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독 - 유목적 사유의 탄생
이정우 지음 / 아고라 / 2006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새 책을 구입했을 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나는 책장을 넘기고 새로운 세계로 들어간다. 거기에서 내 영혼과 사유에 영향을 끼칠 글들을 발견한다. 책을 통해서 내영혼은 다른 영혼들을 만난다. 그들과 대화한다. 내가 쓰는 글들에도 어느새 그런 글들의 흔적이 묻어나온다.

문학책들을 읽으면서 인간과 인생을 깊숙이 반추할 수 있었다. 그후 과학책들을 읽으면서 물질, 생명, 문화를 합리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그리고 더 나아가 철학책들을 읽으면서 다양한 지식들을 창조적으로 종합하는 사유 능력을 얻었다. 그 많은 책들이 내 마음에 심어준 여러 생각들, 지식들이 없었다면 삶이란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을까.

때로 내게 언어는 '갈등'으로 다가오지만, 가다가 아니 가는 것은 시작하지 않음만도 못하다. 나는 언어의 세계에 들어왔고 거기에서 행복을 찾아왔다. 그러니 그 세계의 끝까지 가봐야겠다. 책들과 더불어 사유했던 시간들, 다양한 진리·진실들과 대면했던 순간들, 그 사유의 순간들이 한 올 한 올 되살아난다. 책갈피 속에 묻었던 그 소중한 시간들이.(에필로그) 

나의 후각에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책은,
수학의 정석이다.
책을 넘길 때마다 맡아지던 알싸한 계피향 비슷한 냄새는 아직도 뇌의 한 부분에 갈무리되어 있어,
그 냄새를 맡으면 바로 정석에 대한 추억이 떠오를 것 같다. 

이정우의 독서 편력을 자연스럽게 쓰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도서들은 뒷표지의 책날개 안쪽에 적혀 있다. 

 

문학과 과학과 철학을 두루 가로지르는 그의 독서 행위는 그를 철학적 사유에 익숙하게 만들었나보다.
그렇지만, 그의 과학 이야기는 일반인이 읽기엔 지나치게 복잡하다. ^^ 

문학을 통하여 그의 편력을 읽는 일은 재미있었으나,
과학과 철학의 파트로 넘어가면서는 지나치게 자신의 탐독 성향을 드러낸 것 같아서
이정우가 쓴 다른 책을 찾다가,
<고전의 향연>이란 책을 만났다. 

한겨레 지면에 소개되었던 고전의 백과사전식 서술인 모양인데,
필자들이 탁월하다.
결국 살 수밖에 없었다. 

 

그의 과학 이야기 중,
과학의 중심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가면서 분위기가 중후함과 깊이가 없어지고 천박함과 오만방자함으로 바뀌고 과학자들의 상이 현저하게 변했다...(221)는 이야기는 놀랍다.
리처드 파인만을 비롯해 미국 과학자들이 쓴 저서들을 읽으면서 유럽적 교양과는 너무나도 판이한 세계를 만나고서 실망했던 기억... 더구나 책 중간중간 철학에 대한 이해하기 힘든 구절들, 무지와 악감정으로 갇그찬 구절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의 독서 지평의 밑바탕이 된
인문학(사건들, 인물들, 텍스트들, 작품들...)
인간과학(언어, 사회, 의식/무의식, 정치, 경제...)
생명과학(신체, 환경, 면역, 기억...)
그리고 이들을 포괄한 철학(비판적, 종합적 사유)에 대한 표를 그릴 정도로 그의 탐독은 다양한 분야를 가로지른 것이다.
부럽기도 하고, 그런 수준의 외국어 공부를 하기까지의 노력도 본받을 만 하다. 

그의 스승 소은 박홍규 선생의 글을 많이 인용하고 있는데,
다름과 모순에 대한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다름이라는 것은 모순과 다릅니다.
다름의 정도를 점점 극대화시키면 반대, 모순으로 갑니다.
그러나 다름의 이면에는 어딘가 또 닿는 데가 있어요.
그러니 다름의 성격 자체가 공존과 비공존의 양면을 지니고 있죠.
그래서 비공존에서 나타날 때는 시간이라고 하고,
공존에서 나타날 때에는 공간이라고 합니다.
다름을 통해 나올 때는 항상 시간과 공간이 동시에 나온다...(309) 

천민 자본주의가 삶의 기본 양식이 되어버린 한국,
이 한국에서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 탈근대사유를 한다는 것은 결국 <탈주와 회귀> 사이에서 사유하는 것.
맹목적 탈주도 시대착오적인 회귀도 아닌 탈주와 회귀 사이에서 근대성을 재고하는 것.
전통-근대-탈근대가 모두 균형있게 성찰되는 사유를 시도하는 것.
이것을 이야기하면서 다산 정약용에 이른다. 

다산이 시대에 맞서려 공부한 성리학...
결국 천민자본주의와 맞서려면 경제학과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것인 모양이다. 

그의 공부 궤적이 탈주하는 곳을 따라가노라면 끝간 데가 없어보이지만,
또 그를 따라가는 재미도 만날 수 있다.
마침 도서관에서 '다산의 재발견'을 빌려다 둔 참이다. 든든하다.

 ----------- 틀린 글자 하나...

192. 윤형자...는 운형자가 맞다. 구름 모양으로 생긴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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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10-25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으셨군요. 저는 사 놓고 지금 다른 것 먼저 읽느라고 아직 시작도 못했습니다. 이번주 중으로 시작하려고요.

글샘 2011-10-25 18:20   좋아요 0 | URL
문학 부분은 저도 읽은 것들이 대부분이라 재미있었습니다만, 뒷부분으로 가면서는 스킵하는 페이지도 많고 철학 부분은 잘 알아먹지 못하겠는 부분이 많더군요. 잘 모르는데, 또 서로 비교를 하고 하니깐,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