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엔 여름같고,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환절기다.
요즘 계절과 계절 사이 '간절기'란 말도 있을 정도로
일교차가 크니 건강에 유의해야겠다.
(환절기라면 계절이 쉽게 바뀐다는 느낌인데, 간절기라 하니 제법 사이가 긴 느낌이지?) 

오늘은 정현종 시인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제목은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이야.

그래 살아 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 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 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정현종,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제목에서 주제가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지.
'공'이란 소재의 특징은 여러 거지야.
둥글고, 놀이의 도구가 되기도 하고...
시인은 공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하고 있다. 

떨어지는 일은 좌절스러운 일이지.
살다 보면,
성적이 떨어지기도 하고,
시험에 떨어지기도 하고,
기분이 떨어지기도(다운된다고 하지) 하고, 
주가가 떨어지면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을 테고... 

그럴 때, 둥근 공은
위 아래가 없으므로
쓰러진다는 개념도 없이
다시 회복하는 속성에 의미를 부여한 거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가 화자의 의지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시 제목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과 첫 행 '그래 살아 봐야지'만 가지고도 주제가 확 살아나지?

공을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왕자'라고 표현했구나.
왕자는 고귀한 존재잖아.
살면서 지쳐 쓰러지려할 때,
쓰러지는 법이 없는 탄력 100% 왕자가 되자는 멋진 표현을 오늘 만난다. 

둥근 공의 꼴은
언제나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마찰력이 가장 작은 모습이지.
그리고 탄성이 강해서 가볍게 떠오르기도 하고 말이야. 

삶은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할 때,
<최선을 다해 사는 모습>을 무엇에 비유하면 가장 적합할지를 생각해 보니,
떨어져도 쓰러지는 법 없이 튀어오르는 공,
딱, 그것 같더라는 발견이 신선한 시란다.

그래 살아봐야지...하는 말에서
살기 힘겹다는 심상이 숨어 있어.
그렇지만, "떨어져도 튀는", "쓰러지는 법이 없는",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공의 속성에 대한 묘사를 통해
우리는 생에 대한 의지와 자세를 가다듬어 보자는 의도의 시겠다. 

실존주의 작가 카뮈는 ‘시지프스 신화’를 나름대로 해석하고 있어.
시지프스는 신의 미움을 사서 산 정상에 바위를 올려 놓으라는 형벌을 받아.
정상에 올려 놓으면 다시 밑으로 굴러가는 바위 때문에
시지프스는 정상에 바위를 올려놓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지.
그러나 시지프는 자신에게 내려진 형벌대로 바위를 굴려 정상에 올리려는 행위를 반복하게 돼. 

삶이란 이렇게 형벌과도 같이,
무의미한 삶을 날마다 반복하는 것처럼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 법이야. 

그럴 때 어떤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를 생각해본 '의지의 시'를 읽어볼 만 한 일 아닐까?  
의지를 읽을 수 있는 시를 한 편 더 볼까?
서정주의 시를 한 수 읽어 보자.                      

노래가 낫기는 그 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鷹)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開闢)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벼락과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라도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서정주, 꽃밭의 독백-사소 단장-) 

[원주(原註)] 사소(娑蘇) : 사소는 신라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처녀로 잉태하여, 산으로 신선수행을 간 일이 있는데, 이 글은 떠나기 전 그의 집 꽃밭에서의 독백.

이 시는 간혹 시험에 나오면 왕창 틀려 주시는 어려운 시 중의 하나 되시겠다. 

제목이 사소 단장이야. 사소 부인의 짧은 노래.
사소 부인이 산으로 신선수행 가기 전에 집 꽃밭에서 독백을 한 거래.

경주 선도산에 신모가 있는데 그 이름을 사소라 했다.
일찍이 신선술을 터득하여 멀리 바다 건너 서쪽 나라로부터 해동으로 들어왔다.
솔개가 날아가 내리는 곳에 집을 지으라는 계시를 받고서 선도산에 정착하여 신선이 되었다.
사소가 처음 삼한 땅에 이르러 자식을 낳으니, 그가 동국의 첫 왕이 되엇다.
무릇 혁거세와 알영의 유래를 말하는 것이리라.

서정주는 왜 이런 전설 속 이야기를 끄집어 냈을까?
도대체 설화 속의 이야기를 가지고 어떤 주제를 연결해 보려 했던 걸까? 

