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가지 행동 - 김형경 심리훈습 에세이
김형경 지음 / 사람풍경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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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경의 심리 에세이는 읽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 책들을 읽는 내 마음은 몹시 불편하다.

김형경을 읽기 싫다는 마음이 계속 일어난다.

왜일까?

 

내 마음 속에서 그를 밀어내는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것의 가장 큰 지점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기댄 여러 가지 설명들에 대하여 나는 부정적이기 때문인데,

물론 정신분석의 훌륭한 점에 대하여 충분히 공감하는 영역도 있지만,

이제 어른인데, 지나치게 어린 시절의 상처만으로 문제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이라면 어른의 언어로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런 생각의 불만이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또,

마음이란 거울은,

자기를 비추어 볼 수 있는 유일한 매개가 되기 때문에 그를 읽지 않을 수 없다.

 

언제나 무언가를 비추려고 준비된 거울 하나가 있다.

내가 거기다 뭔가를 비춰보면, 거기 반사된 상이 맺힌다.

그 상이 망막에 비추이면 대뇌에서 알아챈다.

그런데, 그 거울이 깨끗하지 않다면,

그 거울에 금이 가 있거나, 거울이 평면이 아닌 굴절이 있는 것이라면,

비추일 때마다, 왜곡이 일어나고,

대뇌에서는 혼란이 생겨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걸 분석하고,

또 분석을 위해서 늘 거울을 관찰하고,

나는 관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이른바 '훈습'인 모양.

 

훈습 기간을 보내면서 좋았던 점은,

외재화하는 문제 해결 방식을 없애간 것.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외부에 둘수록 상대에게 힘을 주고 자신은 무력한 상태로 머물게 된다는 것.

 

솔직히 새로울 것도 없다.

조고각하, 라고,

제 발 아래를 내려다 보라는 말이 있다.

제가 어디 서있는지,

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자신에게서 시작하고 마친다는 가르침이다.

 

충탐해판,

충고, 탐색, 해석, 판단의 앞글자. 방어의 언어.

총고는 자기 생에서 실천해야 하는 덕목들을 남에게 투사하며,

탐색은 상대에게 존재할지도 모르는 위험 요소를 경계하는 일.

해석은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타인에게 덧씌어는 일,

판단은 제멋대로 남들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행위.

우리는 누구도 그렇게 할 권리가 없지만, 일상적으로 늘 그렇게 행동한다.

그 모든 행위의 배경에는 그렇게 해야만 자신이 안전하다는 불안감이 존재.

 

요말은 재미있다.

안 그래도 교사들에게 '상벌점제 실시'에 대한 연수를 해야하는데,

아이들에게 충탐해판하지 말고, 상점을 제발 많이 주라고 이야기할 계획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을 비난하는 이유는, 불안감 때문인 거, 맞다. ^^

 

테메노스(융)를 갖도록 노력.

 

고대에 희생제의가 치러지던 신성한 공간.

개인의 내면에 만들어 가지는 심리적 공간.

 

성숙한 인간이라면,

자신의 테메노스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밀의 화원'이 되었든, '비밀 상자'가 되었든,

나름의 생존 무기로 작용할 공간이 한 뼘 이상은 열려있어야,

그래야 성인이다.

 

예술가들이 무의식의 창고에 억압해둔 에로스/타나토스 욕구들을 승화시키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도 없고,

 

인생은,

어떤 것이 아닌, 항상 어떤 것이 되는 기회.(빅터 프랭클)

 

삶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잡고 맞이하는 것이란 말은,

어른의 말이라 맘에 든다.

 

'서정주, 신부'의 콤플렉스를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페미니즘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고, 신화적으로 분석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서정주의 '신부'를 '지나가 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으로 읽는다.

 

한때, 나를 몹시 따랐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난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할 생각이 없어 그에게 서운한 이별을 말한 일이 있다.

그 후로, 신부, 를 읽으면, 몹시 미안하다.

자기 중심적 사고에 휩싸여,

상대의 입장을 배려하지 못하고,

내빼버린 행동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그렇게 마춤한 때를 놓쳐버리면,

오래오래 마음 아프게,

매운 재로 남을,

슬픈 노릇이기도 하다.

 

서정주,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 다홍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

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

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로 잡아당기는 거라고, 그렇게만

알고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가 버렸습니다. 문 돌쩌귀에 걸린 옷자락이 찢어진 채로 오줌 누곤 못 쓰겠다며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사십 년인가 오십 년이 지나간 뒤에 뜻밖에 딴 볼일이 생겨 이 신부네 집 옆을 지나가다가

그래도 잠시 궁금해서 신부방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신부는 귀밑머리만 풀린 첫날밤 모양 그대로 초록

저고리 다홍 치마로 아직도 고스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그 어깨를 가서 어루만지니

그때서야 매운 재가 되어 폭삭 내려 앉아 버렸습니다. 초록 재와 다홍 재로 내려앉아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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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2-03-23 1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형경의 <사람풍경>을 흥미롭게 읽은 저로선 이 책도 끌리는군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에 대해선 글샘님의 의견에 동의해요. 성적으로만 해석한 것도 문제라고 보고요.

나를 몹시 따랐던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 그때 님은 열정이 없었던 거예요. 열정 없이는 연애도 결혼도
할 수 없는 일이니, 미안할 일이 아닌 듯해염.ㅋㅋ잘 모르겠지만, 제 생각엔 그래요.

글샘 2012-03-24 01:57   좋아요 0 | URL
저는 김형경 책을 읽으면, 계속 불편한 느낌이 남아요.
근데, 읽게 되죠. ^^ 프로이트 의존성이 높은 게 불편한 이유라고 지금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여자친구... 미안한 건 미안한거죠. 잘 모르겠지만...
서정주 시를 읽으면, 그런 감정이 살아난단 이야기였어요. ㅠㅜ 그저... 사노라면 그런 미안함이 남을 수도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