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사록 - 덕성에 기반한 공동체, 그 유교적 구상
한형조 외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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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의 인기 학문이라고 하면 양주와 묵적이었다고 한다.

 

양주와 묵적의 말이 천하에 가득해서 천하의 말이 양주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묵적에게 돌아간다.(맹자)

 

양주는 '제 한 몸 건사함도 어렵다'는 쪽이고,

묵적은 '제 한 몸 희생함을 두려워 않는 겸애의 세상을 만들자'는 쪽이다.

둘다 주장은 다르지만 멋지다.

그걸 맹자는 봐주지 못하고 눈꼴이 시었던 모양이다.

 

시대가 다시 혼란스러워지자 '주자학'이 유교적 질서를 새로이 편성한다.

유교 시대의 사서 삼경 교과서를 새로이 관찰하려는 시도의 하나가 '주자학 텍스트'인 '근사록'이다.

 

논어의 자장편에 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 仁在其中矣이란 구절이 나온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히 묻고 뜻을 가까이서 생각하면 인은 그 가운데 있다.

'뜻을 가까이서 생각'한다는 것은 이미 대학의 '격물치지'의 '격물'에서 말한 '사물을 궁구하여~'와 비슷한 의도겠다.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일'을 통하여 진리에 다가가는 일.

 

 

그것을 가장 체계적으로 다가가려고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역사적 저작이 있다.

바로 '주역'이다.

 

무위의 자연세계 혹은 마음의 내면세계로의 퇴행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 유위의 인간세계로의 진취를 요구하는 애매성은 자연도덕주의의 불가피한 운명이다.(217)

 

자연 세계의 원리를 '태극'이 '음과 양'으로 나누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지만 '음과 양'이 순환하는 것이 태극이라는 입장과,

'양이 있어 음이 있다'는 입장은 또한 상대적인 바,

이 책을 읽으면서, <음과 양>처럼 '유교'와 '도교', '유교'와 '불교'가 선 자리는

양면성을 띤 <상반성>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유사한 개념을 어떻게 끌어다 쓰느냐의 <상대적> 위치에서 바라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했다는데,

이 언표에서 가장 포인트는 <죽어도>라고 생각한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연인이라면,

그 사람의 마음 속에서는 그 사랑에 대한 <영원 불멸>이 자리잡은 것이다.

곧, 그 '도'는 <절대적, 필연적> 도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나처럼 <상대적> 위치에서, 그 도는 <우발적> 인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파악한다면,

공자와 성리학에서 이야기하는 언술 자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죽어도 좋을 만큼 사랑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정말 사랑이 목숨을 걸 만큼 가치로운 것일까?'하는 입장을 버리고 뛰어들어 들어줄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한형조는 서문에서 

 

손쉬운 동조는 위험하고, 쉬운 설득은 무력하다.

 

혹, 그동안 유학을, 너무 이너 서클에서 '당연하게' 설교하지 않았을까.

"한국의 전통이고, 거기 좋은 말씀만 가득하구나"의 안의함 같은 것.

무릇 이방의 사유는 이방의 것으로, '불가해하다'고 적어주는 곳, 거기가 소통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반대편의 경계도 잊지 않아야겠다. '낯설다'는 것이 혹 진리의 징후일 수도 있다.(7)

 

이렇게 읽기에 낯설어하거나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위험성을 짚어 주고 있다.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수험서, 개설서로 기능하였을 근사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주역'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자연도덕주의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주역에 기대고 있는 사상인데,

때로는 읽으면서, 견강부회, 자기 합리화, 아전인수의 방식을 끌어들이기 가장 좋은 책이 주역이란 생각도 든다.

무한한 상상의 바다가 시작되는 지점이 주역이라면,

그 상상의 바닷속에서 자기에게 도움되는 것만을 끌어들이는, 아전인수 역시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중서는 위기지학을 '義'로, 위인지학을 '利'로 나누려 하지만,

그것을 상주고 벌주는 판단 주체 역시 부족한 인간 아닌가. 역시 견강부회가 될 수 있다.

이것을 어디에 포인트를 주어 써먹을 것인가, 그 철학의 입장이 중요한 것이지,

그 이론의 완성도는 결코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보자면,

조선의 성리학은 <왕권 강화>를 위한 유교적 질서를 <웅변>하고자 하였던 학문이었다.

