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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와 사이 -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커뮤니케이션 강의 ㅣ 지식여행자 12
요네하라 마리 지음, 홍성민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다시 마리 여사를 읽었다.
러시아 통신이란 이쁜 책도 있지만, 더 가벼운 책부터 읽기로 했다.
어느 쪽이나 마리 여사를 만남의 기쁨은 가득하겠지만,
이왕이면 두꺼운 쪽을 남겨두고 싶었던 거다.
일본어 책 제목은 '아이노 호-소쿠', '사랑의 법칙'이다.
이 책은 네 종류의 글을 모은 책인데,
첫 챕터가 <사랑의 법칙>이란 제목으로 마리 여사의 '사랑'에 대한 관심이 자유분방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다음엔 동시 통역사의 애환이 <이해와 오해 사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고,
그 다음이 <통역과 번역의 차이>
그리고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 사이>가 수록되어 있다.
마리 여사의 사랑에 대한 관심은,
그가 얼마나 솔직담백한 인간인가를 잘 보여준다.
기왕의 책에서도 '인간 수컷' 운운하면서 그의 속내를 보여준 일도 있지만,
이 책에서는 출생률까지 들먹여가면서 여성의 우월성을 마음껏 뽐낸다.
마리 여사의 글은 역시 통역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빛나는 것 같다.
통역은 분위기와 내용을 살려 의미를 전달하는 과정이기에 다양한 스킬과 노하우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충분히 간덩이가 부어야 하겠단 생각도 든다.
여느 이야기들은 다른 책들에서 다루었던 것들이라 가볍게 읽었으나,
마지막 챕터 <국제화와 글로벌리제이션>은 현대 사회의 문제 중 가장 묵직한 것이라,
그리고 한국도 세계화 덫에 걸려 허우적대는 미래를 살아갈 날이 머지 않았기에,
많은 생각을 하며 읽게 한다.
한국은 무방비상태에서 미국의 점령지로 시작하여 준식민지 비슷한 현대사의 굴곡을 안고 있어,
영어만이 거대한 언어의 산맥이 되어 뇌를 짓눌러 왔던 역사를 안고 있다.
그러나 일본은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난학'의 시대, 곧 네덜란드에 대한 절대적 숭배의 시기와,
프랑스, 미국의 문화를 숭상하는 시기가 200년 가까이 되어오고 있다.
좁은 나라 일본의 갑갑한 언어를 한탄하던 이들은 그 언어들을 공용어로 사용하자는 주장들을 숱하게 해왔다.
한국어도 하루 아침에 사라지고,
한국인들이 당장 영어로 생활하고, 문학과 창조적 표현들을 구사할 수 있다면,
영어 공용화도 꼭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상황을 상정하고, 공용어화하자는 것은 가진자들의 욕심이거나,
한국의 특수한 상황(빈익빈 부익부의 심화, 분배의 처절한 실패)을 무시하고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우기는,
강대국의 FTA 몽니와 비슷한 주장으로 치부될 수도 있다.
마리 여사의 말대로, 진정한 국제화란
강대국은 내 걸 강요하고,
약소국은 남의 걸 베끼는 게 아니라,
경제력, 군사력의 강약을 떠나,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와 언어를 보고 직접 교류하는 것에서 풍요로워지기 시작할 것임은
진정한 평화의 국제화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마리 여사가 영어를 <고립어>라고 적은 것을 아무 여과없이 번역한 것이다.
중국어처럼 위치에 따라 의미와 기능이 정해지는 것을 고립어라고 한다.
예를 들면 月明은 달이 밝다는 말로, 달은 주어고 '명'자는 서술어가 된다.
그러나 明月은 밝은 달이란 말로, 수식어가 붙은 하나의 구가 되어 버린다.
영어는 이런 언어가 아니다.
단순하게 어순이 같다고 해서 고립어라고 하진 않는다.
불어, 독어, 스페인어와 같이 영어는 굴절어에 속한다.
물론 독어나 불어에 비하여 굴절하는 성분이 적기는 하지만, 분명 고립어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