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서성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설레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 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 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 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서성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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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가르치노라면, 기다림의 순간들이 저절로 떠오른다. 어린왕자의 여우가 떠오르고(여우 하니 여우님도 떠오른다.), 지하철 2호선 잠실역 롯데백화점 입구 분수대 앞에서 늘 기다리던 그 아가씨(그 아가씬 늘 나를 기다리게 했다. 지금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옆에 누워있는 그 아줌마.)가 떠오르고, 아주 먼 데서 천천히 오고있는 너를 기다리며 나는 너에게 가기 시작하는 그 마음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늦게 오시는 날이면 아버지는 지금 저 멀리 어디쯤 오실거야, 이제 전봇대를 지나시고, 바위산을 지나시고, 공장 정문을 지나시고, 곧 대문을 열고 들어오실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직 안오시면 다시 원점에서부터 아버지는 출발하셔서 그 먼 거리를 천천히 오시고 내 마음은 다시 마중을 나가던 그 추억이 살아오른다.
우산을 들고 버스 정류소에서 내가 기다리던 버스는 왜그리도 오지 않던지... 저쪽 코너를 돌아오는 버스에 누나가 타고 있을거야. 사람들이 하나둘 내리고 나면 나중에 비를 맞으며 인상을 찌푸리고 집으로 뛰어가려고 하다가 나를 보면 반갑게 웃을거야... 하지만 사람들은 다 내리고 버스는 다시 기다려야 하고... 그날따라 누나는 학교에서 환경미화를 한다고 늦게서야 와버리던 그런 어린 시절...
대학 시절, 어둡고 괴롭던 하루하루가 지긋지긋해서 대학생이란 신분이 가장 버리고 싶던 그런 시절... 민주주의와 자유가 오기를 또 그렇게 기다렸을까. 이제 독재 시대는 끝나고 자유가 민주주의가 손 안에 든 것같은 시대가 왔지만... 우린 또 기다리는 것이다.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