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 가치에 대한 탐구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 지음, 장경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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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출간된 이후 엄청 반향이 컸다던 책인데,

사두고는 워낙 두툼한 무게를 핑계로 미뤄두던 차에,

외부와 단절된 감금 상태에 일주일 가량 들어가게 되어 이참에 마음 속 모터사이클이나 당겨볼까 싶어 들고가서 찬찬히 읽었다.

 

실제 경험과 허구적 창작이 두루 섞여 있는데,

1970년대의 분위기, 그러니까 히피 문화라든가,

동양적 '선' 문화에 대한 동경 같은 뉴에이지 문화가 짙게 깔려 있는 책이다.

 

작가는 기본적으로 모터사이클이라는 기계적 서구 문명에서 출발한다.

모터사이클.

자신을 돌아보기에 적합한 도구다.

자전거나 모터사이클은 두바퀴로 달리는 도구이므로

노면 상태가 온몸에 그대로 전달된다.

노면이 울퉁불퉁하면 몸이 심하게 흔들리게 마련이고,

조금만 날씨가 궂어도 온몸에 찬바람이나 눈비가 들이닥치는 것.

 

인간은 이토록 세상에 민감한 존재처럼 보이지만,

또 인간의 실존을 넘어선 '일반성' 탐구에도 열기를 식히지 않았다.

그리스 철학자들의 '가치에 대한 탐구'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터사이클을 몰고 다니는 실존의 부조리를 넘어선 '일반화'에 대한 탐구에 가깝다.

그는 이것을 이런 말로 표현한다.

 

그는 사물의 의미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아니라

사물의 존재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다.(105)

 

그래서 그는 '선' 대신에 '모터사이클'을 들이민 건지도 모른다.

 

베트남 전쟁이 벌어지고, 반전운동은 격화되고,

히피 문화와 더불어 실존주의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정신 병원에도 들락거리던 작가는

<사물들이 현재 여기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일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그의 글에는 재미있는 구절도 많다.

 

그녀에게는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특수한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있다.

여자인 것이다.

 

음... 여자를 좀 아는군. ㅎㅎ

 

작가는 한국의 미군정기에 체류 경험이 있는데,

<긍정을 뜻하는 고개의 끄덕임과 아니라는 부정의 말 때문에 혼란>스러웠다는 말을 한다.

아마, 한국어의 '부정의문문에 대한 답'과 관련된 이야기일 것이다.

 

영어에서는 '밥 안 먹었어?'란 질문에,

먹었으면, 예스, 안 먹었으면, 노라고 대답하지만,

한국어에서는 '밥 안 먹었어?'에다가,

먹었으면, '아뇨, 먹었어요.'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거고, 안먹었으면 '예, 안먹었어요.'하면서 도리질을 할 거다.

아래 주석도 이상하게 풀어 놓았다.(221쪽)

 

그는 정신의 '고산 지대'를 이야기하면서

<고산 지대는 나름의 간명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고,

우리는 고산지대의 희박한 공기에 익숙해져야 하듯 불확실성에 익숙해 져야 한다.

또한 엄청난 고도에 익숙해져야 하득

엄청나게 고고한 질문에 익숙해져야 하고, 또 이들 질문에 대한 예사롭지 않은 답변에도 익숙해져야 한다>(229)

는 이야기도 한다.

 

영혼에 대한 탐구에서 언제나 불확실성과 질문의 연속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말이리라.

선문답을 생각한다면, 그의 이런 이해 내지 오해에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그 답답함에 대하여, 그는

<마치 조각 그림 맞추기 놀이에 필요한 그림 조각들을 몽땅 가지고 있으면서

하나하나 만지작거리가만 할 뿐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대답은 <걱정할 거 없어, 그냥 계속 그 길로 가>인데도 말이다. (233)

 

서구 사회가 합리적인 이성으로 세상을 보려 했지만,

결국 부조리 투성이인 세상에서 헤매는 실존의 위기를 닥쳐,

<우리의 위기는 기존의 사유 형식이 현재의 상황에 대처하기에 부적절하기에 야기된 것>이란 결론을 내린다.

