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 무한경쟁 시대를 넘어서기 위하여
플로리안 오피츠 지음, 박병화 옮김 / 로도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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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태스킹이란 게 있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작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것인데,

컴퓨터에서 몇 군데의 포털 사이트에 도착하는 메일을 확인하며,

몇 가지의 메신저가 알려주는 메시지를 확인하여 업무를 수행하고,

수시로 울려퍼지는 휴대 전화와 내선 전화를 받으면서 직장 동료 내지 영업상 알게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틈이 나면,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면서 웹 서핑을 하고...

 

한번에 여러 가지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표시줄에 프로그램을 늘어놓는 일을 넘어서,

한 화면에 여러가지 탭을 붙여서 일할 수 있도록 작업 환경이 진화되고 있다.

 

환경은 날이 갈수록 '스피드'에 적응할 수 있도록 진화되고 있는 셈인데,

이런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기보다 <탈진 증후군 burn-out syndrome>에 시달린다고 한다.

 

내가 겪어봐서 안다.

burn-out syndrome.

종일 누군가가 나를 찾는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리면서,

근무하는 동안 계속 '틈'이라곤 없다.

일을 미뤄두는 동안, 책을 읽는데, 책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계속 일이 빙글빙글 돈다.

책의 내용 역시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서 엉뚱한 초점을 짚기도 한다.

퇴근해 누우면 즉시, 잠에 빠져든다. 나른할~ 틈이 없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새벽 한 시든, 두 시든 퍼뜩 일어난다.

갑자기 컴퓨터로 달려가 전원을 켜고 머릿속에 떠오른 기안문이 사라지기 전에 부랴부랴 컴퓨터에 입력을 한다.

일은 예사로 해가 밝아올 때까지 이어지곤 한다.

다음 날은 종일 피곤하고 지치지만, 또 종일 사람을 만나고 회의하고 정리하는 강박에 시달린다.

쉬는 시간은... 불행하게도 수업에 들어갔을 때 뿐이었다.

머릿 속에선 늘 <이곳 아닌 다른 곳>이면 어디든 행복할 것이란 생각뿐이었다.

 

이게 내가 작년에 살아왔던 불행한 삶이었다.

불면증 이후로, 불안과 우울증이 찾아왔다.

어떤 일을 해도 즐겁지 않고, 졸리기만 하고, 심지어 삶 자체에 대하여 회의가 오기도 했던 거다.

사람들은 혼자서 그 많은 일을 어떻게 했느냐고, 비아냥인지 칭찬인지를 아직도 이야기하지만,

작년 내가 하는 일을 둘이서 떠맡아 허덕이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잘못된 사회에서는 올바른 삶을 기대할 수 없다.

 

아도르노의 말이다.

도대체 학교에서 속도가 무슨 필요란 말인가?

그러나 잘못된 사회 한국에서 교사는 올바른 삶을 기대할 수 없고,

몇 사람은 정해진 배드-빙의 삶에 얽매여야 한다. 내가 거기 끼었던 거다.

 

나 자신이 문제였지만, 추월차선을 달리는 삶은 원래 질이 형편없다는 진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일을 서두르는 사람도 있다.

엄청난 부를 소유했던 노스페이스 대표가 남미의 오지에 가서 국립공원을 만든다고 한다.

부탄에는 국민 총행복 지수가 있고, 국민총행복부 장관이 있다.

 

저자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걷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으로 '시간'을 꼽는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회색도시에서 추적하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행복으로 향하는 길은 자기 자신의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 중요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227)

 

이걸 모르는 사람도 있나?

그렇지만, 잘못된 사회에서...

올바른 삶을 살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투쟁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독일처럼 <조건없는 기본 소득, 성인 200만원, 아동 100만원> 같은 개념이 논의 중인 것이다.

 

탈진 증후군에 고민하는 저자에게 들려준 의사의 이야기는 전혀 의미심장하지도 않다.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과 거리를 두라.

한계를 분명히 하라.

일상을 파괴하는 중독성 있는 습관을 한동안 끊어라.

 

스마트폰을 사줬더니 거의 24시간 그걸 끼고 카톡을 하는 아이들의 세대에

이런 이야기가 가당키나 한 건지... 그것도 분간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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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3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울증에 대한 책을 읽고 있어요. 우울증에 걸려 본 저자가 쓴 책인데
내용이 흥미로워요.(조만간 페이퍼로 올릴 예정임)
컴퓨터, 스마트폰 등 기계에 지나치게 친숙한 요즘 청소년들을 생각하면 정신건강이 걱정이 됩니다.
안 그래도 입시에 몰려 경쟁심으로 가득차 정서 메마르게 보내는 청소년시기에 가장 많이 보내는
시간이 기계로 보내는 시간 같아서...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과 거리를 두라." - 이것, 명언 같아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글샘 2012-04-13 16:45   좋아요 0 | URL
스마트폰이 문젠거 같아요. 휴대폰은 그저 문자나 보내고, 간단한 게임이나 했는데,
이제 동영상에, 음악에, 인터넷에... 무제한 뚫려버리는 거잖아요.
학교가 안 그래도 재미 없는데... 문제가 있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그것과 거리를 두게 하기는 불가능해요. ㅠ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