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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버 - 제15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ㅣ 창비청소년문학 113
나혜림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클로버 – 나혜림
악마가 유혹하기 딱 좋은 지독한 가난, 거기 놓인 한 중학생이 주인공이다. <파우스트>를 읽을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악마가 자기 신분을 밝히고 거래를 하자고 덤비는데 미끼를 문다? 바보 아닌가? 나라면... 이러면서 그깟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의연함이 내게 있는 듯 으스댔다. 하긴, <파우스트>를 처음 읽을 때가 고 2땐가 그랬으니 세상을 온통 관념으로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지성과 육신이 불일치하는 노인이라면 그런 악마의 유혹에 쉽게 넘어갈 것 같다. 늙어가기 시작하니 조금은 알겠다. 나도 할 수 있는 일은 아직 많은데 몸이 늙어가니 어쩌누, 싶은데 파우스트처럼 영민하고 박학다식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지성이 몹시도 아까워 악마와 거래라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혜림의 <클로버>에도 자칭 자신이 파우스트와 거래했다고 하는 악마가 등장하는데, 이번에 거래 대상은 찢어지게 가난한 중학생 소년이다. ‘만약에’라는 말 한마디만 하면 악마와의 거래가 성사되는, 갖고 싶을 것이 너무나 많은 소년 정인. 할머니와 폐지를 줍고 악덕 사장이 운영하는 햄버거 가게에서 알바를 해야 겨우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복지관에서 주는 햇반과 라면으로 끼니를 이어야 하는, 절대적 가난에 놓인 소년이다.
악마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다가와 정인에게 영혼을 팔라고 유혹한다. 하지만 대상을 잘못 잡았다. 악마의 거래에 쉽게 넘어가는 사람은 가난한 자들이 아니다. 정신이 핍약한 사람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다. 정인은 건강한 아이다.
청소년 소설을 읽으며 이토록 많은 플래그를 붙인 적은 없었다. 명문과 박학다식, 현란한 말솜씨에 드라마로 만들면 좋을 것 같은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이런 글을 보면 역시 소설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아무나’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었던 1인으로서). 청소년 소설들 품질이 엄청 높아지긴 했지만 아무래도 재미와 줄거리가 중심에 놓여 문체라든가 철학적 성찰이라든가 주제의식 면에서 심오한 것들은 많지 않다. 그런데 오랜만에 재미도 있으면서 뭔가 성숙한 느낌을 주는 청소년 소설을 만난 기분이다. 심지어 나는 기억에 남는 문구를 입력해 놓기까지 했다. 그에 대한 나의 느낌 주석도 붙여 본다.
악마는 부잣집에도 찾아가지만 가난한 집에는 두 번 찾아간다 – 순정한 영혼으로 태어났으나 가는 혹은 부족한 부모 탓에 불행해진 청소년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팠다.
인류 역사 3400년간 전쟁이 없었던 날은 268년, 고작 97820일뿐이었어. - 전쟁의 위험을 걱정하는 이시대를 살며, 내가 살아온 지난 수십 년의 세월이 악마가 휴가갔던 귀하디 귀한 시간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감사하면서도 모골이 송연하다. 다시 전쟁의 시대를 물려줄 것인가? 내가 사는 이땅에서가 아니라 해서 다른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끔찍한 전쟁은 어찌할 것인가?
한 잔은 너무 많고 천 잔은 너무 적다. - 오, 이 반어법이라니. 이 상대성이라니!
악마에게 식욕은 없다. 식탐만 있을 뿐. - 잘먹고 잘 사는 이 시대에 갈수록 사람들이 더욱 맛있는 것을 갈구하는 모순.
탐욕은 모든 등식을 부등식으로 만들거든. - 오!
정인은 재아의 손바닥 앞에 제 손을 펼쳤다. 패티를 데우다 생긴 화상, 폐지를 줍다가 노끈에 쓸린 자국이 있는 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손과 돈을 버는 손은 묘하게도 닮았다. - 처지가 현격히 다른 두 아이가 우정의 교감을 나누는 장면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소돔에서 나는 사과는 겉보기에는 아름다우나 재의 맛만 난다고 함. - 지옥의 유황냄새나는 꽃밭처럼, <기억전달자> 속 무채색의 디스토피아처럼, 맛과 향을 지닌 이 소소한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장면.
몸은 급하게 크는데 안쪽은 옹골차게 차오르질 못하고 비었는지, 정인은 눈동자가 깊고 말이 없는 아이로 자랐다. 하지만 그 휑한 안쪽에선 분명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가 났다. 급하게 철들며 포기해야 했을 욕심들이 소년 안에서 뭉근하게 숙성되었기에. 너무 일찍 밥값의 무게를 알아버린 어린 눈에 비친 세상은 소년의 영혼에 풍미를 더해 주었고, 소년이 곱씹어 삼킨 외로움은 근사한 고명이 되었다. - 정인을 악마의 ‘먹이’로 표현하는 대목. 배고픔이 아이를 정신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을까 싶어 읽으며 마음이 아팠던 장면이기도 하다.
