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윤선도의 '만흥'을 공부했지?
만흥이 '게으른 사람의 느긋한 흥취가 일어남을 적은 시'였다면,
오늘 읽을 '견회요'는 조금 심각한 시란다. 

遣懷謠는 '견회'의 노래지.
보낼 견, 품을 회,
그래서 <시름을 쫓는 노래>, <회포를 푸는 노래>, <마음을 달래는 노래> 정도로 보면 되겠어.
암튼,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인 모양이지? 

[가] 슬프나 즐거오나 옳다 하나 외다 하나
     내 몸의 해올 일만 닦고 닦을 뿐이언정
     그 밧긔 여남은 일이야 분별(分別)할 줄 이시랴.

(해석) 슬프나, 즐거우나 (남들이) 옳다고 하거나, 그르다고 하거나
         내가 할 일만 닦고 닦을 뿐이지
         그밖에 다른 일이야 근심할 필요가 있겠는가.  

1연은 자기가 할 일을 다 하면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남들이 옳다고 하든 외다(그르다)고 하든,
소신껏 신념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는 내용이지.
충실한 삶을 산 사람은 그 밖의 결과는 자신이 '분별'할 것이 아니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리라고 믿는 거겠지.
옛날 사람들은 '옳다' '바르다'의 반대로 '외다'는 말을 썼어.
그래서 '왼손잡이'는 '틀린, 나쁜' 뜻으로 보고 고치려고 노력한 거지. 

자, 처음 연에서 자기 할 일만 충실히 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나왔는데,
뭐, 삶이 그래서 평안하게 되었다면 굳이 시를 쓸 필요는 없었겠지?
수필을 쓰면 되는 거지. 바른 생활 교과서처럼 말이야. 

그런데, 시의 언어는 뭔가 '푸념', '넋두리'할 것이 있을 때 쓰는 <독백>이기 때문에,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떤 스트레스 상황에 닥칠지, 그걸 예상하고 읽어야 한단다.
계속 읽어 보자.

[나] 내 일 망년된 줄 내라 하여 모랄 손가
     이 마음 어리기도 님 위한 탓이로세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헤여 보소서

(해석) 내 일이 잘못된 줄을 나라고 해서 모르겠는가
         이 마음이 어리석은 것도 모두 임금을 위하기 때문일세
         아무개가 아무리 헐뜯어도 임금께서 헤아려 주십시오.

여기 드디어 <임>이 나오는구나. <임금님>.
왕조 시대의 한계지. 모든 권력은 임금에게 있고, 임금에게서만 나올 수 있는 힘. 

윤선도는 봉림대군(뒤에 효종이 된)의 사부로 인정받는 학자였어.
효종이 임금이 되고, 효종의 모친의 죽음과 관련하여 3년간 상복을 입자고 주장했는데,
당시 권력층이었던 노론의 우두머리 송시열과 치열하게 싸웠지. 
송시열은 1년만 입자고 주장했거든.
이런 걸 예송논쟁이라 부른대. 

윤선도는 남인 출신이었는데, 노론의 송시열이 효종을 가짜 임금 취급한다며 격렬한 상소를 올리지.
너무 과격한 상소를 올렸다가 오히려 역공격을 당하고 만대.
송시열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가,
송시열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반대파가 윤선도를 공격하였고,
사형 주장까지 나왔으나 효종의 사부였던 덕에 유배를 가게 된단다. 

그래서 함경도 추성(秋城)으로 유배되고,
그곳에서 임금에 대한 충성과 부모에 대한 효심이 드러나는 견회요를 짓게 되지.  
3연에선 추성 진호루가 그래서 등장하는 거란다. 

종장에서 <아뫼 아무리 일러도 임이 헤여 보소서>처럼 자신의 과실을 억울하다고,
하소연하는 사설시조가 하나 있어.  

개야미 불개야미 잔등 부러진 불개야미
앞발에 정종나고 뒷발에 죵귀 난 불개야미, 광릉 샘재 너머 들어 가람의 허리를 가르 물어 추혀 들고 북해를 건너닷 말이 이셔이다.
님이 님아, 온 놈이 온 말을 하여도 님이 짐작하쇼서 

초장은 AABA 구조로 된 시구지.
개미 개미 잔등부러진 불개미.
중장이 한정없이 길어져 사설시조라고 한단다.
앞발, 뒷발에 종기난 개미가 잘 걷지도 못하겠지?
그런데 광릉의 샘재란 고개를 넘어 들어가 호랑이의 허리를 가로물고 추켜들어 북해를 건너갔단 말이 있습니다. 

헐~ 과장법도 좀 심하지?
걷지도 못하는 개미더러 산을 넘고 호랑일 물어 바다를 건넜대. ㅋ
임이여, 백 사람이 백가지 말을 하더라도, 임이 짐작하여 판단하소서.
이런 하소연이란다.

