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증언 1
존 카첸바크 지음, 김진석 옮김 / 뿔(웅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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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청계 광장에서 촛불 집회가 열린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최근 미국에서 광우병이 재발하였으나, 한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없이 미제 소고기를 수입하겠다 했고,

그 반발로 촛불이 재점화된 것이다.

올해는 대선이 있는 정치의 해이므로,

먹거리를 소재로한 이런 촛불집회를 초반에 제압할 필요성을 느낀 것 같지만, 역부족일 것이다.

왜 정부는 촛불 집회를 방해하는지?

형식적으로 촛불 집회를 가로막는 어버이 연합, 경찰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

집회가 열리고 반대자가 있다는 '사실'은 크게 중요치 않다.

그 이면에 깔린 음모와 저항의 부딪힘의 접점을 읽어내는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 중요한 것인데,

언론이 통제된 지금 방송은 진실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팟캐스트 방송으로 힘을 얻던 나꼼수도 정봉주 구속과 김용민 멘붕 사태로 힘을 잃어가고 있다.

억압은 계속된다.

그러나... 사실 보도만도 제대로 하는 기관이 없을 때, 국민은 '진실'을 읽기 힘들게 된다.

 

지난 주 부산에서 수십 년만에 공연된 '미스 사이공'을 보고 왔다.

사이공(지금의 호치민 시)의 킴이란 아가씨는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처녀다.

전쟁 중에 양공주가 많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이 아가씨는 한 미군과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전쟁이 끝나고 미군은 본국으로 돌아간다.

킴은 미군의 아기를 임신하여 낳은 뒤 기르는데, 나중에 미군 크리스는 헬렌과 결혼한 후 그 사실을 알게 된다.

갈등 사이에서 킴은 목숨을 버리게 된다는 이야긴데...

이야기의 '관점'은 철저하게 미군의 시점을 유지한다.

미스 사이공은 그저 불쌍한 전쟁 희생양처럼 그려지게 된다.

베트남 전쟁이 추악한 미국의 욕심이 저지른 범죄행위였다는 진실은 은폐한 채로...

또 베트남 전쟁의 '진실' 속에는, 그 숱한 미스 사이공들 뒤에는 '따이한'의 자식들도 숱하게 버려지고 왔다.

그 진실은 아직도 어두운 베일 속에서 잠자고 있다.

 

사실은 은폐되기 쉬우며, '진실'을 밝히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주제를 펼치기 위하여,

존 카첸바크는 징그러운 연쇄살인범들을 등장시킨다.

절대악인 살인범들 사이에서 '진실'은 조작되며 왜곡되고, 매슈 코워트란 저널리스트는 그 사이에서 이용당하기도 한다.

 

원 제목 just cause는 '정당한 이유, 공정한 사유'라는 뜻이란다.

합리적인 이유 없이 군중심리의 통제를 위해 범인을 지목하고,

속성으로 수사와 소송을 진행하여 얄팍한 결과를 내보이는 사건 처리의 과정은,

통념으로 속고 속이는 현대사회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알라딘 설명)

 

알라딘 설명과는 다르게, 내 생각엔,

Just Cause를 제목으로 달았을 때, 저자의 생각은,

<올바른 동기>, <동기는 좋았으나>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주제를 드러내는 제목이 한국어로는 의미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제목을 다시 달았는데,

'마지막 증언'은 사건을 이끌고 가는 가장 핵심적 소재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주제를 드러내기엔 적합하지 않다.

제목 선정에 고민이 많았을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흑인이란 이유로 범죄자의 낙인이 찍히기 쉽다는 통념을 이용해,

저널리즘의 선정성을 활용하면서 연쇄살인범의 '마지막 증언'은 그 진실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게 된다.

사건은 계속 복잡하게 꼬이지만, 결국 해결을 보여주기보다는,

진실은 미궁으로 들어가는 아리아드네의 실처럼

실마리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재가 흥미롭고, 사건 전개가 반전을 보여주면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두 권으로 분책되어 있는데, 1권이 330쪽, 2권이 400쪽이다.

1권에서 거의 사건이 해결되는 듯한데, 아직 더 두꺼운 2권이 남아있으니, 분명히 어떤 반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한다.

그렇지만, 작가는 여지없이 또다른 반전의 가능성을 심어두는 재미를 잊지 않는다.

 

흑인 피의자 퍼거슨은 기자를 만나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면 모질게 싸워야만 한다는 걸 그땐 깨닫지 못했죠.

제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어선 안 된다는 걸요."(57)

 

그러나, 다시 퍼거슨은 이렇게 묘한 말로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정말로 저에 대해 아시는 게 뭔가요?"

 

연쇄살인범 설리번은 코워트에게 묘한 말을 던지는데, 여기서 이 소설이 추구하는 진실의 문제가 밝혀지기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말해봐, 코워트, 자네도 살인자지?

