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외로움에 대한 정호승의 시를 한편 읽어 보자.
'수선화에게'라는 제목의 시다.
왜 수선화에게 위로를 주려 했을지 궁금한데 한번 읽어 보렴.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정호승, 수선화에게>
수선화는 물가에서 흔히 피는 꽃이다.
그래서 물을 내려다보다 자기애에 빠진 나르시스가 빠진 자리에서 핀 꽃이란 전설도 전해지지.
왜 청자를 '수선화'라고 불렀을까?
물가에서 고개숙인 수선화가 외로워보였는 모양이다.
화자는 인생은 힘들고 외롭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느님도 때때로 눈물을 흘릴 정도로 인간의 고독은 피할 수 없는 것이겠지.
이 시의 언어는 비비 꼬이거나 배배틀리지 않고 직설적 어법을 쓰고 있다.
그래서 시를 설명할 것은 별로 없다.
다만, 인간은 근원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생각해볼 필요도 있고,
그래서 늘 충분히 사랑받고 위로받아야 하는 갈대같은 존재임을 알 필요가 있기에 읽어보자고 했던 거지.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보라 둘째딸 인혜는 그 소리를 대나무 속으로 흐르는 물소리라 했다
언젠가 청진기를 대고 들었더니 정말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고 우긴다
나는 저 위 댓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나는 소리가
대나무 텅 빈 속을 울려 물소리처럼 들리는 거라고 설명했다
그 뒤로 아이는 대나무에 귀를 대지 않는다
내가 대숲에 흐르는 수천 개의 작은 강물들을
아이에게서 빼앗아버렸다
저 지하 깊은 곳에서 하늘 푸른 곳으로 다시
아이의 작은 실핏줄에까지 이어져 흐르는
세상에 다시없는 가장 길고 맑은 실개천을 빼앗아버린 것이다
바람 부는 대숲에 가서
대나무에 귀를 대고 들어보라
그 푸른 물소리에 귀를 씻고 입을 헹구고
푸른 댓가지가 후려치는 회초리도 몇 대 아프게 맞으며 <복효근, 대숲에서 뉘우치다>
화자는 대나무에 귀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라고 권하면서 시를 시작한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그러다가 딸아이가 동심에 젖어 한 소리를 사실적인 자연 현상으로 냉정하게 설명해버린 자신을 반성한다.
대나무 속을 흐르는 물소리를 상상하는 순수한 딸아이의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도록 지켜주지 못한 아빠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
전에 아빠도 산타클로스가 있다고 오래오래 설명하다가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했더니 네가 막 눈물을 흘렸던 적이 있었지?
동심의 순수함이 그만큼 소중하게 자라야 할 때가 있는 법이란다.
이 시에서 '대숲에서 들어보라'는 구절이 수미상관을 이루고 있다.
처음의 구절은 호기심을 불러오는 구절이라면,
마지막의 구절은 어른의 반성을 촉구하는 구절이 되겠다.
어른들은
귀도 씻고,
입도 헹구고,
회초리도 맞아야 할 정도로 순수하지 못한 존재임을
깊이 반성하고 있는 화자의 마음이 오히려 순수하다.
어른이 되어서도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어떤 걸까?
사람을 믿고 서로 의지하며 사는 것.
사람은 모두 외로운 존재임을 알지만,
그래서 서로 기대며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함을
어린아이같은 마음으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