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 읽기 나남신서 75
공선옥 외 지음,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엮음 / 나남출판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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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1년에 책을 300권 가량 읽는다고 하면 사람들은 화성인 보듯 한다.

학교에서 그렇게 일도 많은데, 또 툭하면 술마시는 거 다 아는데,

무슨 시간에 300권을 읽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건데...

 

이 책에는 시인, 소설가 등의 어린 시절에 어떤 계기로 독서가 자기에게 다가왔는지,

그리고 그 독서는 시인, 소설가가 되는 데 어떤 힘이 되고 자양분으로 사람을 길렀는지,

청소년 내지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적은 책이다.

 

대부분 가난으로 시작해서, 창작 시절의 신고와 고통을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책은 친구였고, 선배였으며, 인생의 등대이며 이정표였고 나침반인 동시에 삶의 지도였다고 이야기 한다.

 

틈틈이 들어있는 시 같은 작품도 좋다.

 

내 손에 시 있다...는 함민복 시인의 말에...

정말 시가 있다. ^^ 이제 나도 시인이라고 해야겠다. ㅎㅎㅎ

 

 

공선옥이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읽으며, 눈물흘리는 소주 이야길 하는데,

나도 소주를 마시며,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끌고... 눈길로

깊은 산골로 가고프단 생각을 몇 번이고 하게 된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부분)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 '저 사람 소리엔 그늘이 없어' 란 말을 한단다.

 

인생의 그늘, 즉 쓰고 맵고 어렵고 힘든 인생살이가 녹아 있는 소리가 아니란 뜻.

소리에도 그 속에 인생의 고난과 시련과 좌절과 아픔이 녹아있는 소리가 참된 소리고, 참된 인생인 거...

그래서 정호승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서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표현을 했다는 거.

 

몽구스 크루의 정여랑은, 최승자의 시를 기대어 살았단 이야길 한다.

신산함... 이 그대로 읽힌다.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최승자, 내 청춘의 영원한)

 

정여량이 이 시를 읊는 마음에 나는 그대로 젖어든다.

내가 그랬던 거 같아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거 같아서...

 

 

다나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서는 삶과 독서에 대한 생각이 잘 드러난다.

 

인간은 살아있기때문에 집을 짓는다.

그러나 죽을 것을 알고 있기에 글을 쓴다.

인간은 무리를 짓는 습성이 있기에 모여서 산다.

그러나 혼자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책을 읽는다.

독서는 인간에게 동반자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 자리는 다른 어떤 것을 대신하는 자리도

그 무엇으로 대신할 수 있는 자리도 아니다.

독서는 인간의 운명에 대하여 어떤 명쾌한 설명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삶과 인간 사이에 촘촘한 그물망 하나를 은밀히 공모하여 옭아놓을 뿐이다.

그 작고 은밀한 얼개들은 삶의 비극적인 부조리를 드러내면서도

살아간다는 것의 역설적인 행복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만큼이나 불가사의하다.

 

나는 왜 읽는가?

 

하도 삶이 허접하여...

좀 읽으면 허접함이 좀 가려질까 하여 읽는다.

 

그래서 읽으면서 좀 나아졌나?

 

읽으면 좋은 점은,

나랑 비슷하게 허접한 사람들이 옆에 많다는 걸 발견한다는 것이고,

다만, 그래서 위안을 받을 뿐이다.

나아지진 않는다.

인간은, 원래 허접한 존재임을 배우는 거랄까.

 

그런데 왜 읽나?

 

안 읽는 인간들은, 허접한 줄도 모르는 거 같아서,

혐오스런 인간이 되진 않기 위해서... 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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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 2012-04-20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일년에 많이 읽어야 60권정도 밖에 안되서 책 읽는 인간입니다라고 할것도 못되지만, 그래도 가끔 도대체 왜 책 읽는 일에 왜 이렇게 집착을 할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해보곤 하는데 글샘이랑 좀 비슷한 결론이에요. 좀 더 나은인간이 되려고...지금 허접하니까 더 허접해 지지 않으려고 그래서 읽는다라는... ..
그런데 글샘 원래 사람들 손금이 다 비슷한건가요?
저도 글샘 따라 해봤는데 잔손금 약간을 빼고는 똑.같.네요
일년에 시 한편도 안 읽는 저도'시인'되는 건가요 ㅎㅎㅎㅎ

글샘 2012-04-20 10:34   좋아요 0 | URL
일년에 한 권도 제대로 안 읽는 인간도 많을걸요, 뭘~
비슷한 결론이세요? ^^

손금이 거의 비슷하죠. 시인처럼...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