그 부적절한 위기의 경계를 확장하기 위해서는 <가지의 차원이 아닌 뿌리의 차원>에서 확장이 일어나야 하리라는 것도.

 

세상의 지적인 것들을 <반듯하게 각이 져 있음>으로 정의하는데,

그것들은 <부드럽고 유연한 히피적인 것>과 상반된다.

훌륭한 정비사와 형편없는 정비사의 차이는

<쓸모있는 사실과 쓸모없는 사실을 선별해내는 능력>이라고 하는데,

결국 혼란스런 현대사회에서 훌륭한 정비사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낭만적 차원의 확장>을 선별할 줄 알아야 한단 거겠지.

 

그렇지만 그 선별 역시 <각이 져있음>은 아니다.

정말로 당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것은

당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해답을 지식이라는 이름의 화물칸들을 차례로 뒤져 찾으려 하는 마음... 이란다.(507)

그 모습을 드러낸 채 기차의 맨 앞쪽에 있는 바로 그 해답을 이처럼 엉뚱한 데서 찾으려 하는 어리석은 마음...

 

결국 '선' 적인 마음의 평정,

그대가 결국 궁극의 현실이니라(우파니샤드) 하는 것.

한국에서 본 성벽이 일깨워주는 것처럼,

모든 것의 중심부에 고요함이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작업.

 

그는 '기'로 가득찬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는 시간 낭비하거나 마음을 졸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인식 기차 맨 앞에 자리잡고 무엇이 선로를 따라 오는지 살피고,

무언가가 다가오면 이와 마주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표현한다.(537)

그의 표현은 상당히 구체적이면서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다.

 

진정한 해답의 직시에 성공하려면,

옛날의 견해를 제거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한다.

자존심이라는 '내재적 덫'도 제거해야 하며,

'예-아니요'의 가설 인정 또는 부정의 태도를 버리고,

'무'의 답변으로 성장할 것도 제시한다.

<무>는 답변이 가설 저 너머에 있음, 그리고 현실을 자극하는 현상임을 드러낸다.

 

이런 모든 생각들은 <지식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들은 <패턴>이다.

패턴은 나 자신보다 거대한 것이고, 우리 누구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또는 우리 누구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우리를 연결하고 있다.(743)고 정리한다.

 

30년 전에 나와서 유명해진 책이긴 하지만,

마음 속에 모진 돌풍이 휘몰아칠 때,

이런 책을 끌안고 숨을 고르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모터사이클을 정비하면서 작은 부품 하나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듯,

삶의 여정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 하나에도 관심을 가지되,

그 사건의 진면목이 어떤 것인지를 바로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하므로 읽어야 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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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2-01-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고 모터사이클을 꿈꾸었더랬지요.
모터사이클은 고사하고, 자전거도 헤매고 있으니 한참 요원한 일일것 같습니다.
전 이 책을 판본을 달리하여 두 번을 읽었어요.
두번 다 이 사람의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보다는,
이 사람의 정신세계를 둘러싼 인간관계에 마음을 빼았겨서...툴툴거렸었지요, 아마도~.
샘의 이 리뷰를 읽으니...이제 쫌 객관적이 되는데,
그래도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은 안들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라는 체 아저씨 영화가 다시보고 싶다는~

글샘 2012-01-15 00:02   좋아요 0 | URL
ㅎㅎ 한국에선 모터사이클 안 돼요...
자전거보다 모터사이클이 쉬운데요. ^^ 부르릉 잘 가니깐...
그냥 자동차 운전으로 만족하시길...

저도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단 생각은 별로 들지 않습니다.
지겨운 합숙 캠프에 들어가서, 오랜 시간을 지긋이 읽기에 좋은 책이었죠. ^^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체 게바라의 ~다이어리가 생각났습니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1970년대의 유행... 거기 방점을 찍고 읽어야 할 책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