의미인데, 악어가 잡아먹은 동물을 불쌍히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눈물샘이 자극되어 나는 것일 뿐임에서 나온 말이다. 이 소설에서는 딸이 아빠에게 연기를 펼치며 눈물을 보여 여행을 따라가게 되는 상황이어서... 악어의 눈물... 이 담고 있는 가식적 이미지, 가증스런 정치인의 레토릭(수사)로서의 눈물(전에 이 모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하면서 보인 눈물이 딱, 이거다.)과는 좀 다른 것 같아서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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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2-05-05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귀영화가 부족해 헐떡거리는 사람 여기 있어요~~ 요즘 제 화두.어떻게 해야 돈을 벌까? ㅎㅎ
우석훈은 불혹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없어지는 시기라고 하는데,
전 혹시나 부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아직도 살고 있네요. ㅠ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 두었어요^*^

글샘 2012-05-06 12:52   좋아요 0 | URL
충분한 월급, 세상엔 없다는데요 ^^
혹시나, 로또를 사세요.
역시나, 꽝이겠지만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