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 조선의 문장가 이옥과 김려 이야기, 제1회 창비청소년도서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고 1
설흔 지음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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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영원한 화두는 '내게 문학이란 무엇인가?'일 것이다. 

인간의 삶의 궤적을 귀납적으로 얽은 것이 <역사>라면,
그 역사의 원인은 연역적으로 풀어보려한 것이 <철학>일 것이다.
문학은 <역사>와 <철학>의 추상성을 극복하기 위한 형상화의 과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어떤 귀납적, 연역적 방법론으로도 일깨우기 힘든 것을,
직지인심하기 위해서는 <문학>적 수사가 필요한 것이라는... 

그렇지만, 어느 시대에나 바람직하다고 권장되는 문학이 있었고,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배척된 문학도 있었다. 

플라톤이 철인정치를 내세우면서 '시인추방'을 이야기한 것은, 문학이 불필요하단 것이 아니라,
그리스 서사시 전통의 문학적 수사가 지나치게 전투적이며 교육적이지 못한 부분이 많았다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고 본다. 

조선같은 성리학 기반의 왕조 국가는,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성리학적 건조물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수직질서의 성리학은 봉건사회의 지지 배경이 되어 주었다. 

부자유친.
아버지는 가정의 짱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지킨다. 가족은 아버지를 따르라. 

군신유의.
왕은 국가의 짱이다. 왕은 국가를 지킨다. 백성은 왕을 따르라. 

근데, 3강5상의 기율이 무너졌다.
왕은 전쟁나자 제일 먼저 씨앗을 보존하러 도망쳤고,
되지도 않을 고집을 내세우다 백성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다.
임진,병자 양란으로 민심은 강상의 기율에 등을 돌렸을 것이다.  

설상가상,
청나라에서 물밀듯 밀려온 온갖 문물과 서적들은 조선의 성리학적 질서를 송두리째 회의하도록 만들었다.
일본에서 수입된 말로, 소위 '실학자들', 베이징학파(북학파)들의 이야기는 모두 '성리학'에 도전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조선이 권장하던 문학인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찬탄은 물러간다.
그리고 왕조국가 조선이 경계하는 문체가 탄생한다.

촛불집회보다 무서운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배척은 역사 속에 '문체반정'이란 찻잔속의 태풍으로 남아있다.
그 와중에 이옥, 강이천처럼 수난의 대상이 된 사람들도 있었으나,
역사는 귀납적 결과들이 남는 기록인 법.
성리학적 질서에 대한 향수는 지폐에 퇴계와 율곡을 남기고 뒷걸음질쳐 사라졌다. 

박지원의 글을 읽다보면, 이게 뭐 어쨌다고? 이런 구절이 많다.
'통곡장'같은 글에서도,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넓은 곳을 보니 통곡할 만한 자리다.'
'왜?'
'보통 슬퍼서 운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은 7정 모두에 의해서도 울 수 있는 거다.'
이런 대화는 그게 뭐, 어쨌다고? 이럴 수 있다. 

그렇지만,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 갖은 애를 쓰던 16세기 퇴계, 율곡이 200년 뒤의 박지원을 본다면 천하의 불쌍놈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성리학적 질서는 <본질>에 대한 규명이었다.
인간의 본성이 무엇인가.
인의예지라는 4단이 본성이라면, 희로애락애오욕의 7정은 어떠한 관계인가.
이런 본질에 대한 규명의 연역적 학문의 과정은 18세기의 변혁기라는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적합하지 않은 것이었다. 

조선 전기가 붕괴되면서 <실존>의 문제를 들고 나온다.
실존의 인간, 그들이 풍겨내는 온갖 다양한 모습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다.
실존의 인간은 '질서'를 저절로 따르는 존재가 아니라, 제멋대로 살아가는 일상을 중시하는 존재다.
물질은 에너지가 흐트러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법이고, 역으로는 되지 않는 거다. 

이옥과 김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시대 정신을 읽는다.
이옥의 소품문이라 불리는 글들에 대한 변명을 이야기로 꾸몄다.
드디어, 열하일기를 읽고 싶은 욕구가 조그만 몽우리를 맺는다.
박지원이 쓴 열하일기가 추구한 시대 정신을 읽고 싶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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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1-05-03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셨구나...저흰 아직 신간이 들어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즘 인문학강좌에 이옥편이 조만간 있을 예정이라 기대됩니다.

글샘 2011-05-03 23:38   좋아요 0 | URL
제가 사서 보는 책 중의 얼마 안 되는 책이죠. ^^
조선 후기 여러 학자들의 글은 참 짠한 맘으로 읽어야 하는 책들이 많습니다.
이옥의 글은 특히 더한 것 같습니다.
쉽고 재미있으니 넉넉한 맘으로 읽어보시는 게 좋을 거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