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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널리스트
존 카첸바크 지음, 나선숙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7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추리소설이고 스릴러다.
그런데, 그 추리가 사건을 뒤쫓는 형사의 그것이 아니라,
도무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의 뒤를 쫓다가 좌절하게 되는 심리 분석가의 이야기이다.
심리 분석가의 심리를 좇아서 가노라면,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나임을 증명할 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는 것, 내가 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런 존재론과 인식론의 철학적 명제와 부닥치게 되는데,
그런 철학적 사유로 독자를 밀어내지 않는 쫄깃함을 작가는 구사할 줄 안다.
진실이라는 게 확실하고 명백하게 드러나던가요?
아니면 일찍이 애매하고 분명치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듯 오만 가지 기이한 심리적인 편견들로
가려지고 은폐되고 숨겨져 있던가요?
진실은 결코 흑도 백도 아니에요.
회색이나 갈색, 심지어 빨간색에 더 가깝죠. (133)
이런 말들은 일면 삶의 측면을 혼란스럽게 보여주는 것 같지만,
어쩌면 삶의 복잡다단함을 잘 드러내는 철학적 언술이기도 하다.
스스로의 존재감에 의문을 가지는 부분은 곱씹어가며 읽어볼 필요가 있다.
정신분석가는 무엇을 하는가?
리키는 자신에게 물었다. 그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깨뜨릴 수 없는 규칙들을 수립한다.
하루에 한 번, 일주일에 닷새. 그의 환자들이 문앞에 나타나 지정된 벨소리를 울렸다.
그러한 규칙성으로 그들의 혼란스러운 나머지 삶이 형태를 얻었다.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412)
얼마전 읽은 '이지누'의 '찔레꽃 냄새~'란 책에서는,
삶에서 규칙이라고는 없는, 그러나 엄밀하게 시간개념이 없으나 일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문 할배가 나온다.
현대인은 이 정신분석가처럼... 단순한 규칙들에 의하여 스스로를 통제하고 있다.
과연 그 규칙들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인가? 비인간화로 이끄는 것인가? 생각해볼 문제다.
스릴러의 묘미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데 있다.
이 책은 스릴러로서도 훌륭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전개가 빤한 추리소설의 궤도를 벗어나, 도무지 오리무중인 안개 속을 헤매는 듯한 주인공을 잘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 꾸준히 문제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채권자>는 <채무자>보다 기억력이 좋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그에게 빚을 졌다고 믿고 있다. (158)
이렇게 주인공은 계속 채무자의 입장에서 쫓겨가며 불안해하게 된다.
간혹 미국 소설에서 만나게 되는 언어의 묘미는 '인디언의 사고'가 담긴 듯한 자연에 대한 경이를 읽을 수 있는 부분인데,
강 건너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캣스킬 산맥 쪽에서 우르르 대포소리같은 천둥의 울림이 들려왔다.
초자연적인 난쟁이와 요정들이 우묵한 초록의 분지에서 공굴리기 하는 소리라고 전해지는
그 지역의 전설이 떠올랐다.
이런 부분을 읽으면, 아무리 추리 소설 속이지만,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류시화가 이번에 쓴 책 중에 이런 시가 있다.
돌의 내부가 암흑이라고 믿는 사람은
돌을 부딪쳐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에 별이 갇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노래할 줄 모른다고 여기는 사람은
저물녘 강의 물살이 부르는 돌들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울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아직 모르는 사람이다
돌이 차갑다고 말하는 사람은
돌에서 울음을 꺼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 냉정이 한때 불이었다는 것을 잊은 사람이다
돌이 무표정하다고 무시하는 사람은
돌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안으로 소용돌이치는 파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 무표정의 모순어법을(류시화, 돌 속의 별)
삶을 살면서 남의 고통에 깊숙이 개입해보지 못한 사람.
특히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타인의 고통에 깊은 연민을 느끼지 못하는 현대인의 삶은... 의미가 실종되어버리기 십상이다.
자칫 일에 매몰되어버리면,
타인은 지옥, 이 되어버리기 쉽고,
밥벌이의 지겨움에 몸서리치기 쉽다.
돌에서 온기를, 울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은,
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를 잃어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숱한 실패담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동병상련의 아픔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작가의 <어느 미친 사내의 고백>과 함께,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기에 좋은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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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어색한 부분이 몇 군데 있어서 체크를 해 두었는데,
오래된 책이어서 수정될 기미는 안 보이겠지만,
암튼, 번역의 문제든, 언어 구사의 문제든, 생각해 볼 문제라서 적어 둔다.
120. 불만서... 아무래도 어색하다. 불만족 처리 신청서... 이런 정도면 통할까?
140. 아니, 짐머맨이 정말 그 편지를 썼다면 그가 자기 이름을 타이프로 쳤다... ? 쳤을 리가 없다... 정도는 돼야...
171. 살갗 아래의 모든 내장으로 들어가 죄어대는 듯 했다. 장기로... 이런 게 낫지 않나?
300. 리키는 남자의 쇄골을 움켜 잡았다. 멱살이겠지. 쇄골을 어떻게 잡아. ㅎㅎㅎ
305. 쇄골을 움켜쥐었던... 역시... ㅜㅠ
308. 사망진단서에 부착된 수사보고서에 의하면... 첨부된이 맞을 거 같은...
325. 불에 타다 꺼진 재료의 독특한 냄새가 대기 중에 배어 있었다. 공기 중에...가 좋겠다? 대기는 아무래도 스케일이 큰 거 ...
346. 여름날 오후 시간... 변천의 순간이다. ... 변화...가 어울리겠다.
465. 제한속도보다 8킬로미터 빨리 달렸다... 미국은 마일을 쓰는 나라지만... 5마일 정도면 시속 8킬로미터가 된다. 계산은 맞지만 아무래도 8킬로미터... 는 좀 어정쩡하다. ^^
찾아보면서 새롭게 알게된 사실.................
8월 휴가 다음에 노동절이 나온대서, 어~ 메이데이는 5월 1일이고,
노동절은 미국에서 유래한 건데... 이러고 알아보니,
미국, 캐나다는 공산주의(인터내셔널)자를 싫어해서, 9월 첫 월요일을 노동절로 삼는단다.
한국이 근로자의 날이라고 해서 3월 10일 기념식을 하지만 5월 1일 많은 노동자들이 쉬는 것과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