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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나 또 올게 - 아흔여섯 어머니와 일흔둘의 딸이 함께 쓴 콧등 찡한 우리들 어머니 이야기
홍영녀.황안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그 가을의 뜨락'이란 이름으로 KBS 인간 극장에 나온 이야기라는데...
(텔레비전을 거의 보지 않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고...)
이 책은 그림이 독특하다. 김정수란 화가가 아마포 위에 유채로 그린 그림들의 느낌이 포근하면서도,
진달래꽃의 촉감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어떨 때는 밥처럼 소복하게 담겨 있고,
어떨 때는 꽃비가 내리듯 사선으로 휘날리기도 한다.
아, 수업 시간에 진달래꽃을 가르쳐야 하는 나로서는,
죽은 임 앞에 바치는 진달래꽃의 슬픈 헌사가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임의 상여 앞에 바치는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 - 진달래 꽃.'
어머니 홍영녀씨는 늙어 한글을 깨우친 분인데,
감수성이 상당하다.
많은 부분은 유행가 가사와 겹치기도 하지만, 삶의 진실은 유행가 가사만도 못한 경우가 숱한 걸 보면,
삶과 노랫말이 하나가 되다 보니 자연스레 우러난 것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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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지 아홉 달 만에 죽은 우리 무남이.
쓸쓸한 바람 부는 계절이 오면 깨끼옷 입은 불쌍한 무남이가 추울 것만 같아서 가슴이 저리다 못해 애간장이 다 녹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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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것이 글의 힘이다.
마음을 적실하게 표현할 줄 알게 하는 글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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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남자 집에 발 한 번 잘못 들여놓으면 일생을 망친다.
이제와 생각하면 걸어온 길이 너무나 험한 가시밭길이었다.
외로운 들창에 흔들리는 나무 그림자.
돌아눕는 어깨가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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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런 글은 읽기가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온 길이란...
이 책에서도 주로 어머니와 딸들의 이야기로 가득한 이유가 바로 그것 아닐까 싶다.
어머니와 아들 또는 며느리의 관계가 저절로 멀어진 이유가 무엇인지... 그걸 모르는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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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속에 낀 근심처럼 하늘에 시커멓게 구름이 끼더니
내 가슴의 응어리가 터져 소낙비가 내린다.
모란 잎에 떨어져 구르는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내 눈물같다.
팔십 평생을 살아왔건만 돌아보면 흔적도 자취도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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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 잎에 떨어져 구르는 빗방울과 쏟아지는 눈물을 시적으로 쓰실 수 있는 솜씨라면,
진즉에 시인이 되실 수도 있었을 양반이다. 시대를 잘못 나신 게 한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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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편지.
무슨 사연 그리 많아 밤새도록 내리는가.
겨울밤에 내리는 눈은 그대 안부.
혼자 누운 들창 밑에 건강하냐 잘 자느냐 묻는 소리.
그대 안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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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몽혼(이옥봉)이란 한시가 떠오른다.
꿈에서도 자취가 있다면 그대 문간이 모래밭이 되었을 거라는...
한은 한으로 통하는 지경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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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창호지 문
창호지 문은 말소리가 새 나온다.
창호지 문은 말소리를 막지 못한다.
창호지 문은 따뜻하다.
고향의 문들은 창호지 문이었다. 불빛이 비친 창호지 문은 아주 정답다.
문풍지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창호지 문이다.
유리문은 말소리를 막고 공기를 막아주지만 따뜻하지 않다.
정답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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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수필 못잖은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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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은 오지 않고 몸은 너무 아프다.
아무도 없으니 너무 쓸쓸해
천장에 매달린 파리도 반갑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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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노령화가 급속히 전개된다는 나라.
아이를 가장 적게 낳기 시작한지 오래된 나라.
세계에서 가장 경제성장률이 가팔랐으나, 가장 복지에 무관심했던 나라.
노인 사회의 악몽이 가장 두렵게 현실화될 나라.
노인 연금 등 사회복지에 애쓴 역사를 한방에 무화시키는 무서운 나라.
한국에서 노인이 되어가는 일은 두려운 일이다.
<딸 없는 노인네는 쓸쓸하다>고 할 정도로 급격히 장자 중심의 사고방식이 무너져버리는 현실에서,
<아파트 이름을 어려운 외국어로 쓰는 이유>는 노인네가 못 찾아오게 하기 위함이란 농담이 씁쓸한 판국에,
천장에 매달린 파리도 반갑다는 시는 가장 현실적이다.
할머니는 도시로 가자고 하는 자식들에게
"난 여기가 좋다. 뭐든 내 맘대로니 너무 편하고 자유스럽다.
자유를 누리려면 외로움도 견뎌야 한다."고 하셨다.
외롭다고 혼자서 일기를 쓰면서도,
외로움을 견디고 혼자 사신 할머니.
외로움은 견딜 수 있지만,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고 닳아가면서 '사랑'이 되지 못하는 현대 사회의 노인들의 삶을 알기에,
그것은 차마 견딜 수 없기에, 황혼의 나이에도 외로움을 택한 지혜로운 할머니.
이 책을 어머니를 잃은 딸들이 읽는다면 많은 공감을 보낼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어머니들이 우선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하다.
어떻게 나이들어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종교적 개입없이 혼자서 밀고나간 생각들이어서 글의 힘이 단단하다.
그리고 나처럼 부모님과 거리를 두고 사는 아들들이 읽는다면, 글쎄,
마음 속에 복잡한 생각들만 가득 들어찰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늙어가는 일에 대하여,
지혜롭게 늙어서, 늙은이로 4,50년을 살아야 하는 세대로서,
영광스럽지 못한 질병과 외로움을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시간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