그러나... 그 웅변의 시도는 '궤변' 취급을 받았다.

태조를 이은 태종도 '종법' 질서를 무시한 3남이었고, 세종 역시 형들을 제치고 승진한 케이스의 '3남' 이었다.

그렇지만 또, 성리학적 질서를 위하여 <문자 창조>까지도 불사하였던 세종과,

그 문자를 통한 '소학, 3강행실도' 등의 폭탄 투하는

<근사록>의 연구가 중국, 일본을 뛰어넘는 유일한 국가로 조선을 자리잡게 하기도 했다.

 

이이를 중심으로 한 기호학파가 <근사록>을 중시하였다면,

이황을 중심으로 한 영남학파는 <심경>을 중시하였다고 한다.

같은 출판사에서 심경도 연구한 자료가 있으니 읽어볼 법 하겠다.

 

이창일이 쓴 부분에서 매슬로와 비교한 부분은 재미있다.

기존의 병리학적 심리학 모델을 긍정적 인간발달론으로 긍정적 관점으로 바꾼 그는

자아 실현한 인간의 특성을 재치와 유머로 드는데,

근사록에서는 '근엄과 교훈'이 가득하다는 것.

왜 밥상머리 교육에서 그토록 근엄과 교훈이 가득했는지 생각하게 한다.

 

<근사록>이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은 '극히 제한된 시기의 인간에 대한 증언'으로 읽어야 한다.

그것이 진리가 아님은 물론이지만,

그 시기의 인간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배울 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조선 왕조가 500년을 넘게 연명하였고,

그 사상적 바탕이었던 성리학적 질서는 왕권강화의 다른 짝이었음을 생각하면,

그리고 <한국은행 총재> 역시 아직도 <한국>의 사상적 바탕에는 이황과 이이가 중심이라고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왕조시대, 왕조를 떠받치고 있던 사상적 기초자를 지폐에 떡하니 집어넣은 행태를 보면,

성리학에 대한 연구는 차치해 버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넓혀나가서, 성리학의 현대적 한계와 의의를 밝히는 일이

새 역사를 창조하는 기반이 될 것임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주자학의 현재적 의미를 발굴>하려는 시도로서 이 책의 가치는 크다.

이창일 역시 '선험적 질서가 가져온 선험적 폭력에 대해서는 괄호 속에 넣고자 한다'고 명백히 밝힘으로써,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피상적 비판이 이 책의 주 논점은 아님을 밝히고 있다.

 

주역을 통한 자연론적 토대는 '가깝고 친근한 것에서 하늘과 땅의 의지가 관철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이라고 강변한 근사록,

그것은 조금만 생각해도, <정당화 될 수 없는 필연성에 기초>했다는 약점을 짚이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성리학에서 삶의 길을 바라보는 일도 필요하다.

 

완미 玩味, 에서처럼,

가지고 놀고 맛보는(완미) 감각적 경험처럼,

내적 자각에 이르는 즐거운 길, 도에 이르는 양식으로서 앎의 표준과 행동의 준칙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공부하지 않으면 늙고 쇠약해진다...는 선현의 가르침은 얼마나 지당하고 아름다운가 말이다.

 

함양 涵養, 에서처럼,

물에 젖고, 빠지고, 적시고, 담그는 행동을 통해서 주객의 일체를 경험하고, 사건과 환경이 일치되는 삶을 누리는 일은

또한 얼마나 풍요로울 것인가.

 

세상과 인간이 이토록 단절되어 있고, 소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완미, 함양같은 가치를 가슴에 품고 있다면,

          서로 물들고 번져서 소통의 세상을 꿈꾸는 일도

          다만 꿈으로만 치부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성리학적 질서를 설명하려는 <근사록>을 새로이 읽는 일,

역시 함양와 완미의 재미를 얻는 일이 될 수 있으리라.

이 책의 다른 짝 <심경> 역시 언젠가 읽을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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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3-3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사록의 리뷰도 근사한걸요~^^
전 심경을 읽고 퇴계 어르신이 쫌 좋아졌다는...
그 전에는 활인심방만 죽도록 외웠었다는...

글샘 2012-03-31 15:07   좋아요 0 | URL
양철나무꾼님의 눈물젖은 김밥에 비하면... ^^
절문이근사.. 참 좋은 말이네요.
심경, 도 읽어 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