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을 만든 13권의 고전 -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진짜 앎을 얻다
쑤치시.웡치빈 외 지음, 김원중.황희경 외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작년에 우연히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을 읽게되면서였던지,

동서양 고전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막상 매번 손에 잡히는 것들은 흔히 읽어오던 것들의 다른 버전이곤 했다.

노자와 장자, 논어나 성경, 금강경 등속과 관련된 책들은 흔히 만나게 되었지만,

내가 잘 다니는 길목에서 늘상 만나던 것들과 달리

우연히도 마주쳐지지 않던 것들은 또 인연이 닿지 않곤 했다.

그래도 작년에 신곡, 일리아스, 그리스비극 등을 읽는 기회를 얻은 것도 소득이다.

 

올해, 강신주의 중국 철학 시리즈 1,2권을 읽다가,

아트 앤 스터디 사이트의 강신주 강의도 내친 김에 하나 듣게 되었다.

그러면서 강신주와 김용규의 '시 읽기'도 함께 읽었고,

듣던 바가 하나하나 늘면서, 서가에 오래 꽂혀서 위용을 자랑하기만 하던 이 책도 펼쳐보게 되었는데,

아, 뜻밖에 반가운 이름들과 단어들이 눈에 확 꽂히는 것이다.

역시 관심을 가지면 알게 되고, 알고 나면 전과 같지 않게 된다는 말이 진리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하나만 들자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필한 것이어서, 각 자료에 대한 무한한 칭송에 머무르지 않고,

의의와 한계를 상당히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공자> 편의 <논어>를 '철학을 잃고 아름다움을 버리다'란 제목으로 핵심을 찔렀는데,

여느 논어 해설이 담고 있는 '논어의 함의의 훌륭함', '공자 사상의 정치함', '공자 사상의 파워' 등을 강조하기보다는,

전면적 '비판'이 함축되어 담겨있는 점이 마음에 쏙 든다.

공자의 정치 사상은 '주례'를 본받아, 사회 전반에 가족 모델의 종법 등급 제도를 정착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고,

그것은 나눌 분 分, 다를 별 別 의 의미를 강조하여 다양성을 숙청하고

개성과 정신적 자유를 억압하는 족쇄로 작용했다는 한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논어부터 멋들어지게 해체시키는 이 책에서,

당대 양대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현학'인 <묵자>를 다음에 내세운 건 당연한 노릇이다.

사적 이익을 희생한 후에 얻는 일체의 이익으로 <교상리>를 상정하고, 천인적 현인을 드높이자는 것이다.

묵자의 사상을 논어 다음에 들이미는 이 책은, 그야말로 제대로 <고전>을 평가할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이들의 저작임을 실감하게 했다.

 

그 다음은 <장자>인데,

세상에 쓰이지 않는 법 이야기를 통해 인생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하여 논한다.

결함 많은 보물창고란 표현도 좋고, 장자는 나도 좋아하던 책이어서 즐겁게 읽었고,

그 뒤를 <주역>이 잇는다.

원시적 사유에서 철학적 사유로... 이행하려는 끝없는 노력이 담긴 주역의 심층 구조를 분석하기엔 글이 짧지만,

주역은 다양한 해석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책이다.

나는 인간관계가 복잡할 때, 주역의 괘상을 찾아 읽곤 하는데, 그 상징성은 충분히 문학적이고 철학적이다.

그런데, 주역이란 책이 담은 자연의 사유를 인간은 <인위적>으로 아전인수, 견강부회하게 마련인 바,

유가는 종법 질서의 규범을 세우기 위하여, 주역의 본질적 모습에 관심이 없고 필요에 맞도록 비틀었다고 한다.

공자가 죽간의 가죽띠가 세 번이나 끊어졌다는 고사도 유명하지만,

도개체 공자가 왜 주역에 그렇게 침잠하였던가를 생각하면, 그 사람, 참 집요했던 것 같다.

 

주역의 一陰一陽之謂道...를 '한번 음하고 한번 양하는 것을 진리라고 부른다'로 해석한다면 세상의 상대성, 순환성에 주목하게 되지만, 유교처럼 '음양의 구분'에 초점을 맞추면, 분별의 차등성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것이 철학의 관점인 것이다.

 

<한비자>에서 개인 의지를 배척한 절대 국가주의의 권위론을 이야기한다.

군주와 국가의 이익을 제외한 그 어떤 것도 가치없음을 강조하는 저작은, 현대의 <국익> 개념과 유사할지...

암튼 법가로 이해하고 있는 이런 것들은 재미도 흥미도 없었는데,

 

<왕충>을 만나면서 눈이 번쩍, 귀가 쫑긋, 말초 신경이 확~ 쏠렸다.

질허망 疾虛妄... 공허하고 거짓된 지식에 대한 질타를 하게 되는데,

당시의 질서의 원리를 수립한 동중서의 생이지지... 나면서 알았다는 허상을 비판하고,

실제적 철학, 유비추리의 아날로지를 통하여 진실을 드러내야 한다는 이야기는 신선하다.

철학은 답이 정해져있는 것이 아닐진대,

철학자들의 저작은 늘 한쪽으로 의견을 몰아댄다.

왕충의 '우연성'이 아름다운 이유가 그런 것이다. 뻔히 누구나 진리라고 아는 것들에 대한 메롱 날리기.

