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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평점 :
도무지 이 소설 속에선 정상적인 인간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모든 인물들이 불시에 출몰하고,
럭비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것처럼,
어디로든 튀려고 장전된 총알처럼 가관이다.
이 소설의 문체는 가볍고 발랄하여 읽는 맛이 좋다.
언어가 적절한 기회에 끊어지고 이어져,
눈으로 글을 읽으면서 눈꼬리는 저절로 빙긋이 웃게 된다.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오함마란 덩치인 첫째,
저질 영화 찍는 주제에 말만 많은 둘째,
싸가지 없는 민경이를 데리고 사는 셋째,
모두 나이든 모친 아래 얹혀사는 별볼일 없는 작자들이다.
그들은 어느 하루 조용한 날 없이
들어오고 나가고
싸우고 떠벌리고,
갈등은 없는채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것이다.
죽도록 얻어맞는 주인공을 캐서린이 도와주고,
그 캐서린은 원래 사모하던 캐서린이 아니었다고도 하지만,
뭐, 어쩌랴. 삶이란 게 원래 청사진대로 답이 나오는 건축물은 아닌 것을...
주인공의 아내를 묘사한 대목은 기가 막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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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한마디로 기내식 같은 여자였다. 별로 당기지는 않는데 안 먹으면 왠지 손해일 것 같고,
그래서 억지로 먹기는 먹되 막상 먹으려고 보니 뭔가 복잡하고 옹색하기만 하고,
까다로운 종이접기를 하듯 조심스럽고 겨우 먹고 나면 뭘 먹었는지 기억도 잘 안 나고,
식후에 구정물 같은 커피를 마시다보면 뭔가 속은 것 같은 기분도 들고,
갖출 건 다 갖춘 것 같은데 왠지 허전하고,
결국 포장지만 한 보따리 나오는 그런 여자.
그녀의 얼굴엔 언제나 '안전벨트를 매 주시겠습니까, 손님?'이라고 쓰여 있었다.(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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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속성을 이렇게 비유할 줄 아는 작가는 천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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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이 없는 사람은 위험하다.
자존심이 없으면 자신의 이익에 따라 무슨 짓이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위험한 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다.
그것은 그가 마음속에 비수 같은 분노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되는 법이다.(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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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달 형인 오함마를 그리면서 분노를 품은 인간의 자존심에 대하여 적는 대목도 작가가 삶에 대하여 관조한 깊이를 느낄 수 있게 해 준다.
캐서린과 살면서 영화를 보며 일상을 보내는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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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볼 때마다 나는 내 삶전체가 뿌리없이 이리 저리 휘둘리며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실소를 지었다.(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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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쓰고 있다.
이 한 마디를 하기 위하여 작가는 서술자를 등장시킨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삶은 부평초처럼 부유하는 신기루를 쫓아 살아온 원숭이짓에 불과한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