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
마이클 무어 지음, 김남섭 옮김 / 한겨레출판 / 2004년 6월
평점 :
절판


아마 우리 나라에서 현직 대통령을 까는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면, '국가보안법'으로 무기징역을 받았을 것이고, 그것도 2년 전에 일어난 9.11을 가지고 대통령을 깠다면, '간첩죄'가 성립되어 '사형'을 언도받은 뒤, 바로 다음 날 새벽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을 것이다.

그렇게 재판하기까지 시일을 기다릴 수 없었다면, 등산하는 작가를 실족사로 처리하여 의문사 진상 조사위원회에서 수십년간 의혹을 제기하고 있든가...

무엇보다고 그들만의 나라엔 자유가 있다. 부시네 가족처럼 아무나 주먹으로 칠 자유도 있고, 치지 말라고 무어처럼 떠들 수도 있다. 우린 남들 치는 데 조금만 훈수 뒀다가 된통 당했다. 하긴 범죄에서 공범도 형량은 같다고 할 수 있다. 주범이나 종범이나 나쁜 놈이긴 마찬가지니까. 우린 결국 칠 자유도 없고, 치지 말라고 떠들 자유도 없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을 열 두시간이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다. 내가 탄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는 순간 감사했다. 삶과 죽음은 이렇게 즉물적인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이고, 죽는다는 것은, 그것도 불시에 자신의 잘못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비명횡사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매번 비행기를 탈 때마다 엉겨붙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우리 주변에서 워낙 비행기 사고가 잦은 탓이리라.

그는 이 책을 죽음과 삶의 갈림길에서 시작한다. 아버지 부시가 이라크를 친 지 십년. 그 때 우리는 동시통역사가 꿈인 많은 학생들을 배출해 냈다.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작열하던 폭탄 세례. 아직 인터넷이 발달하지 않았던 구십 일년에는 아름다움 폭탄빛만 비쳐줄 뿐, 폐허의 모습은 없었다. 십이년 후. 아들 부시가 아무 명분도 없이 폭력을 휘두른 이라크전은 핏빛 폐허에 떠오른 달을 세계로 보내 추악한 모습의 이면을 발가벗긴다.

결국 부시의 기름을 향한 전쟁은 미국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작가의 이야기이다. 난 그가 상당히 인도주의적인 사람이기를 기대했었다. 그러나 읽고난 지금은 그 역시 미국인이라는 생각뿐이다. 그들만의 나라 미국은, 무어가 진정으로 부시보다 미국을 사랑하는 자라는 것을 이해했기에 그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1차대전 이후의 윌슨과 민족 자결 주의를 멋모르고 좋아라했던 과거처럼, 미국 안에서 약소국을 위한 발언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순진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의 나라는 역시 그들만의 나라였던 것이다. 화씨 9/11을 시간이 없어서 못본 나로서는 간만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을 읽었다는 뿌듯함이 남는다. 화씨 9/11을 못 본 분들에겐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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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4-08-22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그럴까요? 대통령 깟다고 사형시킬까요? ^^ 현재의 미국와 과거의 한국을 비교하는 것은 비교대상의 오류인듯 하네요.그렇다고 미국의 시민자유와 한국의 시민자유가 같은 등급이란 뜻은 아닙니다.팽창하다 터질 것 같은 미국이 아직도 건재하는 것은 미국 시민사회의 두터운 자기철학과 또 수정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자유권을 시대변화에 맞게 해석하는 시스템의 안정성때문인 듯 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그들 나라의 자유는 부럽습니다.(아마 백인 중산층 위주의 자유겠지만)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은 아직 안봤는데요.영화가 가진 나름대로의 의미는 이해합니다.단 지난번에도 언젠가 이야기했는데...아룬다티 로이의 말처럼 부시에 대한 비판은 너무도 쉽고 편안합니다.마이클 무어가 비판적 백인으로써 할 수 있는 한계가 딱 그정도 가장 편안한 길이었겠지요.그 작업은 자칫 부시나 공화당만 아니면 된다는 식이어서 거대한 미국의 패권주의의 역사와 억압상을 왜곡할 수 있는 여지가 있습니다.노암 촘스키나 하워드 진 같은 학자들의 시각도 그 지점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고 그들이 메스를 들이대는 부분도 바로 그 지점에서 넘추는 미국인들의 허상을 들어내기 위함이겠지요. 잘 봤습니다.

글샘 2004-09-03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 이 시대가 삼십 년 전의 레드 컴플렉스로 뒤덮인 매카시즘의 피바다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극복해야할 첫번째 거미줄인 레드 컴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자유는 우리 위의 쇠항아리 위에나 있는 것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 부자유의 연장선에 아직도 우리의 가녀린 자유는 떨고 있는 게 아닐까요. 사유의 산책에 동참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