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나를 물들이다 - 법정 스님과 행복한 동행을 한 사람들
변택주 지음 / 불광출판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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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1일 오후 1시 51분.

때 아니게 길상사 범종이 울렸다.

살 때는 삶에 철저해

그 전부를 살아야 하고,

죽을 때는 죽음에 철저해

그 전부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을 담아.

 

법정 스님 뜨신 지 두 해가 지났다.

스님 가시고, 말로 지은 업을 덮으신다고 절판을 선언하셨는데,

그런데, 또 다른 말업들을 지어내는 이들이 있다.

스님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어 찾아 보게는 되지만,

스님의 깊은 뜻을 놓치는 것 같아, 자꾸 아쉬운 마음이 든다.

 

건축가 승효상은 나무에 결이 있고 바람이나 물에 결이 있듯이 땅에도 결이 있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에게 결이 없겠는가. 사람 결은 뭘까?

목숨을 주고받으며 만드는 숨결이다.


법정 스님은 만남은 눈뜸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을 듣고 보니 만남은 낱 목숨이 온 목숨으로 나가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사람의 결은 숨결이고, 만남은 눈뜸이다.

낱 목숨이 만나 온 목숨으로 통해야 만남이고, 사람의 경험이다.

말은 쉽지만, 곱씹어보면 어려운 말이다.


사람들이 가진 거 가운데 무엇보다도 시간이 소중해요.

저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았어요.

일평생 시간을 잘못 쓴 일이 없어요.


그리고 시시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해요.

시시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 속상하잖아요.

시시한 생각을 하면 시시한 사람인 거예요.

가치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어떻게 시시한 생각을 할 수가 있겠어요.

성공이 거저 오지 않아요.

잘 가꾼 벼를 거둬들이는 농부는 부지런히 피땀을 흘렸기 때문에 알곡을 거둬들이죠.


박청수 교무 “제가 라다크에 학교를 짓고 나서 힘이 빠져가지고, ‘스님, 힘이 하나도 없어요.’ 했더니 스님은 ‘큰일 했어요. 큰일’ 그러셔요. 제가 ‘그러면 뭐 해요, 힘이 하나도 없는데요. 제 내면이 바닷가 갯벌 같아졌어요.’ 그랬더니 ‘아휴, 그래야 해요. 큰일을 하고 나서도 힘이 남아서 쩡쩡하면 겸손해지기 어려워요. 그리고 그 일도 공이 되지 않지요.’ 하고 위로하셨다.”

 

이 인생이든 저 인생이든 살아볼 만 하잖아요.

선택한 만큼 맹렬히 살면 되지.

남들 눈치보면서 허투루 살아서는 안 되지요.

얼마나 소중한 삶인데 낭비하면 되겠습니까?

 

철저하게 살아온 원불교 박청수 교무의 삶 역시 치열하다.

짧은 글이지만 많은 공부가 된다.


사람과 가장 가깝고 잘 통하는 동물이 말이라면서 말에게 미소를 보내면 말과 친해질 수 있다.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었더니 사람은 표정을 봐야 알아차리지만, 말들은 바이브레이션, 진동으로 느끼니까 우리보다 더 빨리 알아차려서 금방 친해질 수 있대요.

 

삶에 대하여, 그리고 존재에 대하여 생각하다보면, 동물 역시 별개의 존재가 아님을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살다 보면 울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러나 다른 이 눈을 의식하지 않고 혼자 실컷 울 곳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건축가 김중업은 집 어느 구석에는 울고 싶은 곳이 있어야 한다며, 집을 지을 때 꼭 울음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울음.

남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울기란 쉽지 않다.

세상에, 혼자 실컷 울 곳을 만들기 역시 쉽지 않은 일.


네게 주어진 해가 몇몇 해 지나고 몇몇 날 지났는데, 그래, 저는 네 세상 어디쯤 와 있느냐?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내 세상 어디쯤 서 있는 것일까?

 

늘 조고각하, 어디쯤 와 있는지 돌아봐야 할 노릇이다.


오도자불입 悟道者不入 깨친 자는 들어오지 말라.

공부 목적은 쓰기 위함이다.

도를 닦는답시고 학생에 안주하지 말고, 하루빨리 공부 마치고 나가 세상을 위해 일하라.

 

부처님이 우리한테 진정 전하려고 했던 메시지는 깨달음이 아니죠.

세상 속에서 세상과 함께 사는 일이 진짜 불교 모습이에요.

치열한 삶이죠.

 

도를 닦네 하면서 절간에 안주하는 일을 경계한다. 맞다.


스님은 사랑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선한 눈매를 가지고 기다리고... 사랑은 따뜻한 눈길, 그리고 끝없는 관심!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다.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지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 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서정주,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삶의 의미는 찾아도 찾아도 끝없는 미로와 같다.

여러 인생을 만나노라니 그런 이야기들을 숱하게 만나게 된다.

광주 이후...

사는 일이 참 힘든 거구나.

산다는 게 뭘까 되돌아 보게 되더군요.

세상 일이 내 뜻과는 상관없이, 강요하는 질서나 가치에 의해 나란 존재는 그저 끌려갈 뿐이구나.


인연은 시간이란 체에 걸러진다...

오래 가슴에 담길 말이다.

인연은 오래오래 체로 걸러진다.

시간이란 체 속에 사람이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부모자식 인연도 부모자식이기에 앞서 사람과 사람 만남이다.

인연은 시간이란 체에 걸러진다.

시간 체 속에 사람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길고 짧음이 있다.


시니컬하게, 정수리를 내리치는 한 말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해야 한다.

 

말씀 끝에 영가 천도 이야기를 꺼냈더니,

‘보살님은 그런 데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사촌동생에게 들려준 이야기.

 

어머니가 말리는데도 고집을 세우고 미국서 파리로 건너간 레오 버스카글리아.

끼니를 굶다 못해 어머니에게 ‘굶어 죽어가요, 아들.’ 전보를 쳤다.

어머니의 답신. ‘굶어라, 엄마.’

 

징징거리면 본전도 못 찾는다.


좋은 일을 생각하고 말하면 그 날은 좋은 날

불쾌한 일을 생각하고 말하면 그 날은 나쁜 날

좋은 날과 나쁜 날은 오로지 내 생각과 말에 달린 거.


당연하지만, 사람에게 마음이 전부다.

좋은 날과 나쁜 날 역시...

법정 스님이 들려주시는 꽃 소식이 반갑고 이뻐서 옮겨 둔다.

 

매화는 반만 피었을 때 운치가 있고,

벚꽃은 남김없이 활짝 피어나야 여한이 없다.

복사꽃은 멀리서 봐야 제대로 누릴 수 있고,

배꽃은 가까이서 볼 때 그 맑음과 뚜렷함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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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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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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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14: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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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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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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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0 2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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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4-10 14: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니컬하게, 정수리를 내리치는 한 말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말해야 한다." - 이 말이 마음에 와 박히네요. 제가 생각한 뜻이 맞는지 모르겠는데요...
자기가 지금 무슨 짓(행동)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끝까지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답답하겠죠? 그런데 그게 제 자신일 때가 있더라고요. ㅋ


글샘 2012-04-10 14:37   좋아요 0 | URL
님이 생각하신 뜻 맞아요. ㅎㅎㅎ

아무 생각없이,
말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해서 뜬금없는 말을 뱉을 때가 있거든요.

언제나,
너의 주인은 네가 되어라~ 이런 가르침인 듯 싶어서 적어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