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더 레터 - 나희덕, 장석남 두 시인의 편지
나희덕.장석남 지음 / 좋은생각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중국 전국시대 때 초나라 태생인 유백아는 성연자로부터 음악을 배웠다.
스승 성연자는 제자인 백아에게 수 년 동안 음악 기초를 배우게 했다.
그런 다음 태산으로 그를 데리고 올라가서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우주의 장관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봉래의 해안으로 데리고 가서는 거센 비바람과 휘몰아치는 도도한 파도를 보여 주면서 바다와 비바람 소리도 들려주었다.
백아는 스승의 이러한 지도로써 비로소 대자연이 어울려 화합하는 음성과 신비하고 무궁한 조화된 자연의 음악을 터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수련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백아는 저 위대한 금곡인 천풍조, 수선조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백아에게는 입신출세의 길이 열려 진나라에 가서 대부의 봉작을 받게도 되었다. 그러나 그의 금예가 도달한 참된 경지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는 못하였다.
그것은 음악가로서의 그의 불행이었으며, 견디기 힘든 고독이 아닐 수 없었다.
백아는 진나라에서 20여 성상을 보낸 다음 고국에 돌아와 자기에게 음악의 진경을 터득케 해준 스승 성연자를 찾아갔다.
그러나 오직 자신의 음악이 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스승은 돌아가시고 고금일장만 유언으로 남아 백아를 맞이해 주었다.
백아는 몹시 상심하여 강을 따라 배를 저어간다.
때마침 언덕에는 가랑잎이 지고, 강을 따라 갈대밭에는 갈대꽃이 만발하여 고독한 나그네를 더욱 수심에 젖게 하였다.
백아는 기슭에 배를 대고 뱃전에 걸터앉아 탄식어린 거문고 한 곡을 탄주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스럽게도 어디선가 바람결에, 유백아가 뜯는 거문고의 탄식에 맞추어 어떤 사람의 탄식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이 깊은 가을 저녁, 넓고 적막한 강기슭에서 누가 나의 탄식 깊은 거문고를 들어주었단 말인가?
그때 백아 앞에 나타난 사람은, 땔 나무를 해 팔면서 사는 가난한 나뭇꾼이었다. 그러나 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산천을 다니며 평생을 사노라 자연의 음성과 자연과 교감하는 음악의 참된 경지를 알아들을 줄 아는 종자기라는 사람이었다.
백아는 수십 년 만에 비로소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알아들을 줄 아는 사람을 만난 지라, 거문고의 줄을 가다듬고 아끼는 수선조 한 곡을 뜯었다. 백아가 수선조를 다 뜯고 나자 종자기는 “참으로 훌륭합니다. 도도한 파도는 바람에 휘말려 넘실거리며 흘러가고 있군요”라고 말했다. 백아는 이처럼 자신의 음악을 제대로 감상해 주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다시 천풍조를 뜯기 시작했다.
종자기는 눈을 지그시 감고 천풍조를 다 감상하고 나서 “장엄하고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가슴속엔 해와 달을 거두어들이고 발아래는 무수한 별무리를 밟고 서 있군요. 높으나 높은 상상봉에 의연하고 도저하게 서 있군요”라고 말하지 않는가.
어찌 더 이상 주고받을 말이 필요하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대로 서로를 느끼고 교감할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을 만난 것이 아닌가. 유백아와 종자기는 다음해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때가 되어 백아는 종자기를 찾았으나, 종자기는 병들어 죽고 없었다. 백아는 종자기의 무덤을 찾아가 통곡을 하였다.
그리고는 칼을 들어 그의 거문고 줄을 끊어버렸다.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오직 하나뿐인 그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다시 거문고를 뜯어 무엇 하느냐고 백아는 슬퍼했다.
백아가 “종자기 같은 지음(知音) '내 음악을 알아주는 사람' 이 없으니 연주를 해서 무엇하랴' 라고 하면서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이야기이다.
지기지우... 知己之友... 나를 알아주는 벗.
내가 울고 싶을 때,
내가 술 마시고 싶을 때,
내가 술 마시기 싫을 때... 그런 나를 인정해주는 그런 벗이 있다면 세상 아무리 험하고 더러워도 살 만 하겠다.
그런 백아도 종자기가 죽자 끝내 거문고 줄을 끊어버린다.
진심을 나누는 사람... 만나기 쉽지 않다.
진심을 나누는 사람을 만났을 때는, 용기를 내서 확 잡아야 한다.
놓치고 나서 후회하는 일은... 바보다.
나희덕과 장석남이 백아와 종자기가 되어 편지를 주고 받는다.
두 사람 모두 뛰어난 시인들이어서 편지 역시 우아하고 단아하다.
그러면서도 자연에 대한, 세상에 대한 관조의 시선이 살아있다.
이런 지기를 만날 수 있다면... 세상사는 것도 행복할 노릇이다는 생각이 들어 샘이 날 정도다.