[다] 추성 진호루 밧긔 울어 예는 저 시내야
    무음 호리라 주야에 흐르는다
    님 향한 내 뜻을 조차 그칠 뉘를 모르나다

(해석) 추성의 진호루 밖에 울며 흐르는 저 시냇물아!
         무엇을 하려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흐르느냐?
         (너도) 임을 향한 내 마음처럼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귀양간 진호루 밖에 시냇물이 흐르는데 마치 우는 것 같대.
시냇물한테 뭐하려고 밤낮으로 흐르느냐고 물어.
그러면서 자신과 시냇물의 공통점을 찾아서 <감정이입>이 일어나지. 

임향한 내 마음이 그치지 않는 것처럼, 너도 그칠 줄을 모르는구나.
이렇게 임금을 향한 변함 없는 마음이 잘 드러난 시지.
마찬가지 감정 이입이 드러난 시로 왕방연의 시조가 있단다. 

단종을 천만리 영월 땅에  유배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강물을 보니
내 마음처럼 울며 가는구나... 이런 시조야.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시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왕방연>

 같은 시대적 배경을 가진 시조를 한 편 보자. 

   방안에 혓는 촛불 눌과 이별하였간데
   겉으로 눈물지고 속타는 줄 모르는고
  
뎌 촉불 날과 같아여 속타는 줄 모르도다. <이 개>

방안의 촛불이 누구와 이별했길래,
겉으로 눈물흐르고 속타는 줄 모르는가.
저 촛불은 나와 같아서 속타는 줄도 모른다. 

숙부(수양대군)가 조카(단종)를 죽인 사건, 계유정난.
승자가 패자를 죽이는 것이야 역사 속에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혈육간의 싸움은 속타는 것이기도 하지.

[라] 뫼흔 길고 길고 물은 멀고 멀고
      어버이 그린 뜻은 많고 많고 하고 하고
      어디서 외기러기는 울고 울고 가느니

(해석) 산은 길기도 하고 물은 멀기도 하고
      부모님을 그리는 내 마음은 많기도 한데,
      어디서 짝 잃은 기러기는 슬피 울며 가는가.

이 연은 '길고길고', '멀고멀고', '많고많고', '하고하고', '울고울고'처럼 반복법이 특징적인 부분이지.
특히 <많고>와 <하고>는 의미가 같지만 다른 단어로 표현하여 간절함을 강조하고 있단다.
그만큼 많음을 완~전 울트라 강조하는 거지.
긴 산, 먼 강물이 장애물이 되어 부모님 곁으로 가지 못하는 처지에 놓인 화자.
어버이에 대한 그리움이 많고도 많다.
하늘의 외기러기는 울며 날아 가는데, 제 마음을 이입하여 슬피 울고 간다고 했으니 감정 이입이지? 

[마] 어버이 그릴 줄을 처엄부터 알아마는
    님군 향한 뜻도 하날이 삼겨시니
    진실로 님군을 잊으면 긔 불효인가 여기노라.

(해석) 어버이가 그리울 줄을 처음부터 알았지마는,
      임금을 향한 마음은 하늘이 내신 것이니
      정말로 임금을 잊는다면 그것이 곧 불효가 아닌가 생각하노라.

어버이를 그리워하는 건 본능이지만,
임금 향한 충성심도 하늘이 만든 것, 하늘의 이치란 것이지.
왕조 시대의 사고 방식은 이런 것이란다.
진실로 임금을 잊는다면, 그것 역시 불효란다. 

삼강오륜이란 말 들어봤지?
삼강의 '강'은 '벼리 강 綱'이란 글자를 쓴단다.
'벼리'는 <그물의 맨 위쪽 코를 꿰어 놓은 줄>로 이걸 당기면 그물 윗부분이 오므려 지는 거야.
그래서 가장 중요한 <핵심 포인트>를 '벼리'라고 하지. 

3강은 인간이 지켜야할 유교의 질서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야.
군위신강, 부위자강, 부위부강.
쉽게 말해, 임금은 신하의 벼리가 되고, 아비는 자식의 벼리가 되고, 남편은 아내의 벼리가 된다. 

봉건 질서로 따지면,
임금은 백성을 돌봐줄테니 신하 이하 백성들은 임금에 절대 복종하고, 
아비는 가정을 돌볼테니 자식들은 아비에 절대 복종하고,
남편은 가족을 돌볼테니 아내는 지아비에 절대 복종하라! 이런 거지. 

여기 임금과 아버지는 있는데, 선생님은 없잖아.
그래서 '군사부일체'란 말이 생겼단다.
'임금 군 君'과 '아비 부 父'는 '스승 사 師'와 한몸이란 거지.

어제 만흥에서도 나왔지만,
어떤 시에서든 <충신 연군지사>가 빠져선 안되지. 

그런 것이 조선 초기의 성리학적 질서였어. 
그렇지만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왕권이 흔들린단다.
선조가 궁궐을 버리고 달아나자, 도성의 난민들이 궁궐에 불을 질러버리지. 

