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의 풍경 - 삐딱한 교사 조영선의 솔직한 학교 이야기
조영선 지음 / 교양인 / 201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 보니 나의 지난 23년간 교단 생활이 동영상처럼 돌려감기가 된다.

 

1989년 봄,

조회대에 소개된 나는 '여러분하고 친하게 지냈으면 합니다.' 한마디로 부임인사를 했고,

정말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랬는데, 그 학교에서 학생부를 하면서 아이들을 많이 때리고 혼내기도 했지만, 아이들과 여전히 친했다.

전교조의 광풍이 불 때, 군대를 핑계로 도망을 갔고,

부산으로 와서도 학생부 선생을 해야하는 나이였고, 나는 부지런한 학생부 선생이었다.

 

교장,교감은 나의 수업이나 시험문제를 간혹 문제삼기도 했다.

예를 들면, 교과서에 버젓이 수록된 '가난한 사랑 노래' 같은 것도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곤 했고,

촛불 집회 때면, 교감이 엄청 걱정해주는 척 하면서, 수업 시간에 '썩은 소고기' 운운은 자제하라고...

이 동네가 한날당 텃밭이 아니냐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썩을...

 

부장자리가 승진에 도움이 되던 시절,

나는 경력이 있음에도 부장을 하지 못했다.

학생이 급격히 줄면서, 신규 교사를 채용하지 않는 학교 구조에서,

부장을 누구도 하지 않으려고 하던 시기부터,

나는 학생부장, 학년부장, 그리고 이명박표 자율형공립고 부장까지 충성을 다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던가, 되돌아보면... 물음표 없이 살았던 과거는 모두 '괴물'의 삶이었다.

 

이 책은, 읽다 보니 나와 같은 과 후배인 듯한 교사가

풋내기 시절부터 좌충우돌 열심히 살면서 생각한 것들을 기록한 것을 묶은 책이다.

물론 요즘엔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둘 공간이 쉽게 생기지만,

나는 일기를 쓰기보다는 술자리를 찾아다니는 데 젊음을 보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신규 교사때는 조선생과 비슷한 시행착오와 제도적 억압에 저항하는 일을 겪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괴물과 싸우다 보니 어느덧 괴물의 앞잡이가 되어있는 느낌이다.

 

20세기 초반 미국에 이주한 유럽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빵과 장미'가 거론되었다고 한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는 거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교들은 모두 '빵'을 위한 학교다.

'장미'에는 누구도 흥미가 없다.

고교생 신입생 수련회에서도 계속 '대학'과 '스펙'에 대한 이야기만 언급되었다.

그나마 우리학교는 저녁에 동문 선배들이 와서,

공부보다 더 중요한 '삶'에 대하여 이야기해 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떠들었다.

 

희망과 절망을 생각했다.

 

절망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은 '괴물'과 다르지 않다.

괴물의 사전적 정의는 '괴상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실내화를 신는지 지켜보는 교사

운동장에 실내화를 신지 않는지 순찰하고, 흡연자를 잡아내는 교사

아이들의 머리카락이 길다(이건 아무래도 집합이 되지 못한다.)고 벌점 부과하고,

지각(이것도 물리적 집합이 되기 어렵다.)과 무단조퇴를 엄벌하는 교사

아이들이 야간 타율 학습에 동원되면, 복도를 몽둥이 들고 오락가락하는 간수같은 교사...

심지어, 고3 담임은... 쉬는 토욜에 쉬지 않고 순시하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 괴물.

 

아이들과 자유롭게 '수업'만 하고...(우리 학교 수업은, 정규 수업 + 보충수업 + 야간 특강 + 동아리 활동 지도까지 졸라 많다.)

아이들의 진로에 대한 '조언과 상담'을 해 주고...

아이들의 동아리 활동에 같이 참여하여 인솔해 주고...

부모와 교사들이 머리 맞대고 아이들의 <성장>을 위하여 노력하는 학교,는 없다.

 

부모들의 요구도 오로지 '욕망'에 대한 것이고,

교사들 역시 '욕망의 실현'을 꿈의 다른 이름이라고 몰아 붙이며,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욕구 불만'인 자신을 '문제아'로 치부하고 만다.

 

교육이 없는 학교.

거기서 하나의 억압기제로 작용할 뿐인 나를 돌아보게 만든 책이다.

조선생도 그래서 아이들에게 토론을 많이 시켜본 모양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토론을 시켜보기도 했지만, 자치 능력을 길러주기엔 세상이 너무 타율적이고 억압적이다.

 

촛불집회까지를 달려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교육부의 억압적 일제고사에 저항하면서,

물구나무 서기한 세상을 바로 서서 보는 일 역시 멀미나는 일이리라.

 

조선생도 '디베이트' 기법을 좀 배웠으면 좋겠다.

아니, 이미 배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디베이트' 가 전혀 해결책이 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하나의 방법을 배우는 의미는 분명할 듯 싶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디베이트'할 수 있는 회의 풍토, 분위기가 중요한 것이다.

그 분위기는 조선생처럼 '투쟁'하는 이들 덕택에 얻어가는 것이고,

'생각'하는 사람들 덕에 열려가는 것이리라.

 

그러나, 학교는 여전히 어둡고 음습하여 괴물들이 서식하기 딱 좋은 공간이다.

 

'인권'을 이야기하면 괴물로 여기는 현실에서,

아이들을 열심히 지도하는 일이 방향을 잃는다면, 죄악이 될 수 있다.

'눈 먼 사랑'이 '스토킹'이 되는 일...

바로 한국의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잔혹한 사건들의 비유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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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0 23: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02-22 00:56   좋아요 0 | URL
너무 욕심을 과하게 가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학교 구조가 심하게 비틀려서... 신규는 없고, 경력자만 가득하잖아요...
천천히 발전하길 바라야죠.

순오기 2012-02-23 0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9년 봄에 교사가 되셨군요, 나는 엄마가 되었는데...^^
삐딱한 선생님과 삐딱한 학부모가 연대해야 학교도 바뀌어 가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글샘 2012-02-28 02:24   좋아요 0 | URL
저는 삐닥하지 않아요. ㅎㅎ
얼마나 사랑으로 가득한 교사라구요.
교장 교감이나 관료들에게는 영 맘에 안 드는 삐딱한 교사인 것 같긴 합니다만,
학교에서 젤 중요한 건 애들이니까는...
안그래도 저도 올해 학부모 연대사업을 뭘 해볼까 궁리중입니다.

풀꽃선생 2013-09-13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교육공동체 벗에 초대합니다. http://cafe.daum.net/communeb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