어쩌면 내가 서 있는 지점이 늘 이런 곳이어서 더 즐거운 독서였을지도 모른다.

 

사마천의 사기도 자연과 사람의 관계에 대한 광범위한 횡적 연구(究天人之際), 인간과 역사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종적 고찰(通古今之變), 종횡교차되어 연결됨으로써 문화적 사상체계 구성(成一家之言)한다고 정리하는 것이 깔끔하다.

 

<손자병법>을 탐색하면서 전쟁을 '고립적 행위가 아니라 일련의 행위 과정'으로 파악한다. 유가의 인자무적, 묵가의 비공, 수도, 법가의 법으로 지휘하는 상징적 언술에 비하면, 손자의 전쟁은 <군사 전문가>의 그것인 셈이다.

 

그 외에도 <육조단경>의 가치를 헤아리는 부분도 있다.

중국에 들어온 가장 대표적 외래 사상인 불교가 대승불교가 되면서

개인의 심리적 해방을 추구하던 사상이, 어떻게 국가의 종법 질서에 편승하게 되는지를 설명하는 혜안이 환하다.

 

<주자어류>를 인간에 대한 가혹한 선언...이라고 비판하는데, 아직도 이이, 이황을 위인으로 상정하여 지폐에 넣고 다니는 국민으로서 심히 부끄러웠다.

서양의 칸트가 이전의 타율적 윤리학을 자율적 윤리학으로 바꾸던 시대에,

동양의 주자는 공자의 자율적 윤리학을 타율적 윤리학으로 바꾸어 오래도록 정치철학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는 놀랍다.

모든 것이 <하나>에서 태어난다는, 나중에 나올 <이지>의 비판의 초점이 바로 주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추상적으로 윤리화된 이성은

주희 이학 체계에서 일종의 문화적 윤활유이다.

그것은 어디에나 존재하며 곳곳에 충만하고,

원활하게 삼투하여 그가 세운 체계는 변하지 않는 관성의 가치체계를 이루었다.

이러한 시각에서 주희의 사상을 살피면 유학의 심각한 모순과 위기를 꿰뚤어 볼 수 있다.(596)

 

이런 비판을 한국 학자에게서 읽을 수 있을까?

아직도 한국의 <한국사> 책에서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는 조선의 철학, 성리학을 비판하는 일을 말이다.

 

<몽계필담>이란 책에서는 자연관, 수학, 물리학, 화학, 천문학과 역법, 기상지리지질학, 생물의약학, 공예, 야금, 건축, 농전수리공정 등의 자연과학 분야가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었다고 한다. 나침반을 발명한 것이 중국인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유럽 중심의 과학관에 맞서기 위해 넣은 꼭지 같다.

 

<명이대방록>은 중국 초기의 계몽사상이라고 한다.

明夷괘는 위에 땅이, 아래가 불이 놓인 지화명이괘에서 나온 말로,

'도가 없이 무너진 세상'을 뜻한다고 한다.

천하의 가장 큰일은 야만인들이 도적이 되어 들어와 세금 징수하느라 쉴 틈이 없고 부세의 원칙도 없다...는 비판은 청에 대한 것이고,

명 왕조가 망해가던 시절 집필된 책으로 명왕조에 대한 회복의 희망은 잃었지만, 신념을 상실하지 않았음을 강조한 책이다.

'날 때부터 인간의 자신의 개성과 이익이 있다'는 개방적 이야기는 명말 이지 등의 신념과도 유사하다.

 

마지막으로 <쑨중산> 손문의 이야기.

나의 혁명에 복종한다면 당연히 나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쑨원의 건강하지 못한 생각도 비판하지만,

그의 사유가 철저하지 못했지만 역사의 진보를 따라가는 사상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기도 하여 유의미한 부분은 인정한다.

그것은 마우쩌둥이 인정한 마지막 고전...이란 제목에서처럼, 현재 상당한 무게가 실려있단 말일 수도 있다.

 

뒷부분으로 가면서 공산주의 국가가 내세우는 관점이 드러나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각 고전의 가치를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그들의 차이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지만,

이렇게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 고전들의 '주요 개념'은

복잡하게 붐비는 속에서도 다른 점들이 대조적으로 드러날 수 있어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다.

 

고전의 바다는 넓고도 깊다.

매일 새로운 책들이 고전의 반열에 오르고 그 바다는 더 넓어지고 깊어져 갈 것이다.

그렇지만, 그 바닷가에서 서성이다 보면,

우연히 알곡들로 붐비는 진수성찬을 만나는 날도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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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2-03-08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읽어보고 싶군요. 강신주님 책 읽다보니 요즘은 동양고전에 눈이 가네요..^^
불과 얼마전에 카프카 좋다고 그랬는데( ")
안 그래도 제자백가의 귀환 보면서 열국지 펼쳐들고 있는 요즘입니다. 다시보니 새삼 달라요... 역시 어떤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어떤 생각으로 보느냐에 따라 의미가 틀려지니 신기할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세세하게, 비판적으로 읽히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저도 저만의 생각과 판단으로 읽을 수 있는 때가 오겠죠?^^

글샘 2012-03-09 10:37   좋아요 0 | URL
그렇죠? 강신주 책 읽다보니 눈이 좀 넓어진 거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