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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타셀의 돼지들 ㅣ 민음의 시 152
오은 지음 / 민음사 / 2009년 3월
평점 :
세계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전자의 힘,
Microsoft, Windows...를 비틀어 Macrohard...라고 하는 정도...
그정도가 신선하지만,
신선함은 금세 식상해 진다는 걸 개콘은 알고 있다.
그게 개콘의 힘이다.
신선함을 좀더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신선함이 웃음만 유발해서는 안되는 것 아닐까?
물론,
세상사는 철학적으로 규칙적으로 레귤러하게 굴러가는 것은 아니지만,
또 규칙적이고 정규적이란 뜻의 레귤러가 커피에 붙으면,
인스턴트 커피 아닌 원두 커피를 가리키는 말이 되듯,
이현령비현령,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용어를 찾는 건 가상하지만,
그의 시를 읽고 천재라고 칭찬해야 하는 거라면... 나는 시를 모른다 하겠다.
미니시리즈
느닷없이 접촉사고
느닷없이 삼각관계
느닷없이 시기질투
느닷없이 풍전등화
느닷없이 수호천사
느닷없이 재벌2세
느닷없이 신데렐라
느닷없이 승승장구
느닷없이 이복형제
느닷없이 행방불명
느닷없이 폐암진단
느닷없이 양심고백
느닷없이 눈물바다
느닷없이 무사귀환
느닷없이 갈등해소
느닷없이 해피엔딩
16부작이 끝났습니다
꿈 깰 시간입니다
이런 시를 적어두고, 천재라고 하기엔, 왠지 박제된 천재라던 이상이 떠오른다.
하긴, 누군가가 천재 시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겠지. 스스로 그렇게 여기진 않았을 노릇이고.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우리는 불길하다
횡단보도 앞에 서서
파란불이 켜질 때까지
몸은 앞쪽으로 기울어지고
너와 나는 조금씩 가까워지고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한 채
마찰력과 만유인력이 팽팽하게 맞설 때까지...
제 몸을 찔러 줄 젓가락을 기다리는
설익은 감자처럼
제 몸을 채워 줄 펜을 기다리는
원고지의 빈칸처럼
순간이 도래하기까지
우리는
불길하게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발생하려는 경향)
그의 글은 마치 실험 레포트에서
이 실험을 구상하게 된 포인트를 설명하려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사람들의 음모는 언제나 아르누보식이었지요
이 말은 우리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겁니다
젊은 돼지들은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겁이 많고 눈이 커다란 데다 제법 순종적이었거든요
꾸불거리며 대가리 쳐들 기회만 슬슬 엿보는 거지요
저렇게 끼리끼리 모여 있는 걸 보면 몰라요?
젊은 돼지들은 침대 위를 뒹구는 마피아와 갱을 상상했습니다
소름이 돋았지요, 요즘엔 유기농 비료를 먹고 있는데 말입니다
늙은 돼지들은 구석에 누워 심하게 낄낄거립니다
약고 퍅하고 야한 농담을 즐기죠
젊은 돼지들의 토실토실 오른 살을 부러워했고
항상 네 다리를 벌리고 잠잤습니다
인간의 아이가 태어날 때면 엉덩이로 꼬리를 뭉갠 채 잠들었지요
너무 늙은 나머지 꿀꿀거리지 못하는 돼지들도 있어요
그들은 다만 낄낄거릴 따름이지요
늙는다는 것은 이렇게나 추하고 무서운 일이랍니다 (호텔 타셀(Hotel Taddel)의 돼지들 )
아르누보(불규칙적이고 곡선을 강조한) 건축 양식의 대표적 예인 벨기에의 타셀 호텔 지붕 아래서...
돼지들은 서서히 늙어가고, 망가진다.
늙어가고 망가져가는,
낡은 것들에게 <추하고 무서운 일>이란 딱지를 붙인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신선하고 명랑한 일>을 만드는 것인데...
과연 그 미션이 '임파서블'일지,
그건, 안철수가 서울 시장이 되는 일이 <추하고 무서운 일>일지, <신선하고 명랑한 일>일지 흥미로운 것과 같다.
사람들이 안철수를 갑자기 환호하는 일은, 그가 결코 <추하고 무서운 어른>은 아닐 것이란 기대때문이 아닐는지...
그렇다면, 그에게 바라는 <신선하고 명랑한 미래>는 어쩌먼 더 무서운 블랙홀의 좌절로 안내할 일말의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지만, 정치적 혐오감으로 팽배한 사람들에게 이런 신선함은 또다른 힘이 될 수도 있겠다.
이 시집도 그만큼의 기대와, 그만큼의 부담감으로 만들어진 것 같아 하는 말이다.
한국어처럼 '한자어'의 영향이 가장 크고, '동사와 형용사'는 활용을 하는 관계 등의 언어학적 이유로
음운적 운율(라임)을 만들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고,
언어 유희가 흔하지 않은 마당에서
이렇게 언어 유희를 주제로 시집을 내는 일도 나름 의미를 가지기도 하리라.
물론, 유사한 발음, 또는 잘못쓴 맞춤법이나 동음이의 관계끼리 맺어지는 오묘한 결합에서 일어나는
시들에 대하여 폄하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아니지, 오히려
동음이의어란 같은 발음으로도 전혀 헷갈리지 않을 법한 거리감을 가진 범주의 단어들이기에,
그 거리감을 뛰어넘는 언어유희를 발견하는 일은 정말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일이기도 하다.
낯선 시인 오은의 시집을 읽고 그 시들이 더 낯선 와중에 만난 '천재'란 말이 마뜩잖아 몇 마디 적는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시집의 표지가 '매크로하드'여서 좀 불만이고... 아무래도 난 시집이라고 하면 ...소프트를 좋아하기 때문에...
145부터 182까지 이어지는 해설같은 것도 나는 싫어한다.
해설이 붙어야 하는 시집이란... 너무 구태의연하지 않은가?
적어도 오은의 시집이라면,
마지막에, 개콘에 등장했던 구절이 있다고...
개그맨들이 이 시집을 읽고 있다고... 이렇게 써붙였다면, 좀 낫지 않았을까?
처음에 붙인 그의 자서처럼...
천둥과 번개
개와 원숭이
까마귀와 배
앙꼬아 찐빵
붕어와 붕어빵
웃음과 울음
눈물과 눈물
홈스와 뤼팽
커피와 담배
金과 숲
사드와 자허마조흐
누벨바그와 트뤼포
알리바바와 알리바이
나와 너는 거의 모든 관계,
아무리 의심해도
섵불리 숨길 수 없었다.
오와 은...
제 이름으로도 놀 줄 아는 사람. 꽤 재미있겠다.
앞으로 그의 관찰력과 생산성이
말놀이 애드리브를 넘어서서
특정한 <경향성>을 띠게 될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물론, 그 경향성은 지속적으로 부정될 것이므로... 개그 콘서트처럼...
사각뿔처럼 생긴 피라미드를 쇠금 자 金 처럼 생겼다고, 금자탑(金字塔)이라 이름붙인 사람도 오은의 부류이겠지.
신선한 비유가 이처럼 널리쓰이느냐, 잠시 말장난에 불과하냐가 시인의 과제가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