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지아 쿠피 - 폭력의 역사를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인
파지아 쿠피 지음, 나선숙 옮김 / 애플북스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아프간의 현대사는 한국의 그것보다 더 폭력적인 것으로 점철되어 왔다.

특히 여성에게 있어 탈레반의 폭력은 극에 달했다.

이 폭력을 뚫고 스스로 태양이 된 여성 정치가 파지아 쿠피의 이야기이다.

 

죽음의 문턱을 네 번이나 넘나들면서도 아직도 아프간의 미래에 희망을 가진 정치가.

그는 아프간 사람들의 사랑을 가득 받는 살아있는 희망이다.

그들의 현대사는 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역사였다.

그것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받아들이기 힘들다.

상실감이 너무나 크고 부재가 남긴 구멍이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것 같다.

그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고통이 늘 충치처럼 욱신거린다.

하지만 그 고통을 완화시켜 줄 진통제는 없다.

 

나는 이제 사랑하는 사람을 인사도 없이 떠나보내는 것이 익숙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왜냐고 물어봤자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시절에는 그게 우리 삶의 방식이었을 뿐이다.

 

이런 구절을 읽는 일은 가슴아픈 일이다.

이것이 삶일까? 과연 이런 곳에서 사는 일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건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일 중 하나야.

집을 잃는 것도 끔찍한 일이야.

하지만 어쩌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바로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일 거야.

자신이 누군지 잊어버리고 꿈을 잃는 것은 가장 슬픈 일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두 딸에게 주는 편지에서)

 

상실만을 요구하는 국가에서, 자신을 잃는 일이 가장 슬프다는 언술 자체가 슬프다.

 

어느 가난한 마을에서 7년 새 다섯 아이와 여섯째를 임신한 병든 한 여성을 만난다.

그녀에게 병원에 갈 것을 이야기하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날 병원에 데려가려면 염소나 양을 팔아서 치료비를 마련해야 해요.

남편이 가겠다고 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우리가 거기까지 어떻게 걸어서 가겠어요.

우린 나귀나 말이 없기때문에 사흘이나 걸어야 해요.

 

내가 죽으면 남편은 다른 여자랑 결혼할 수 있어요.

가족은 염소젖과 양고기를 먹을 수 있고요.

하지만 염소나 양이 없어지면 이 가족을 무엇으로 먹여 살리겠어요?

어디서 먹을 것을 구하겠어요?

 

비유적으로 '희생'적 삶이 아니라, 이 여인의 삶은 날것 그대로 '희생'이 아닌가?

 

후진적 아프간 족벌 정치 시스템을 비꼬는 말이 있다.

 

"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내 사촌/조카/집안의 오랜 친구보다 더 나은 사람이 누구겠어?"

뭐, 우리 나라랑 비슷하다. ㅎㅎ

 

파지아 쿠피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교육과 안정'이 밝은 미래를 불러올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오늘도 죽음을 무릅쓰고 정치에 뛰어든단다.

김구 선생이 죽음을 염두에 두고 두 아들에게 '백범 일지'를 남겼듯이,

그도 늘 죽음이 함께 하는 삶을 살기에, 이 책을 남긴다고 하니, 참 삶과 죽음이 맞붙는 아이러니를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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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란1 2012-04-15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파지아 쿠피는 아프간 여성 중에서는 축복받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고, 말이나 차를 이용해서 피난을 할 정도의 재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고요. 제가 알고 있는 아프간에 대한 지식이 단편적이긴 하지만 [천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본 아프간 여성들의 비참함에 오금이 저릴 정도였거든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글샘 2012-04-15 14:59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
탈레반 집권 이후, 여성들의 인권은 땅에 떨어졌다더군요.
휴 =3=3 저런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나... 감사해야 하는 나라지만... 정말 끔찍한 건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