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아시아
아시아네트워크 엮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 난 여러 번 좌절했다. 예전에 난 우리 나라만 이렇게 병신같이 살고 있는줄 알았다. 과거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하고, 일제 치하에서 다시 미국의 내정간섭으로, 독재에서 독재로 점철해 온 우리 역사를 늘 한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마치 모르고 자랐다가 다 자라서 만난 쌍둥이 형제와 같은 아시아의 나라들을 쳐다볼 때, 동병상련이라든지, 위안이라든지, 네트워크를 통한 위로보담은 어쩜 아시아는 이렇게 바보같은 나라들만 모아 놓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깊은 자괴감에 빠진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는가. 아시아는 너무 넓다. 우리 나라에 희망은 있을까?

난 아직도 1979년 10월 27일 아침 날씨를 기억한다. 부산의 가을 날 치고는 정말 음산할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고, 그 아침에 한 독재자의 죽음을 들었다. 대통령의 '서거'를 맞아 마음아픈 국민들은 구일간이나 조기를 달았고, 레퀴엠이란 레퀴엠은 그 때 평생 들을 것을 다 들었다. 지금도 장송곡을 들으면 그 시절 생각이 난다. 열 네살 내 나이에는 내 평생 한 분이었던 독재자의 죽음을 애도하러 구청까지 단체로 가서 분향했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그 짙던 향냄새여.

우리 나라는 아직도 그 독재자의 독재 개발의 망령을 그리워하여 그 딸을 야당 당수로 올려 놓았고, 다음 대통령 감이라며 부추기는 허황된 망상가들이 가득하고, 그 공주 출신의 천막 당사 옆에 주차된 즐비한 고급 승용차들을 바라보면서, 미래의 안정을 희구하는 희한한 나라다.

아시아의 비극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 개발 도상에서 빚어지는 비극적 아이러니가 어느 나라에나 패러디되어 있었고, 그 비극적 아이러니는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에게처럼 결국 가난과 비극의 파국을 맞게 한 것이 아시아의 공통된 역사였다.

간디, 코리와 같은 신문에서 많이 보던 인물들도, 박통의 허상에 다름아니었다.

박통의 새마을 운동을 본받아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분발하고 있다는 말을 못 들어본 이 없으련만, 그 박통의 공주가 다시 대권을 이어받는 끔찍한 상상을 발칙하게도 하고 있는 어리석은 집단이 다시 있을까? 아마 한나라당이 아무리 정치의식 없다손 치더라도, 이회창 카드로 두 번이나 패배하고도 다시 공주 카드를 내밀지는 않을 듯 싶긴 한데, (창, 공주, 그들의 공통점은 정치가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래도 현실적 대안이 없다면 악수를 두지 않으란 법 없다.

내가 자라면서 듣고 외우고 불렀던 의식화의 메커니즘.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성실한 마음과 튼튼한 몸으로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며... 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새 역사를 창조하다. 1968년 12월 5일 대통령 박정희, 유신 헌법,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던 때부터, 전우의 시체를 넘고넘어 앞으로 앞으로...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의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불러 자유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이런 것들이 계속 떠오르며 아시아의 미래는 매춘과 관광을 빙자한 문화재 유출 외엔 뾰족한 문화도 문명도 자존심도 없는 그들의 비극적 현실을 돌아볼 때, 희망을 말해도 좋을는지 의문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홍세화, 박노자 등의 비판적 시각은 왠지 읽고 나면 오기가 생겼지만, 아시아의 지난한 역사를 읽고 나니 어깨가 축 늘어지는 기분이다.

아시아여, 아시아여, 동방의 옛 영화여. 인도야, 태국과 미얀마, 캄보디아와 베트남, 말레이 반도 국가들. 필리핀이여, 중국과 한국이여. 스리랑카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프간의 굶주리고 헐벗은 동족들이여. 정말 꽃으로도 때릴 수 없는 우리의 못남은 누구의 잘못인가.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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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오 2004-06-15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리뷰에 코멘트를 달아주시고 바로 읽으셨군요.. 맞아요.. 제가 느꼈던 동질감과 아픔이 바로 이런거였나 봅니다. 그 나라를 읽으며, 우리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 모두 다른 나라들에 대한 느낌이라기 보다, 자신의 아픔을 다시 돌아보아 아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러나 희망은 있겠지요. 1979년에 나라가 망할 줄 알고 울던 많은 사람들이, 지금은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까 말이죠.. 뻔뻔스럽게 돌아온 과거의 사람들도 제 몫을 찾겠죠. 제 리뷰보다 훨씬 좋아서 많이 배웠습니다..

드팀전 2004-06-15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구중심의 역사가 보편적 역사인것 처럼 교육을 받고 자란 대한민국은 정서적으론 아시아라기보다 미국의 한 구석같습니다.아시아에서도 동북쪽에 한참 쏠려서 과거부터 한중일 삼국의 상호관계만을 마치 아시아 전체의 가치처럼 여기고 있습니다.내재화된 오리엔털리즘이 아시아에서도 스스로 격리시키고 소통불능의 국가인양 만들어버렸습니다.
결국 아시아의 나라들은 주변국으로 또는 준주변국으로 세계체제의 거대한 흐름에 묻혀가고 있습니다.한국은 미국의 충실한 똥개로써 이제 준주변국의 신분은 확보한 듯 합니다.준주변국의 특성상 중심국으로 부터의 착취와 주변국으로의 역착취라는 이중적 구조를 행하고 있습니다.아시아 시장의 개척이란 이름,자유의 수호라는 베트남 파병...그럴싸한 명분으로 미국이 행했던 방식의 자본주의식 개방과 개척에만 앞장선 듯 합니다.
미국인 영어강사에 대한 태도와 외국인 공장노동자에 대한 상이한 태도가 보여주듯 우리안의 선긋기와 편협한 타자화가 없어지지 않는 한 한국은 미국의 똘마니 국가로 아시아에서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것입니다.통치자가 박근혜든 노무현이든 상관없이 말이죠.....

글샘 2004-06-16 1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멘트, 감사합니다.
한국은 확실한 제3세계 국가입니다. 물론 준주변국이지만, 독점 자본주의의 흐름이 너무도 얕고 천박해서 전혀 밑바탕이 없는 국가이지요.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 수출되어도 한국 문화라고 하지 않고 '한류'라고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일본 문화'가 밀려온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저는 한류라는 말을 들으면 오싹합니다. 한 때의 흐름 이상으로 가치 매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듯 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