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 인디언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는 법
류시화 지음 / 김영사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학교 도서실에서 빌려 오면서 '왜 이렇게 두꺼운 책으로 편집했을까, 2-3권으로 충분히 분책할 수 있는 책인데...'하는 생각이,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해가 되었다.

이 책은 어메리칸 인디언들의 죽음과 삶에 대한 웅변이자, 그들 삶의 경전이기 때문이다. 경전을 분책한 경우는 없지 않은가.

물론 그들은 특별한 종교도 문자도 갖지 않았지만,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영혼의 울림은 어떤 종교 경전도 갖지 못한 다원성과 상대성이 내포되어 있다. 900쪽을 넘는 이야기들은 서로 다른 주제를 논하고 있지만, 미타쿠예 오야신, 서로 연결되어 있다. 그대로 '하나'의 영혼인 것이다.

불교의 진리를 찾으러 온 벽안의 스님에게, 지하철에서 '사탄아 물러가라'를 외치는 천민 자본주의 국가의 폐쇄적 이기주의 종교관을 가진 우리 종교인들이 떠올랐다. - 우리는 얼마나 미개한가.

딸년과도 같은 여고생의 몸을 돈을 주고 샀던 가장이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던 사마리아란 영화가 생각났다. - 우리는 얼마나 야만인인가.

우리는 약소국이었다. 그래서 남을 짓밟아본 일이 별로 없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자위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핏줄에 평화란 없었다. 베트남전에서 용감한 따이한으로, 동남아 해외연수생 노동자들에게는 공포의 압제자로, 이라크 파병까지 우리의 핏줄에 서린 거지 근성을 보았다. - 우리는 얼마나 폭력적인가.

새로 열리는 시대는 폭력, 전쟁, 강철이 지배하는 남성성의 시대를 넘어서, 평화, 사랑, 흙이 포용하는 여성성의 시대가  될 것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의 중심엔 늘 '사람'이 있었다. 6000만 마리의 들소가 있었음에도 늘 허락을 받고 잡던 자연 속의 사람들.

새로 펼쳐지는 시대는 웰빙의 열풍이 불 것임을 그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 그들의 정기적인 단식과 '땀천막'을 읽으면 현대인의 무식한 피트니스와 웰빙 열풍이 얼마나 하잘것 없는 시스템인지를 본다.

그 들소들을 멸종에 가까이 말살시키고, 전-미국인, 전-캐나다인들을 말살한 얼굴 흰 사람들의 문명이 오히려 야만으로 평가될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다.

다양한 주제로 행한 연설들의 모음에 불과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날줄이 되고 씨줄이 되어 장엄한 미래를 여는 심포니가 되어 우리의 영혼을 울린다.

이 책은 빌려 읽어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그들의 빛나는 단편들을 아래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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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안다. 모든 종교적인 열망, 모든 진실한 예배는 똑같이 하나의 근원과 하나의 목적을 갖고 있음을. 우리는 또 안다. 학식있는 자의 신, 어린아이의 신, 문명화된 사람의 신, 원시적인 사람의 신이 결국은 모두가 같은 것이라고. 신을 결코 생김새가 어떻게 다른가를 놓고 우리를 판단하지는 않는다. 신은 이 대지 위에서 올바르게 살고 겸허하게 행동하는 모든 이들을 자신의 품안에 받아들인다.

젊었을 때 그대의 혀를 잘 지키라. 그러면 늙어서 그대의 부족에게 도움이 될 한 가지 생각이 그대 안에서 익어갈 것이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부족 회의를 열 때 말하는 지팡이를 사용한다. … 누구든 말하는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그의 손 안에 신성한 말의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지팡이를 손에 잡고 있는 동안은 오직 그 만이 말을 할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했다. … 그에게 진실되고 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기 이해 말하는 지팡이에 독수리 깃털을 매달기도 했다. 지팡이 끝에 매단 토끼털은 그가 하는 말이 그의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하며 또한 부드럽고 따듯한 말이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었다. 또한 지팡이에 매단 파란색 돌은 위대한 정령이 그가 하는 말뿐 아니라 그의 가슴이 하려고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무지개 빛을 지니고 있으며 수시로 색깔이 달라지는 조개는 세상이 날마다, 계절마다, 해마다 변화하며 사람들과 상황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한 것이었다. … 가슴속에 있는 것을 말하는 순간 그가 자신의 손에 우주의 모든 힘을 쥐고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대의 가슴 속에 죽음이 들어올 수 없는 삶을 살라. 다른 사람의 종교에 대해 논쟁하지 말고, 그들의 시각을 존중하라. 그리고 그들 역시 그대의 시각을 존중하게 하라. 그대의 삶을 사랑하고 그 삶을 완전한 것으로 만들고, 그대의 삶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만들라. 오래 살되, 다른 이들을 위해 헌신하는 삶에 목적을 두라. 이 세상을 떠나는 위대한 이별의 순간을 위해 고귀한 죽음의 노래를 준비하라. 낯선 사람일지라도 외딴 곳에서 누군가와 마주치면 한두 마디 인사를 나누라. 모든 사람을 존중하고, 누구에게도 비굴하게 굴지 말라.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침 햇빛에 감사하라. 당신이 가진 생명과 힘에 대해. 당신이 먹는 음식, 삶의 즐거움들에 대해 감사하라. 만일 당신이 감사해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신 잘못이다. 죽음이 다가왔을 때, 마음 속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즉한 사람처럼 되지 말라. 슬피 울면서 다른 방식으로 살 수 있도록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 그 대신 그대의 죽음의 노래를 부르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인디언 전사처럼 죽음을 맞이 하라.