복지관에서는 오래된 박스 냄새가 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복지관 건물이 골판지로 지어진 것도 아닌데. - 세상이 함께 힘을 합쳐 가난한 아이를 도와도 어딘가 종이밥을 먹는 것처럼 허전하고 허청하다. 그 느낌을 이렇게 표현하다니!
왜 인간은 불운에게만 묻는가? 행운에겐 ‘왜 나인가? 묻지 않으면서 – 생각해 보니 정말 그러네. 행운이 왔을 때 감사할 줄 알아야겠다. 만약 그 모두가 신의 가호도 악마의 장난도 아닌 그저 우연이라면, 모든 우연에 대해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지옥은 죄 지은 사람들이 가는 곳 아니에요?”
“그럼 지상은? 여기서 고통 받는 사람들은 무슨 죄를 지었는데?” - 악마는 이렇게, 얄밉지만 옳은 말을 한다.
“돈 낭비하는 방법도 진짜 다양하고 창의적이네요.”(호텔에서 악마와)
“산통 깨는 방법이 다양하고 창의적인 것처럼” - 정인과 악마의 티키타카
햇빛은 작열하며 그 아래에 있는 것들을 노동하게 하지만 달빛은 뭉근하게 뜸을 들이며 상념이라는 김을 뿜어낸다. - 우와, 이거 시(詩) 아닌가?
집안 곳곳에 누군가 빨간색 색연필로 ‘오답’ 표시를 해놓은 것 같았다(호텔에서 돌아온 뒤 곰팡이, 뒤틀린 문, 깨진 타일을 가진 집을 보고 느낀 정인의 감정) - 인생이 망가진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이토록 직관적으로 표현한 작가에게 경의를.
인생도 마찬가지고. 마냥 어두운 것 같아도, 그 밤이 지나고 햇빛이 비출 때 어떤 모습이리지는 너희가 결정하는 거다 ; 정인의 국어 선생님의 말(소설 속에서 멋진 말들은 주로 국어샘들이 한다. 나도 국어 선생인데, 우리 아이들에게 저런 통찰력 있는 이미지로 보이긴 하려나?)
돌아서는데 찍 하고 뭔가 찢어지는 소리가 났다, 간신히 붙어 있던 운동화 갑피가 밑창에서 떨어진 거였다. 정인의 자존심도 기어코 찢어지는 것 같았다. 괜찮다, 괜찮다, 나는 괜찮다... - 심리학에서 ‘신체화’라는 표현을 쓴다. 마음의 아픔이 몸의 아픔으로 나타나는 것. 정인은 삶이 무너지는 장면을 아슬아슬했던 운동화가 찢어지는 것으로 느낀다. 그럼에도 ‘괜찮다, 괜찮다...’ 읊조릴 수 있는 성숙한 아이다.
악마(간디를 인용하며); 말을 믿지 마, 차라리 빵을 믿어 세상에는 너무 배가 고파서 신이 빵의 모습으로만 나타날 수 있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잖아
폭력은 비디오 게임, 전쟁은 뉴스 속보, 착취는 초콜릿, 생명 경시는 모피 코트, 환경 오염은 아보카도와 스포츠 카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 그렇게 악마와 손을 잡고 우리는 자본주의를 누리며 잘 살고 있다.
한 칸짜리 집에는 갈등을 넣어 둘 수납 공간이 없다. 이런 격언이 있다니!!
공기 중에 ‘만약에’가 가득 차 있었다. 축축하고 어두운 정인의 머릿속에서 만약에는 풍성하게 포자를 터뜨렸다. -상념에 가득찰 때 내 머릿속은.. 그랬구나, 곰팡이 포자가 퍼지듯, 그래서 잠도 못들고 마음이 아팠던 거구나..
보호자 대기실 문을 나서려던 정인은 제가 걷어찬 슬리퍼를 보고 머뭇거리다가...... 결국 슬리퍼를 아줌마 쪽으로 다시 밀어주고는 나갔다. -그래, 정인이는 착한 아이라니까?
“만약에를 백 번 해도 네가 있어야지.”
할머니의 목소리가 정인의 등을 감쌌다. - 이런 말들을 아이들에게 자꾸 들려줘야 한다.
“저 미성년자예요. 면허 없어요.”
“그놈의 미성년자, 미성년자! 너 말하는 것만 보면 나이를 선결제로 한 삼십 년 당겨 쓴 사람 같은데.”
“철이 당겨서 들긴 했어요. 왜 식물에 햇빛이 부족하면 위로만 가늘게 웃자란다면서요. 제가 좀 웃자랄 환경이었거든요.”
그러자 악마가 “웃자란 식물에게는 늦거름을 줘야지.”라고 말한다. - 음,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내 머릿속으로는 드라마 캐스팅을 하였으며 두 배우(악마역/정인이 역)가 틱틱거리는 장면을 상상했다. 컷! 오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