삶이 외롭다는 것을 짐작한 지 꽤 여러 해 되었습니다만,
그 외로움을 이겨 나가는 한 요령에는 자기 마음을 무턱대고 보여주는 것도
가끔 크게 우는 것만큼이나 효력이 있는 줄 압니다.(10)
연암의 '통곡할 만한 자리(호곡장)'가 이렇게 되살아난다.
내 마음을 누구도 들여다본 일 없다.
누구에게도 내 가슴을 오픈한 일이 없었다.
내 마음을 무턱대고 보여주어도 좋을...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삶이 외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는 일은 뒤편을 감싸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뒤편에 슬픔 것이 많다.
당신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마치 비 오기 전 마당을 쓸듯 그의 뒤로 돌아가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주는 일이다.(36)
문태준 시인이 천양희의 시 <뒤편>에 덧붙인 단상이라는데...
참, 절절하게 마음이 움직인다.
누구에게나 뒤편에 슬픔이 가득하다.
그걸 무턱대고 보여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요원하거니와,
누군가의 뒷마당을 정갈하게 쓸어줄 수 있어야 한다니...
사랑을, 득도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편지글이다.
'김영민의 공부론'이란 책을 함께 공부한댄다.
이 책을 인이불발(引而不發, 활을 당기되 쏘지 않는다)로 압축한다.
무협지의 제자가 절간에서 빗자루질부터 하듯,
공부는 진리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고 버텨 내며 힘겹게 에둘러 가는 것이어야 함을...
이 부박한 시대에 필요한 싸움이 그런 공부임을 배운단다.
정조의 화성 축성에서 '아름다움이 힘'이란 말이 나온다.
실용적이면 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지 않다. '아름다움'은 힘이 된다. 충분히.
포은 정몽주의 호 풀이, 포 자가 텃밭, 채마밭이란 뜻이란다. 圃
채마밭에 숨으련다... 오호, 가열차게 아름답구나... 이런 발견, 적어 두고 싶다.
하나 더 있다. 열매가 나무에서 떨어져 나올 때, 그것을 과감 果敢 하다고 한단다.
좀 억지이기도 하지만, 일리가 있다. 다석 유영모 선생이 그런 소리 잘 한다.
식물들에게 장마는 큰 시련이자 성장의 발판이니,
사람의 일생에서도 한 번씩 찾아오는 사랑은 그와 같은 역할일지 모른다...
세상은 사랑을 두고 이루어지니 그렇지 않니 운운하기도 합니다만
생각해보면 사랑으로 무얼 이루겠습니까.
결론이 있다면 그것이 과연 사랑일까 되물어 보기도 합니다.
쉽게 생각해서 결혼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거라면 사랑은 참 쉽기도 한 셈이죠.(139)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랑을 통하여 얻는 성장의 발판이란 소리... 쉬운 말이지만... 실천하기 참 어려운 말이다.
아무리 평탄해보이는 연인 관계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사랑하는 쪽과 덜 사랑하는 쪽이 있게 마련.
또 두 사람 중에서도 강자와 약자, 또는 현실적 강자와 약자가 있구요.
무슨 관성처럼 두 사람 사이에 한번 정해진 역할이나 질서가 좀처럼 바뀌지 않는
그런 불균형이 지속되고 심화되는 과정...
사랑의 기울기를 감지하는 순간부터 고통은 찾아오고,
그런 자각 자체가 사랑의 기울기를 더 경사지게 만드는...
그런데, 그 기울기 때문에 사랑은 거래와은 다른 것이 됩니다.
사랑의 저울은 늘 이렇게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죠.
그 맹목적인 불균형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아닐까?(147)
사랑의 어려움을 기울기, 배의 기울어짐을 비유로 들어 표현한다.
뭐,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암튼, 사랑의 균형감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서로의 감정이 한결같지 않기 때문이겠는데,
속된 말로 밀고 당기기를 잘 해야 한다는 말인데...
사랑의 저울은 늘 이렇게 불균형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법인 모양이다.
그 저울질에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되면, 속된 말로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삶에서도, 사랑에서도,
늘 깨어있는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을 일깨우고,
더불어 종자기와 함께 걸어나갈 미래를 향해 나란히 눈길을 두는 것.
그것이 삶의 바람직한 자세이자, 사랑의 자세이겠다.
백아에게 종자기가 꼭 필요했듯,
삶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사람은 꼭 잡을 일이다.
두 시인의 편지는 많은 생각을 뿌려주기에 좋은 책이다.
좋은 생각들을...
그래서 이 책은 좋은 생각에서 만들었는지도...
104. 차별이 없는 무등의 정신... 이라고 했는데... 무등(無等)은 최상급이다. 견줄만 한 것이 없다...는 최고라는 의미다. 평등으로 바꾸는 게 적절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