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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과 사귀다 ㅣ 문예중앙시선 12
이영광 지음 / 문예중앙 / 2011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이영광의 이 시편들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묻어난다.
육친의 죽음을 잇달아 겪은 그가 바라보는 죽음은
그 거리감이 사라지고 나니
"다시는 사랑하지 말아요, 늦어버린 너무 늦어버린"
'연락하지 말자는 연락'처럼 그의 심금을 울린다.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을 잡고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귀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을 리가 없다 껴안는다는 것은 또 이런 것이다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져 다 잊어버린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이글거리는 포옹 사이로 한 부르튼 사나이를 有心히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필경은 나무와 허공과 한 사나이를, 딱따구리와 저녁 바람과 솔방울들을 온통 지나가게 한다는 뜻이다 구멍 숭숭 난 숲은 숲字로 섰다 숲의 단단한 골다공증을 보라 껴안는다는 것은 이렇게 전부를 다 통과시켜 주고도 제자리에, 고요히 나타난다는 뜻이다(숲, 전문)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앞에서 '삶'은 다시 직조되고 목격된다.
하이데거가 '내팽개쳐진 존재(피투성)'로서의 '불안'을 이야기했던 지점일까?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는 훈계는
죽음을 잊고 건방지게 사는 자들에게 던지는 것인 바,
죽음을 직시하고있는 시인 앞에서 존재는 바르르 떤다.
껴안는다는 것은...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드는 것.
가여운 것이 크고 쓸쓸한 어둠을 정신없이 어루만지는 것.
숲은 텅 비어있는 공간들 사이를 껴안은 나무들이 '숲'자를 이루며 올연히 서서 이루어진다.
인간의 불안감을 회피하지 않고,
그것을 향해 자각적으로 달려나가는 노력,
이것을 '기획 투사, 기투'라고 했는데,
이 기획투사를 통하여 막연한 불안감, 두려움이 개체적 실존의 결단을 수행하는 기쁨으로 변환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죽음앞에 선 자의 집인 관 널에 적힌 '반야심경' 이백육십자는
죽음은 소멸이나 좌절이 아니라,
원래 남도 소멸도 더러움도 깨끗함도 늚도 줆도 없는 것이 삶인 것이고,
공하고 없는 것임을 옷삼아 집삼아 받아들이라는 명령으로 체화되어가는 것이다.
취한 몸을 리어카에 실어 와 아랫목에 눕히듯
관을 내린다
불교도는 없는데도
관 뚜껑에는 누군가 心經을
새겨 놓았다
눈물이 나지 않을까 두렵던 마음이 어느덧
뿌연 눈으로 내려다보면,
이백 예순 말씀 空인 듯, 한 글자로 흐려져
맞지 않는 옷을 입고도 오늘은 신경질이 없어라
난생 처음 오라를 지고도
몸부림이 없어라
식은 몸은 취한 몸보다 더 무겁고
정녕 고요하다 나무 옷,
나무 캡슐이여
다시 들어 올릴 수 없는 무게를 누르고 있는 魔法,
이백 예순 두 자 밝은 경문이여
생겨남도 멸함도 없고
無明도 無明이 다함도 없으나
여기, 아프면 울어 버리던,
매질처럼 선명했던 苦의 덩어리가
사라지려 한다
굳세지도 약하지도 않았던 사람,
사람이었던 적도
사람이 아니었던 적도 없는 자가,
다만 우리가 끝내 몰랐던 어둠 한 덩이가
일인승 비행정에 탑승하려 한다
金剛 주문이여
이제 다 아픈 자의 집,
저 나무 金剛 로켓을 흙으로 봉인하여
몸도 숨도 有情도 없는 곳으로 탈옥시켜 다오
우주를 가로질러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반야의 성좌까지(나무 金剛 로켓, 전문)
매일 한두 번씩 베끼는 반야심경도
이렇게 만나니
반야의 성좌까지 로켓으로 탈옥하려는 자의 '기획 투사'가 오롯이 읽혀
'없을 무' 자와 '빌 공' 자 투성이 글이지만,
사경 자체가 새로운 '기획 투사'가 될 것임을 반추시켜줘 반갑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