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 창비시선 32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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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값,하니 떠오르는 이는 역시 김훈이다.
밥벌이를 <지겨움>이란 한 단어로 일축하여,
생존의 의무에 허덕이는 민중의 마음을 위무하여 주는 작가였으니 말이다. 

정호승은 천안함 발언 이후로 좀 얄밉게 보았다.
그치만 그의 시집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진 않고 또 좋은 시가 있으려나 싶어 찾아 읽는다. 

이 시집에선 살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화자가
자신을 돌아보는 시들이 많다.

한쪽 날개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겨울 하늘을 나는 청둥오리가 더 아름답다
한쪽 어깨가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이 더 아름답다
나는 젊은 마음의 육체를 지녔을 때부터 왼쪽 길로만 걸어가
지금 외로운 마음의 육체마저도 왼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직선의 대로이거나 어두운 골목이거나
내가 바라보던 모든 지평선도 수평선도 왼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아름다워진다는 것이다
기울어진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멀리 사람을 바라볼 때
꼭 왼쪽에서 바라본다
왼쪽에서 바라본 사람의 옆모습이 가장 아름답다(왼쪽에 대한 편견)

한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은,
외로워진다는 것이고, 
혼자가 된다는 것이다.
화자는 왼쪽으로 기울어진 외로운 혼자인 사람을 바라본다.
그것이 자신의 모습이든 우리 사회의 모습이든,
거기 대하여 연민일지, 애정일지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살고 있는 것일까?
궁금턴 차에 그가 답을 해 온다.

요즘 어떵게 사느냐고 묻지마라.
폐사지처럼 산다.
요즘 뭐하고 지내느냐고 묻지마라.
폐사지에 쓰러진 탑을 일으켜 세우며 산다.
 
나 아직 진리의 탑 하나 세운적 없지만
죽은 친구의 마음 사리 하나 넣어둘
부도탑 한 번 세운적 없지만
폐사지에 처 박혀 나뒹구는 옥개석 한 조각
부둥켜 안고 산다.
 
가끔은 웃으며 라면도 끓여먹고
바람과 물도 뜯어 먹고
부서진 석등에 불이나 켜며 산다.
 
부디 어떻게 사느냐고 다정하게 묻지마라.
너를 용서 못하면 내가 죽는다고
거짓말도 자꾸 진지하게 하면
진지한 거짓말이 되는일이 너무 부끄러워
입도 버리고  혀도 파묻고
 
폐사지처럼 산다.(폐사지처럼 산다)

한때 찬란한 별을 노래하던 시인 정호승이,
폐사지처럼 산다니 좀 쓸쓸한 마음이다.
80년대 젊은이들의 마음에 그가 심어놓은 하나씩의 별들은,
아스라이 멀리 있기는 하지만,
스스로 폐사지처럼 산다는 말을 시집에서 쓰고 나니,
왠지 서러운 마음이다.

그가 쓸쓸하고 서러워지는데,
그가 한 잔 하자고 붙든다.

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나는 나의 가장 가난했던
미소 속으로 사라진다
 
어느 목마른 저녁 거리에서
내가 늘 마시던 물은
내 눈물까지 데리고 땅속으로 사라지고
날마다 내 가슴속으로 눈부시게 날아오르던 새는
부러진 내 날개를 데리고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쓸쓸한 저녁 바닷가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수평선과 함께
인간이 되고 싶었던 나의 모든 꿈조차
꿈속으로 사라져
 
캄캄한 서울
종로 피맛골의 한 모퉁이
취객들의 밤의 발자국에 깊이 어린
별빛들만 사라지지 않고
술에 취한다(사라지는 것들을 위하여)

삶의 눈물.
그마저 사라지고,
가슴 속 눈부시게 기르던 새.
그마저 날아 가고,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는 수평선.
그것도 꿈이 되어 사라지고... 

다들 사라져
외로운 취객들만
남아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중인
피맛골의 한 모퉁이
그 모퉁이도 남아있으면서도 사라지는 중일 것인데,
별빛들만 사라지지 않고
술에 취하지만,
술기운 역시 취하도록 남아있으면서 휘발되어 사라지는 중일 것인데,
술에서 깨어나면
그는 별빛들을 찾을 수 있을까?

밥값을 하며 살 수 있을까?
이 생지옥에서...

어머니 
아무래도 제가 지옥에 한번 다녀오겠습니다
아무리 멀어도
아침에 출근하듯이 갔다가
저녁에 퇴근하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식사 거르지 마시고 꼭꼭 씹어서 잡수시고
외출하실 때는 가스불 꼭 잠그시고
너무 염려하지는 마세요
지옥도 사람 사는 곳이겠지요
지금이라도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
비로소 제가 인간이 될 수 있을 겁니다 (밥값)

날마다 밥값을 하러 지옥에 가면서,
지옥도 사람사는 곳임을 애써 긍정하는 화자. 

사람사는 곳이 지옥같을 때,
이래서 쓰겄는가?를 외치던 화자가,
밥값 아래 초라하게,
밥값을 하러 지옥간 인간임을 주억거리며 긍정할 때,
독자는 슬프다. 

해설을 맡은 김유중 선배의 이름을 오랜만에 들어 반갑다. 
선배 역시 해설의 1장에서 아쉬움을 은근히 드러내고 있어 보인다.
뭐, 시대가 그러하니, 밥값이라도 제대로 해야 할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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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15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의 페이퍼를 읽고
부랴부랴 정호승 님의 천안함 발언을 찾아보러 갔습니다. (제가 한 무식합니다.. 아하하)

그런데 왜 저는 정호승 님의 발언에서 처연함을 찾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마 글샘님의 페이퍼를 읽고, 그 발언을 읽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밥값을 하러 지옥까지 가야 하나요? 아....... 그렇게 나이든다면 참 슬플거 같아요. ㅠ

글샘 2011-06-16 14:40   좋아요 0 | URL
천안함처럼 슬픈 사건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박바가지로 벼락을 막으려는 정권.
벼락을 덤터기로 얻어맞아야 싸지요.
밥값에 지옥을 붙인 건 좀 오버인 거 같아요. ^^ 김훈 정도 시니컬, 지겨움 정도죠.
밥값이 지옥이라면, 정말 출근이 저승가는 길목같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