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뻬쩨르부르그로 가는 마지막 열차 ㅣ 창비시선 314
정철훈 지음 / 창비 / 2010년 4월
평점 :
그의 시를 읽노라면 박정대의 시가 떠오른다.
박정대의 끝없는 방랑길에서 만난,
그래서 산만하기 그지없는,
그러나 불빛의 그늘 속에 숨겨진 감은 눈에서 읽히는 눈물.
또는 담배 연기의 낯설지만 익숙한 조우 같은 거...
그렇지만, 박정대의 시보다는 더 생각의 골목을 복잡하게 하진 않는 시여서 좀 익숙하다.
시의 골목길은 언제나 낯설지만,
또 모든 골목길들이 가진 속성상 다소 마음편하게 익숙함을 제공하기도하는 그런 느낌(?)
시집 제목에서부터 뻬쩨르부르그라는 러시아 제2의 도시가 독자를 상상의 라인 밖으로 몰아내는 느낌이다.
모스크바도 낯선 판국에 뻬쩨르부르그라니...
도착할 시간이 훨씬 넘었는데
연착 방송도 없고
당신은 오지 않고 난 먼지 자욱한 대합실에 앉아 책을 뒤적인다(아직 도착하지 않은 당신, 부분)
시인의 시간과 공간 감각에 대한 예민함은 이 시집 전체를 관통한다.
도착하지 않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불안감과
연착하였을 거란 불신감.
그 가운데 삶은 늘 먼지 자욱한 대합실처럼 불확정성 속에 놓인 것처럼 말이다.
살림이란 게 설거지에서 완결된다지만
완결이란 말이 아프다
설명보다는 실명에 가까운 고적한 설거지(고적한 설거지, 부분)
누군가가 설거지에서 살림이 완결된다는 이야길 했을까?
그런데, 삶에서 완결이란 게 있기나 한 건지, 화자는 그 말이 아프다.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화자에게 설거지는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을 잃는 실명과도 같은,
완결을 도무지 감각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하는 모양이다.
언덕이 내게 가르친 건 살아갈수록 위기라는 엄연한 사실이다(만리동 언덕길, 부분)
영혼같은 게 있다면
영혼은 밝으면 별반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에
나는 영혼이란 놈이 좀 어두컴컴하게 숙성되기를 (누에의 꿈, 부분)
구정이다
2월에 1월을 다시 맞는 난쎈스의 계절이다
나 태어나 4.19와 5.16이 있었지만
그건 간밤에 내린 비와 같다
내가 직접 맞지 않은 비로 인해
내가 걸어온 반세기의 길은 내내 젖어 있었다(구정의 상념)
로맹 가리는 돌아오지 않는 수영법에 대해 쓰고 있다
헤엄을 치다가 너무 멀리 나아가면
다시는 육지로 되돌아 가고 싶지 않다는 위험한 기분이 드는 때가 있다고
그러니까 내가 번역하고픈 것은 귀환하지 않는 삶에 관한 가능성이다
이른바 로맹 가리 식 귀결
귀환은 진부하다
진부해진다는 건 죽음이다
실제로 그는 죽음을 준비하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진정 그가 이국땅에서 운명하길 바란다
귀환하지 않는 게 최선이다
귀환할 때와 귀환하지 않을 때를 아는 사람은 아름답다(로맹 가리를 읽는 밤, 부분)
삶은 확실히 슬품과 중력의 자식일 것이니
기차가 슬픔을 길게 가로질러가듯
이 모든 것 너머에 우리는 존재한다(감자를 벗겨 먹는 네 개의 입, 부분)
한 바퀴라는 이 순환이 삶의 배후라는 게 비극 아닌가(저녁 먹고 한 바퀴, 부분)
그의 시에서 베낀 언어들을 따라가노라면
삶의 저켠에서 걸어가는 그림자들이 보일 것도 같다.
그리고, 이켠에서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골몰하는 자신을 생각하게 된다.
시간과 공간의 순환과 귀환,
도착과 연착의 운명, 그 비극에 대하여 그는 쓰고 나는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