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달팽이가 주인공인 시를 두 편 보자.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달팽이 두 마리
얼굴 비비고 있다.

요란한 천둥 번개
장대 같은 빗줄기 뚫고
여기까지 기어오는데
얼마나 오래 걸렸을까

멀리서 그리움에 몸이 달아
그들은 아마 뛰어왔을 것이다.
들리지 않는 이름 서로 부르며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와 그들은
이제 몸을 맞대고
기나긴 사랑 속삭인다.

짤막한 사랑 담아둘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나에게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은
얼마나 멀고 긴 것일까. <김광규, 달팽이의 사랑>

 

이 시의 주인공은 달팽이와 화자 자신이란다.
달팽이는 천천히 천천히 사랑을 완성해가는 존재야.
거기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는 거지.

장대같은 빗줄기라는 시련을 뚫고 드디어 만난 달팽이 두 마리.
그들이 뛰어왔을 것이라고 표현하지만,
달팽이가 어떻게 뛰어올 수 있겠니.
그건,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표현한 것이겠지.

움직이지 않는 속도로 숨가쁘게 달려오는 달팽이의 사랑.
느릿느릿 움직이는 속도와는 달리,
그들의 간절한 사랑은 숨가쁘게 느껴진다는 역설적 표현이 재미있다.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하여 십년을 바둥거린 화자는,
날 때부터 집을 가진 달팽이의 사랑을 보면서 한없이 부끄러워한다.
화자는 먹고 사는 일에 매달리느라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도 못했고,
뜨겁게 사랑하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있는 거지.
집 따위 마련할 필요 없이도 느릿느릿 사랑하는 달팽이만도 못하다는 자아 성찰. 



시적 화자는 어느날 문득
‘장독대 앞뜰 이끼 낀 시멘트 바닥에서’ 얼굴을 비비고 있는 ‘달팽이 두 마리’를 보게 돼.
그리고 자신의 삶을 생각하지.
‘집 한 칸’을 장만하기 위해 바둥거린 십 년
아내나 가족을 사랑한 시간의 너무 적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자신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되는 거지.
시련과 역경을 헤쳐 나와 천천히 사랑의 삶을 완성해 온 ‘달팽이 두 마리’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바득바득 애를 쓴 화자의 삶을 대비시키고
‘달팽이 두 마리’가 환기시키는 ‘느림’의 이미지를
사랑의 깊이로 확장시킴으로써 시의 감동을 만들어 내고 있지.

다음엔 마찬가지 달팽이를 노래한 정현종의 시를 읽어 보렴.
 

등에 지고 다니던 제 집을 벗어버린 달팽이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엎드려 그걸 들여다보았습니다.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오늘의 성서였습니다. <정현종, 어떤 성서>


화자가 오솔길을 걷는데,
집을 벗어버린 민달팽이 한 마리가
오솔길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대.
그걸 바라보는 화자.

아주 좁은 그 길을
달팽이는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을 만큼 천천히
그런 천천히는 처음 볼 만큼 천천히
건너가고 있었단다. 



이 시 구절을 읽는 일만으로도 숨을 살며시 쉬어야 할 것 같구나.
정말 성경을 공손하게 온 마음을 다해 읽듯이,
살아있는 존재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을 극대화한 표현이야.

그걸 ‘오늘의 성서’란 표현으로 마무리했단다.
달팽이 한 마리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보고도,
성경 속 인간의 진리를 깨달을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겠지.

오늘은 달팽이의 노래 두 편을 읽어 봤단다.
달팽이는 인간의 눈으로 보자면 참 느릿느릿한 존재지.
인간의 속도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속도감이란다.
그렇지만, 달팽이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의 움직임이 건성건성이고 무가치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어디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지는 속도감.
삶은 늘 그런 것이 아닐까 싶어.
나는 이렇게 잘났는데 저런 모자라는 것들은 무슨 재미로 살까?
이렇게 뻐기는 녀석들은 달팽이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를 결코 느낄 수 없겠지.
또 달팽이의 삶이 하늘을 가르는 독수리의 삶을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그저 자기 관점만 옳다고 우기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기 쉬운 인간이,
달팽이를 보면서,
그 느림의 미학 속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인 듯 싶다.
오늘은 느릿느릿 정신을 천천히 움직여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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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4-25 2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1-04-26 12:00   좋아요 0 | URL
저는 다른 컴에서 봐도 잘 보이던데요. ^^

마녀고양이 2011-04-26 14:44   좋아요 0 | URL
이젠 잘 보여여, 알라딘의 이미지 서버가 조금 문제가 있다더니
속도가 느렸나봐여. 거기에 우리집 컴터의 공감대 형성이 너무 잘 된 듯한걸요. ㅎㅎ

달팽이 너무 이뻐요, 저 사진들 못 봤으면 아쉬울뻔 했네요.

글샘 2011-04-26 16:20   좋아요 0 | URL
ㅎㅎ 달팽이가 느리게 갔나 봅니다.