윤선도 역시 인조가 청나라에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제주도로 가려 했어.
그러던 중 해남 땅끝마을 옆의 <보길도>의 경치에 반해 버리지.
그는 보길도를 부용동(芙蓉洞)이라 이름하고 여생을 마칠 곳으로 삼았어.
거기 정자도 세우고 산과 바다를 즐기며 시와 벗이 되어 살았지. 

윤선도의 견회요는 총 5수의 연시조야.
소신껏 행동하는 강직한 삶의 자세가 드러나있어.
그래서 귀양을 가지만,
귀양가서도 충성심과 효성은 변치 않는다는 내용이야.
자신의 결백은 임이 알아줄 것이라 믿으면서... 

윤선도의 '해남 윤씨'는 대단한 가문이었단다.
그의 증손자 윤두서는 유명한 화가지.
그의 자화상은 섬세한 필치로 이름이 높다. 

그리고 그의 5대 외손자 정약용이야 말할 것도 없이 유명한 사람이고. 

 

윤선도가 유배당한 원인이 된 상소문의 일부만 보면 이렇대. 

군신(君臣)의 대의(大義)를 아뢰나이다.
신의 아버지는 저의 상소를 금하려 한즉 국가를 저버릴까 두렵고,
받아들이려 한즉 그 아들이 죽음으로 나가는 것을 불쌍히 여겨서 멍하니 앉았고 묵묵하게 말이 없었습니다.
신이 상소를 올린다는 말을 듣고는 신의 손을 잡고서 눈물을 흘리며 울고 슬피 목이 메었으니,
어찌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성스럽고 자비로운 임금님께서는 비록 신을 무거운 법에 놓아 주시되
이 때문에 늙은 아버지에게 화(禍)가 미치게 하지 마시면
영원히 천하 후세에 충신 효자들의 귀감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 아버지의 염려에도 화자는 상소문을 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어.
[가]에서 나는 옳은 일은 하고 그른 일은 안 한다는 성품이 꼿꼿하게 드러나지.

자신은 무거운 법을 감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나]에서 임금을 믿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어 

결국 화자는 귀양을 가지만 충성심은 변하지 않지.
[다]에서 임향한 내 뜻은 그칠 적이 없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어. 

자신을 걱정하던 아버지를 유배지에서도 그리워하는 아들의 간절한 마음이 [라]에 담겼다 보면 되겠지.

[마]에는 충과 효를 모두 중시하는 화자의 생각이 충과 효를 동일시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고 말이야.

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난 적이 있단다. 

이 시조의 독자와 화자의 대화로 어색한 것을 고르시오.

독자 : 삶의 좌우명이 있다면 소개해 주십시오.

화자 :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꼭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①

독자 :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무모한 일이 될 수도 있을 텐데요?

화자 : 저도 때로는 그것이 현실적으로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여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해야 할 도리는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②

독자 : 자신의 신념이 흔들린 적은 없었습니까?

화자 : 예, 항상 흐르는 물처럼 제 마음은 늘 같았지요. … ③

독자 : 그로 인해 어려움에도 많이 처했을 텐데,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이었습니까?

화자 : 부모님 곁을 떠나 지낼 때였습니다. 부모님께서 저 때문에 많이 우셨습니다. … ④

독자 : 효심이 지극하신데, 부모님 생각을 해서 자신의 신념을 조금 굽힐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화자 : 아닙니다. 대의를 버리는 것이 오히려 불효라고 생각합니다. … ⑤

답은  ④번이었어.
부모님께서 많이 우셨습니다...는 좀 아니지.

살다보면 스트레스 상황은 올 수밖에 없어.
그 스트레스는 스스로 자초한 것일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닥친 것일 수도 있지.
스트레스는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장기간 받는 스트레스는 사람을 망가뜨리기도 한단다.
적절한 스트레스를 즐기는 여유가 필요하겠지.  

조선 시대의 시조는 '창'으로 부르던 것이었기도 하니까,
읽는 맛이 특별하단다.
스트레스 받을 때, 시조를 나즉히 읊조려 보는 맛도 쏠쏠할 거야.
한번 낮은 소리로 읽어 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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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6-01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래하고 입으로 부르는 것이라 정말 낮은 소리로 읽으니 더욱 좋군요.

중간에 불개미 사설 시조 말이죠,
맘에 쏙 들어오네요. 독특하면서도 절절한데다 해학까지 느껴져서요.
그러게요, 불개미 허리가 얼마나 가느다란데.

글샘님, 즐거운 날 되셔요.

글샘 2011-06-01 10:38   좋아요 1 | URL
시조는 정말 노래예요.
소리내서 혼자 읊어 보면 정말 좋은데...
옛날엔 시조를 과하게 많이 가르쳤는데,
요즘엔 과하게 덜 가르치죠.
시험엔 많이 나는데 말입니다. ^^

마녀고양이님도 즐거운 하루를 만들어 가시길...

이쁜별 2011-06-29 00: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해석이 물흐르듯이 시원시원하게 되네요! 덕분에 잘공부했습니다. 감사합니다!

글샘 2011-06-30 15:12   좋아요 1 | URL
공부 잘 하셨다니 제가 고맙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