이 시를 읽을 때, '꽃아'를 어떻게 소리내어 읽을까도 문제야. ^^
[꼬차] [꼬사] [꼬다] 등 다양하게 읽기도 하지만,
'-아'는 무엇을 부르는 '호격 조사'로 실질적 의미가 없으니 이어지는 대로 소리내는 게 맞아.
첫번째 [꼬차] 이렇게 읽는 거지.  

화자가 추구하는 바는 첫 행에 바로 등장한다.
<노래>가 그 중 가장 낫대.
무엇 중에서 가장 나을까? 비교 대상은? 뒤에서 생각해 보자. 

구름까지 갔다가 되돌아서 바닷가까지 네 발굽을 치며 달려간 말 이야기를 보면,
화자는 말타기를 즐기는 신선 같다. 
말타기를 해도,
바닷가에 가서 '멎어버리고 말'았대.
이제 <노래>와 비교된 게 하나 나왔지. <말타기>
그 중에 노래가 가장 좋단다. 

계속 볼까? 

산돼지를 사냥하고, 매사냥도 했어.
그런 들짐승 고기에도 이미 입맛을 잃어버린 것.
또 하나의 취미가 나왔지? <사냥>
노래, 말타기, 사냥, 이런 것 중에 노래가 가장 낫대.
왜냐면... 화자는 사소 부인이지만, 시인인 서정주의 분신이니깐. 

그리곤, 뜬금없이 '꽃'을 찾는다.
아침마다 피어나는 꽃.
좋기는 꽃이 제일 좋대.
꽃이 피는 일은 한 세상이 열리는 <개벽>과도 같은 창조의 힘이 느껴지겠지. 

그런데, 화자는 꽃이 제일 좋은데,
헤엄을 자유로이 칠 줄 모르고 물낯 바닥에 얼굴이나 비출 뿐인 어린애처럼,
꽃의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래. 

꽃이 피는 섭리를,
그 아름다운 향기와 그 찬란한 빛깔의 아름다운 창조를 꿈꾸는 화자에게
꽃은 문을 열고 그를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야. 

그래서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이렇게 불러 보지만,
당근, 꽃은 열릴 리가 없지. 

아마도, 꽃을 여는 길은
자연의 섭리, 위대한 벼락이나 해일(海溢)만이 길일지도 몰라. 
그렇지만, 화자는 애처롭게 불러본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하면서... 

서정주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정말 최고의 경지란다.
그렇지만, 그도 추천사에서 그네에 매달린 존재처럼 한계 의식을 느꼈던 거야.
이 시에서도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는 시인이 되고 싶은 마음과는 달리
뻔히 한계 의식에 직면하는 시인을 발견하게 된다.

주제는 우주의 비밀에 도달하고자 하는 열망, 또는 그렇게 시를 잘 쓰고자 하는 열망.
가장 멋진 '노래'를 짓고 싶으나 좌절하게 되는 한계 의식, 같은 거라고 보면 될 거야. 

시를 잘 쓰고 싶은 화자.
노래가 가장 나은데,
그 노래는 마치 문 열리지 않는 꽃처럼, 화자에게는 막막한 대상이라는 좌절감. 

그래도 화자는 <벼락과 해일>만이 길이라서,
인간이 도달할 수 없는 한계의식을 느끼지만,
제우스 신처럼 벼락을 쳐서 완전한 세계에 도달할 수는 없는 존재임을 명백히 알지만,
그래도 간절히 빌어 보는 마음이 애절하게 느껴지지. 

아빠도 무슨 일이든 이렇게 간절히 바라면 이뤄지는 거라는 생각을 자주 해.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가 '생생하게 꿈꾸고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시크릿>이란 유명한 책에서도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고 말이야.
막연한 소망만으로는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간절히 바라고, 절절히 노력하면, 나머지 부분은 운명이 채워줄 수도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보게 하는 시야. 

되튀는 공처럼 탄력성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힘을 내서 사는 자세.
오늘 한번 생각해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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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9-28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좋다~~
오랜만에 문학수업을 들으니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
전 쓰러지는 적이 없는 탄력의 나라의 공주가 될래요! ㅎ

글샘 2011-09-28 09:29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 공주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