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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정육점 ㅣ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평점 :
가브리엘 마르께스의 '백 년의 고독'을 읽다보면 혼자서 키득거리게 된다.
아주 두꺼운 소설이지만 참 재치있는 작가의 필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소설 속의 인물들은 현실성이 떨어지고 상당히 설화같은 이야기들이 엮여 있는데도,
주절주절 떠드는 수다 속에서 삶의 진실이 진하게 묻어나는 마르께스의 소설 '백 년의 고독'을 나는 사랑한다.
손홍규라는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면서 마르께스가 자연스레 떠오른 것은,
현실성이 떨어지는 인물들의 이야기 속에서
페이소스가 가득 묻은 어휘들을 통해서 삶의 진실의 한켠을 오픈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일 거다.
소설은 '내 몸에는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시작해서,
'내 몸에는 여전히 의붓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로 끝난다.
시의 수미상관처럼, 혈연과 모순된 의붓아버지의 관계. 그 역설을 설명하는 것이 소설가의 책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에 남아 도시빈민으로 살고있는 터키인 하산,
그에게 입양된 주인공 아이가 주변 사람들과 겪는 이야기는 한국 속의 이국적 풍광이 비쳐진다.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와 충남식당 안나 아줌마.
동네에서 좀 모자라는 아이들과 술주정꾼, 퇴역군인 대머리...
누구 하나 제대로 정신이 박힌 인물이 없지만, 그들의 삶은 치열하지 않은 순간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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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나는 사원에 고인 뭉근한 햇살을 보면서 훗날 내가 이 순간을 생생하게 추억하게 되리라는 걸 알았다.
언제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간은 과거에서 불려나와 재현될 것이다.
어떤 의미는 탈각되어 사라질 것이고 어떤 의미는 덧붙여질 것이다.
그런 재구성을 통해 새롭게 하나의 과거로 다시 자리잡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현재는 미래를 향한 충동이다.(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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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소설은 서술자의 과거의 사념의 궤적을 재구성한 것이며,
과거의 재구성의 충동이 소설을 이룬 것처럼, 우리가 살고있는 현재는 미래의 한 지점에서 회상될 추억임을 강조하며 소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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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누군가가 우리에게 통과의례 운운한다면 우리는 고개를 저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두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며
지금 우리가 겪는 일을 두번 다시 겪지 못할 것이다.
아무 것도 그냥 우리를 통과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된다.
우리 역시 그 무엇도 무심하게 통과해서는 안 된다.
삶의 비밀이란 우리가 의례를 치르듯 통과한 뒤 찾아내게 되는 그 무엇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 복판이다.
통과의례란 없다. 비밀은 바로 여기에.(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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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역시 미래를 향한 충동을 살고 있는 작가가 할 법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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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면식범이다.
운명은 우리 주위에 기거하면서 호시탐탐 우리를 수렁에 처넣으려고 기를 쓰는 녀석이다.
우리는 녀석을 안다고 믿기에 방심하게 되고 운명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최초이면서 최후인 발길질로 우리를 간단하게 끝장낸다.
그러니까 얘야. 네가 겪어보지 못한 운명이란 없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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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도 시간의 문제로 푼다.
작가에게 모든 것은 현재라는 이름의 사북에 서있는 것이다.
마치 부챗살이 사북을 향하여 열을 지어 도열해 있듯이...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인정하지 못하는 건 구석진 귀퉁이에 터잡고 사는 농경민족의 한계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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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는 유사성의 그림자일 뿐이라고 말한 자는 행복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차이가 유사성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걸 안다 해도 자연스레 생겨나는 불쾌감과 공포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
한번 오줌을 누기 시작하면 방광이 텅 빌 때까지 멈추기 어렵듯이
타인에 대한 혐오감은 그러한 감정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제거되거나
그 혐오감을 정당화할 적당한 이유를 찾아낼 때까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지 않았으므로,
그 말을 한 사람은 행복했던 자이다.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들을 무시해도 상관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행복한 자들이라고 한다.(51)
불우한 청소년들의 꿈은 하나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추상은 구체와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다.
행복은 추상에 속한다.
다시 말해 행복은 의사가 되고 싶다거나, 변호사가 되고 싶다거나.
핵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거나,
이런 구체적인 희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꾼다는 것이야말로 구체가 아닌 추상으로만 꿈꿀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특징이다.(71)
너무나 개성적이어서 단조롭기까지 한 나의 언어.
안나 아주머니를 비롯해 이 동네 사람들의 대부분의 언어는 생명이 없는 언어였다.
비유하자면 격발하기도 전에 과녁에 꽂힌 탄환 같은 몰염치한 언어였다.(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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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에서 차별을 받아본 사람들이라면 이런 문제가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차이라는 말에 눈과 귀가 사로잡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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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규칙동사처럼 걸어가더니 불규칙 형용사처럼 울어버렸다.(105)
대머리와 맹랑한 녀석은 둘다 명사 같은 사람이었기에 그 둘이 함께 걷기 시작하자 일종의 합성 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존재인 새로운 합성명사가 되어 거리를 누볐다.(129)
고통받는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언어의 목록은 너무 간단하다.
우리에게는 남을 위로해줄 능력이 다른 능력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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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 용어를 사용하여 사람의 개성을 표현하는 일도 재미있다.
메밀꽃 필 무렵의 부자지간이 모두 왼손잡이라는 표지를 달고 있듯이,
하산과 주인공은 가슴팍에 흉터를 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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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흉터는 역사가 날염된 것이야.
내 몸의 모든 흉터들 역시 내 개인사가 날염된 것들이지.
역사가 날염된 흉터.(2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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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이슬람인이 정육점을 해서 먹고 살아야 하는 삶의 역설과,
흉터처럼 감추고 싶은 곳에서 그 사람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어야 하는 모순된 역리를 통하여,
작가는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이며,
그것이 흉터처럼 감추고 싶은 것이지만 그 사람의 역사는 거기에 정확하게 기록되어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일게다. 손홍규의 발걸음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