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생활을 회고하며 쓴 학생의 글.
상당히 학교의 본질에 접근해 있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느끼는 것을 적기까지는 얼마나 갈등했을까. 그러나 그 갈등의 해결책이 없었던 것이겠지... 난 이런 아이들 앞에 서기가 점점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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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 년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꽤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결코 학교에서의 가르침이라든가 소위 사회화 기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학교는 정말 싫었다. 그래, 그 싫은 곳에서 3년간을 견디어 온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 기간 동안 '초연함'을 얻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지껄여야 되고 억지로 웃어야 한다. 착하게, 원만하게, 조용하게. 그런 것들로 완전 무장이 되어 있다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벗어버리면 참 편리했겠지만, 어쩐지 견딜 수 없는 얇은 가면은 갈라지더니 파편이 돼서 나를 여기저기 흠집을 내놓기 시작했다.
1학년 때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다. '예술가는 이해해 줄꺼야.'라는 당치도 않은 발칙한 생각이었다. 2학년 때 역시 학교 내 사람들이 모두 머리에 흐물흐물한 덩어리를 달고 다니는 게 보였다. 3학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수능 잘 쳐서 대학을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학교는 수능 공부를 위한 장소였다.
물론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뭔가 유쾌한 일이 있었겠지만, 그다지 떠올리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쥐어짜내서 생각해낸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솔직히 지난 3년간 나는 많은 것들을 보았고 배웠고 생각하고 읽었고 놀랄만큼 자랐지만, 나의 '자람'과 학교와는 그다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안타깝다.
그렇지만 나를 좋아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간혹 가다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건 시시한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