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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좌안의 피아노 공방
사드 카하트 지음, 정영목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08년 5월
평점 :
파리에 살게된 한 미국인이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데포르주 피아노 : 공구, 부품'이란 가게 이름을 만나게 되고, 거기서 인연들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은 '피아노'에 대한 이야기와,
'피아노'에 관한 '일'을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와,
그 피아노 공방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전문적인 음악 이야기도 아니지만, 상당한 수준의 음악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고,
전문적인 악기 이야기도 아니지만, 깊은 수준까지 피아노에 대한 안목이 담겨 있고,
사람들의 관계가 주된 이야기도 아니지만, 뤼크, 요스, 마틸드, 파지올리 들을 통해서 삶의 멋과 맛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미덕이다.
악기를 수리하는 이야기를 통해서 악기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루고,
악기의 부품 이야기를 건너서 악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람들의 애정을 다루고,
사람들의 실수와 장인 정신을 넘어서 피아노란 악기가 가진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모습을 다루는 이야기 책.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아 꼬이는 손가락 훈련을 반복하는 모습을 그려 보기도 했다.
피아노 음을 들으면서 내면의 복잡다단한 실타래들이 배배꼬이는 것을 스르르 풀던 시간들이 생각났기 때문이고,
날마다 피아노 앞에서 땀흘리던 시간들은 오롯이 내게 준 선물같았던 시간이었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올 가을쯤엔 아파트 상가에 딸린 피아노 학원에라도 한번 들러볼 마음을 다시 불러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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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란 게 없듯이,
음표만으로 이루어진 음악도 없지.
우리는 사물이 모호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네.(2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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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전문가들에게 주어지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서 인생에 대한 교훈의 근본을 듣는 일도 즐겁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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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내 몸도 이렇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남겨주어야 하니까요."(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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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크는 수리할 수 없는 피아노를 태우면서 이렇게 말한다.
가볍게 말하는 속에서 결코 가볍지 않은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주인공이나 마찬가지인 뤼크의 인간성은 말할 나위없지만,
술주정뱅이 조율사 요스 역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매력덩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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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매력적으로 웃더니 층계를 내려갔다.
나는 그가 발을 질질 끌며 마당을 걸어가는 모습을 창문에서 바라보았다.
그는 라일락 가지 하나를 잡아당기더니 끝에 수북하게 달린 꽃더미에 코를 박았다.(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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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율이란 물리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도 요스의 영혼은 세상에서 자유분방하게 놓여 난다.
그러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하지만, 굳이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기계로도 정확히 제시하기 어려운 조율의 미학을, 특히 고음에서는 인간의 귀가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찾아내서 좀더 높은 음으로 맞춰야 한다는 것까지 고려하는 몸의 구조를 가진 사람이어서 오히려 더욱 자유를 갈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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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모든 것이 의미하는 바는 조율이 항상 근사치라는 것이다.
조율은 두 가지 개념,
기계적으로 정확한 것과 음악적으로 매력적인 것.
경험적인 것과 직관적인 것을 조화시키려는 시도다.
조율사가 이루려는 것은 무엇보다도 균형이다.
이론적인 음의 거슬리는 소리와 귀가 듣는 데 익숙한 기분 좋은 소리 사이의 평균이다.(193)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지만,
늘 인간적인 영역이라는 것이 있다.
...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다른 변수들이 방정식에 들어와 좋은 조율사가 훌륭한 조율이란 평형상태를 이루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런 다양한 방식에 대한 뤼크의 설명,
"피아노를 조율하는 것은 요리와 비슷하지요. 저마다 자신의 요리법이 있거든요."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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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에선 늘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훌륭한 사람과의 대화는 유쾌한 법이라던 대문호의 이야기처럼,
훌륭한 독서는 결코 불쾌한 경험을 제공하지 않으면서도 힘을 불어 넣는 매력이 넘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강력한 저음, 맑은 고음, 울림을 유지하는 엄청난 힘을 자랑한다는 '스타인 웨이'를 올라타고,
골드베르크 협주곡을 연주하는 행복한 장면을 몇 번이고 꿈꿀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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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전통은 중세부터 독일에 확고하게 자리잡았으며,
이 일을 하는 길드와 가족은 후손이 적당한 종류의 나무를 쓸 수 있다록 정기적으로 나무를 다시 심었다는 것이 뤼크의 설명이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520년에 조성한 숲에서 250년 뒤에 나무를 베어 쓰는 것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이렇게 숲 하나를 베어낸 뒤에는 10~40년 동안 치유되도록 놓아두었다.
이렇게 해서 18세기 말에 지금 뤼크가 '이 작은 경이'라고 부르는 악기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뤼크는 어수선한 곳에서 툭 튀어나온, 피아노의 둥그스름한 가장자리를 가볍게 어루만지며
그 피아노가 '작은 경이'라고 말했다.
그 몸짓에는 깊은 존중심이 있었다.
애정이 느껴질 정도였다.
이 목공예의 걸작이 탄생하도록 길을 닦아준 일련의 노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목소리였다...
수백 년에 걸쳐 귀중한 목재를 생산해낼 나무를 심고 기르고 베는 인간의 작업 전체가
이제 지상에서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세상이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더 가난해졌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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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야에서 정통한다는 것은 이렇게 모든 일들을 연관지어 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지는 일이다.
다시 셰뵈크의 마스터클래스로 돌아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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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뵈크는 옆에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에게 완전히 정신을 집중했다.
그는 각 학생에게 일반적인 동시에 매우 개인적인 질문을 했다.
그는 이 음악가들의 삶에거 음악과 관련된 어떤 특정한 것을 끄집어내면서 그들 사이에 점차 신뢰의 유대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비관습적인 방식으로 서두를 시작하는 더 섬세한 이유가 곧 드러났다.
그는 평생을 콘서트 아티스트로 보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 연주자가 얼마나 예민해지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이 때 필요한 건 차분히 현실세계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의 방법은 천진할 정도로 소박했다.
눈앞의 음악 외의 것에 관해 천천히 질문을 하면서 학생의 기분을 조용히 가라앉히는 것이었다.
그는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천천히 음악으로 이야기를 돌렸으며,
대개의 경우 연주자의 해석에 어떤 형태로든 칭찬을 해 주었다.
그는 농담으로 표현하기도 했다."파리 공대는 가장 똑똑한 학생들만 입학한다.
그런데 프랑스 사람들은,
공대 학생들은 모든 것을 알지만, 다른 것은 전혀 모른다고 한다."
그러니까 사람이란 너무 많이 알 수도 있다는 거네.(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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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절을 읽으면서는 전문적인 교수법이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도 생각하게 된다.
물론 내 직업상 그런 관점의 독서를 버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세느 강이 흐르는 파리의 좌안, 한 피아노 공방을 둘러싼 낮은 목소리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덥다고 소리지르는 날씨조차도 잊고 즐거움에 빠져, 말 그대로 독서 삼매를 즐기는 일이었다.
지나치게 자극적인 음식 말고,
그렇다고 또 웰빙을 빙자해서 난리 부르스를 떠는 요란한 음식도 말고,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뚝딱 찬밥에 몇 가지 나물이라도 넣어서 쓱쓱 비벼먹으며 경쾌한 웃음살이 번지는 그맛을 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