생명을 없앤 적이 있느냐고. 가량 군대에서라든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법한 나이로 보이는데...

아내나 여자 친구에게 낙태를 강요했던 적은?

마약을 하진 않았나? 그러는 동안에 사라지는 생명이 얼마나 많은지 알지?

말해봐, 자네 역시 살인자지?"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을 담 밖으로 밀어내고 담장 안의 사람들은 무죄라고 선언한다.

그렇지만, 그 담의 경계에 대한 진실은 은폐되고 있을 뿐이지, 사실은 밝혀지고 나면 명백하게 담장이 허구였음을 알게 된다.

 

얼마 전, 여자를 토막내 살인했다는 조선족 이야기가 신문을 도배한 적이 있다.

곽노현이나 노무현, 한명숙처럼 표적수사를 당하는 경우에도 피의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로 추정된다는

법률의 abc 조차도 지켜지지 않게 된다.

사실을 밝혀 진실을 캐내는 데, 선정적인 언론은 관심이 없다.

오로지 여론을 호도하여 정권이나 언론이 이끌고 싶은 방향으로 여론을 호도하는 데 목적이 있다.

3년 전, 용산 참사 이후, 강호순 사건으로 도배된 신문이나, 작년 한미 FTA 이후로 학교폭력으로 도배된 신문...

올해 총선 전, 김용민 사태로 도배된 신문들을 보면, 도저히 언론이라는 공적 도구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무책임하다.

 

언론의 진실은 그렇다는 것이 사실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이었는지에는 별무관심이란 이야기다.

흑인으로서 성실히 살아온 브라운 반장의 이야기는 시니컬한 목소리로 주제를 변주한다.

 

"세상일이란 건 말이야. 사람들 생각만큼 단순하게 또 매끄럽게 돌아가지 않아.

항상 혼란이 생겨. 의문은 늘 남고, 의심도 사라지지 않아."

 

같은 주제를 설리번의 독설로 옮기면 이렇다.

 

"얼마나 고집이 세냔 말이야. 아무리 보여줘도 전혀 보지 못하는 족속들이 있어. 그렇잖나?"

 

그 주제를 가장 함축적으로 표현한 말이 여형사 셰퍼가 퍼거슨의 허름한 집을 찾아갔을 때

퍼거슨이 남긴 말에 들어있다고 읽었다.

 

"사람은 자기 안에서 살죠.

세상이 아니라, 자기 내면에서요.

사형수 감방에서 배운 첫 교훈이 그거예요.

많은 것 중 첫 번째였죠.

감옥에서 배운 것을 감옥에서 나온 다음에 전부 잊는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존재다.

세상에 그래서 '사실'과 '진실'은 판별되기 어려운 것이다.

죽음을 직면하게 되면, 진실은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정도로 가볍게 흔들리는 것이 본질임을 알게 된단다.

 

돈도, 명예도... 삶에서 중요하다는 사실 역시 죽음 앞에선 무화되듯이 말이다.

 

---------------------------- 번역에서 조금 어색한 부분 몇 군데

 

1-243. 2-41. 대량 살인범...

1-280. 연쇄 살인범... 요게 더 흔히 쓰이는 표현인데...

 

2-120. 신발 자국이... 리복 농구화로, 275센티미터에서 330센티미터 사이의 사이즈였다.

          원문에선 11인치에서 13인치 사이의 사이즈라고 나왔을 법 한데... 그걸 센티미터로 옮기니 좀 웃기게 되었다. ㅎㅎ

          어느 한국인 형사가, "범인의 발은 275~330센티미터 사이입니다." 이러고 말하냔 거다.

          그리고 심각한 건 말이다. ㅍㅎㅎㅎ 275센티미터는... 2미터 75센티다. 음... 미쿡인 농구화 절라 크다. ㅋㅎㅎㅎ

          밀리미터의 오류인데... 아무리 문과 출신이 옮겼어도... 이런 산수에서 틀리면... 쩜 그렇다.

 

2-123. 신호가 세 번 울리자 수화기 너머에서 신음성이 들렸다. ... 신음성? 신음소리나 한숨소리겠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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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5-03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과 진실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었었는데 말입니다.

사실 조차도 제대로 알수 없는 현실에서 진실을 어떻게 찾을수 있을지 흠흠.

지금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을 읽고 있는데 팍팍 혈압상승 중입니다.
이러다가 퇴근시간때 쯤엔 코피 뿜는거 아닐지 모르겠어요.

글샘 2012-05-03 14:48   좋아요 0 | URL
사실은 fact고 진실은 truth인데...
한국에선 fact조차도 밝히기 쉽지 않죠.
하긴, 미국의 9.11 조차도 자작극이라는 둥 하니깐...
9.11이 일어난 건 사실이지만, 그 뒤에 숨은 진실은 누구도 모르죠. ㅎㅎ

위키리크스... 저도 그거 읽다가 터질 뻔 했다는...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