그들 사회에는 거짓, 허위, 배신, 탐욕, 시기, 욕설을 의미하는 단어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풀잎들이 햇빛 속에 고요히 있듯이 대지는 내게 침묵을 가르쳐 주네. 오래된 돌들이 기억으로 고통받듯이, 대지는 내게 고통을 가르쳐 주네. 꽃들이 처음부터 겸허하게 피어나듯이 대지는 내게 겸허함을 가르쳐 주네. 어미가 어린 것들을 안전하게 돌보듯이 대지는 내게 보살핌을 가르쳐 주네. 나무가 홀로 서 있듯이 대지는 내게 용기를 가르쳐 주네.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들처럼 대지는 내게 한계를 가르쳐 주고, 하늘을 쏘는 독수리처럼 대지는 내게 자유를 가르쳐 주네. 가을이면 떨어져 생명을 마감하는 잎사귀들처럼 대지는 내게 떠남을 가르쳐 주고, 봄이면 다시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대지는 내게 부활을 가르쳐 주네. 눈이 녹으면서 자신을 버리듯이 대지는 내게 자신을 버리는 법을 가르쳐 주네. 마름 평원이 비에 젖듯이, 대지는 내게 친절을 기억하는 법을 가르쳐 주네.

<나바호족 인디언들의 결혼식사>
이제 두 사람은 하나의 불을 피울 것이다. 이 불은 꺼지지 않을 것이다. 두 사람은 사랑과 이해, 지혜를 상징하는 하나의 불꽃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불이 두 사람에게 따뜻함과  음식과 행복을 가져다 주리라. 이 새로운 불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가정을. 이 불은 언제가지나 타올라야 한다. 두사람은 언제까지나 함께 있으리라. 이제 두 사람은 새로운 삶을 위한 불을 밝혔다. 이 불은 꺼지지 않으리라. 늙음이 그대들을 갈라 놓을때까지.

<아파치족 인디언 식사>
이제 두 사람은 비를 맞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지붕이 되어 줄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춥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따뜻함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더 이상 외롭지 않으리라. 서로가 서로에게 동행이 될 테니까. 이제 두 사람은 두 개의 몸이지만 두 사람 앞에는 오직 하나의 인생만이 있으리라. 이제 그대들의 집으로 들어가라. 함께 있는 날들 속으로 들어가라. 이 대지 위에서 그대들은 오랫동안 행복하리라.

모든 만물 속에서 움직이는 위대한 정령을 통해 인간의 의식을 바꾸는 데는 한 사람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 사람의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사람은 또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 그 생각이 만물을 통해 드러난 때까지. 전체 새들의 무리가 방향을 바꾸는 것은 똑같은 생각, 똑같은 힘 때문이다. 새떼 전체가 한 가지 마음을 갖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네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네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눠야만 한다.

위대한 정령 와칸 탕카. 대지 전체가 살아있는 경전.

네가 삶의 길을 여행할 때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말라. 누구도 슬프게 하지 말라. 할수 있는 한 언제나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라. … 조용한 삶을 살고, 모두에게 친절하라.

존중한다는 것은 하나의 존재 방식이다.

대지와 대지 위에 사는 모든 생명들을 존경심을 갖고 대하라. 위대한 정령으로부터 멀어지지 말라. 동료 인간들을 존중하라.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함께 일하라.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라. 몸과 마음을 잘 돌보라. 보다 좋은 일에 자신의 노력을 쏟으라. 언제나 진실되고 정직하라.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라.

교사들 중 많은 이들이 소위 교육받은 바보들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삶을 사랑하라 가르치고, 우리가 자연의 일부분임을 가르친다. 하지만 교실에 앉아 그것들을 배울 때, 아이들은 자연으로부터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 대신 온갖 것들을 암기할 뿐이다. 학교가 아이들의 창조성, 꿈꾸는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미국 사회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 속에 큰 약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나라는 폭력을 기초로 세워져 있다. 폭력을 숭배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폭력적으로 살아갈 것이다. 사랑으로 폭력과 맞서는 것 역시 무의미한 파괴로 끝이 난다. 미국 역사를 자세히 들여다 보라. 미국은 전쟁에서 패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전쟁에 개입할 때마다 미국 정부는 언제나 과잉 살상의 원리에 따라 행동하며, 상대방을 무자비하게 가루로 만둘어 버린다. 항의를 해도 수그러드는 법이 없다. 베트남 전쟁을 보라. 미국은 2차 세계 대전때 사용한 것보다 더 많은 폭탄을 떨어뜨렸다. 과잉 살상의 대표적인 예다.

환경은 이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환경은 저쪽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신 자신이 곧 환경이다.

지혜라는 것은 그것을 찾는 것을 중단하고 신이 그에게 바라는 진정한 삶은 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찾아온다는 것.

그가 그 자리에 있든 없든, 절대로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말하지 말라. 다른 사람이 가진 종교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라.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들으라. 설령 그가 하는 말이 무가치하게 느껴질지라도, 마음을 담아서 들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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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콩 2004-09-19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인용하신 부분.. 퍼갑니다. 실은 사보려고해요. 두꺼운 책 겁나지만... 글샘님의 리뷰에 용기를 얻어 시도해보려구요. ^^

비로그인 2005-10-16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퍼 갈께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